세계가 비웃는데…러시아 왜 백신 등록 무리수 뒀나?
냉전 시대 우주 경쟁서 미국과 겨루던 과거 위상 되찾으려 해
2차 감염 차단으로 경제난 극복해 푸틴 입지 강화하려는 의도도
개발 중인 코로나 백신. © 로이터=뉴스1 |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서둘러 승인한 이유가 잃어버린 국제적 위상을 되찾고, 경제난을 타개하며,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왔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는 코로나19백신 개발 선점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빼앗긴 주도권을 회복하며,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경제난을 해결하며, 2차 확산 가능성을 막아보려 하고 있다.
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화상 내각회의에서 "오늘 아침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이 공식 등록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번 승인이 러시아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으려는 무리수라고 지적한다. 전 세계는 물론 러시아나 내부에서도 우려와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로이터=뉴스1 |
러시아 냉전 시대의 영광 회복
러시아는 성급한 백신 승인이라는 전 세계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스푸트니크 V'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수출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스푸트니크'는 냉전 당시 우주 경쟁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궤도에 진입한 인공위성이다. 다분히 미국과의 경쟁의식을 드러낸 명칭이라는 지적이다.
푸틴 대통령은 8일 정부 회의에서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한 이 첫발을 내디딘 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승인은 수천명에서 수만명을 상대로 이뤄지는 마지막 3상 임상시험을 건너뛴 채 이뤄졌지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2차 임상은 구체적인 결과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모스크바의 아호뜨니랴드 지하철역에 인적이 끊긴 모습. © AFP=뉴스1 |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축 타개
백신 승인의 또 다른 요인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 중인 점도 크렘린의 위기감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폐쇄) 조치로 인해 지난 2분기(4~6월)에 국내총생산(GDP)이 1년 전보다 10% 줄었다. 이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날 푸틴 대통령이 "곧 이 백신의 대량 출시를 바란다"며 "내 딸아이 중 한 명도 이미 이 백신을 접종했다"라고 말한 이유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조바심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백신 승인 소식 직후 미 달러화 대비 루블화의 가치는 0.8% 상승했다. 또한 모스크바 증권거래소에서 가장 유동성이 높은 종목 중 50개 종목을 벤치마킹한 RTS지수는 2% 이상 상승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국경 전면 폐쇄령이 내려진 러시아 모스크바의 도로를 시 직원이 청소를 하며 소독하고 있다. © AFP=뉴스1 |
제2의 감염 물결 차단 희망
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 승인은 안전성 입증보다는 국내 확산을 서둘러 막아보려는 의도에서 백신 조기 접종을 우선시한 결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현재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89만여명으로 미국(53만여명), 브라질(310만여명), 인도(232만여명)에 이어 세계 4위다.
러시아의 최근 일일 확진자 수는 5000여명 내외로, 이는 5월 성수기 때 기록의 절반가량 수준이다.
하지만 러시아 관리들은 제2의 감염 물결이 임박할 수 있다고 경고, 이것이 백신 승인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