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사과' 권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어떻게 나설까
삼성 준법위, 경영승계·노동 문제 등에 공식사과 요구
회신기한 오는 4월 10일까지…장소·시간 등 형식 미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9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20.3.19/뉴스1 |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로부터 '대국민 사과'를 권고받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준법위가 지난 11일 회신 기한으로 30일을 제시한 후 열흘 이상 지났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준법위는 지난 2월 출범 이후 정치권,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각종 비판을 받은 가운데 공식활동 한달여만에 총수인 이 부회장을 겨냥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준법경영 강화를 위해 김지형 준법위원장에 전권을 약속한 터라 어떤 형태로든 권고에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이 부회장은 지난 11일 준법위가 보낸 권고문을 받아들고 대응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고안에는 삼성 최고 경영진에게 최우선으로 요구되는 준법의제로 Δ경영권 승계 Δ노동 Δ시민사회 소통 등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강구해 이 부회장이 국민들 앞에서 발표하란 내용이 담겼다.
준법위는 삼성 측의 회신 기한으로 30일을 제시했다. 준법위가 권고안을 전달한 시점이 지난 11일을 감안하면 삼성과 이 부회장은 4월 10일까지 답을 내놔야 한다.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준법위의 권고문을 확인하고 현재도 여러 방안에 대한 내부 검토가 진행중인 것으로 안다"며 "장소와 형식 등은 언급된 것이 없어서 다양한 의견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준법위는 과거 삼성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가 위반된 점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국민들 앞에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재계에선 준법위가 이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을 주목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들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퇴직 이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위원장 및 위원으로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의 감형에 영향을 주며 실질적 변호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김지형(전 대법관), 봉욱(전 검사)에 대한 대한변호사협회의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2020.3.13/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앞서 준법위는 지난 2월엔 삼성 미래전략실이 7년 전인 2013년 임직원들의 특정 시민단체 후원내역을 무단열람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고, 삼성전자·물산 등 17개 계열사가 이를 수용했다. 삼성 준법위의 사실상 첫 결과물인 것이다.
7년 전 일에 대해 삼성의 공식사과를 이끌어냈지만 준법위에 대한 안팎의 시선은 출범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여전히 '재판거래 조직'이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준법위가 첫 성과를 낸 지 한달도 지나지 않아 삼성 총수인 이 부회장이 국민들 앞에서 책임을 지고 사과할 것을 요구한 것도 이같은 안팎의 잡음을 단번에 잠재울 '초강수'가 필요했던 게 주된 이유로 분석된다.
권고안을 통해 "총수 형사재판 관련성 논란에 대해 준법위가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회의적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 부회장이 조치를 마련해 공표하라"고 촉구한 것도 준법위가 외부의 비판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어떤 형태로든 권고안에 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도 권고안을 받은 직후 "충실히 검토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최근들어 오너로서 그간 삼성이 남겼던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반성, 사회 각계와의 상생 등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부회장이 전할 대국민 메시지에 경제·사회 각계의 이목이 쏠릴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지난 1월 새해 첫 현장경영으로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를 들른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미래를 개척해나가자"면서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100년 기업에 이르는 길임을 명심하자"고 말했다.
최근 국내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권고안이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재계 1위 기업 총수의 대국민 사과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를 보도하려는 국내외 취재진도 수백명 이상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재계 일각에선 준법위의 행보에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나 노동 관련 이슈는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이라 준법위의 권고가 도를 넘은 경영 간섭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의 내부거래나 대외후원 등은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으니 자꾸 과거의 일을 들추려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사옥에서 열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1차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뉴스1 © News1 |
(서울=뉴스1) 주성호 기자 = sho21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