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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끝에서 마음속 '인생 사진' 건지고 왔다

해남과 진도의 내로라하는 그림 같은 성지들

눈으로 마음으로 교감하는 전라남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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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에서 다도체험© 뉴스1 윤슬빈 기자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고, 고요하게 오래 봐야 비로소 새삼스럽게 보인다"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없던 시절, 옛사람들은 좋은 경치를 두고 '인증'하고 싶지 않았을까. 요즘은 '인생 샷' 건지기 좋은 배경이 있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본다. 오랫동안 그 순간을 남길 수 있는 데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다.


물론, 옛사람들에게도 인증 방법은 있었을 테다. 그림과 시가 남았으니까. 그러나 경치를 1분도 제 눈으로 보지 않고, 스마트폰에 양보하는 지금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자세히 오래 보고, 자신의 마음에 따라 경치를 느꼈을 것이다. 일지암에서 만난 법인 스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남도의 그림 같은 곳들을 느긋하게 감상하면서 여행을 떠났다.

한국 다도의 성지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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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를 둘러싸고 있는 두륜산© 뉴스1

전라남도는 한 바퀴를 돌면 한국 전통 회화 '수묵화'의 역사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당대 유명한 작가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들이 남도에 있던 건 하나,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멋과 풍류'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남엔 국토 최남단 두륜산(頭崙山)에 둘러싸인 천년고찰인 대흥사가 있다. 425년에 창건된 만큼 이곳에 담긴 이야기는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대광명전이란 암자도 있고, 선사 입구엔 1914년에 지어져 지금까지 운영하는 '유선여관'도 있다.


대흥사는 해탈문에 들어서부터 시작이다. 가장 먼저 바위 봉우리가 우람한 두륜산 능선이 나타난다. '우와 너무 좋다~'하고 지나치면 발견하지 못하는 풍경이 있다. 능선과 봉우리를 따로 보았다, 같이 보았다 하면 어느새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편안하게 누운 부처의 형상이 나타난다. 두륜산의 두륜봉과 가련봉, 노승봉이 비로자나불상의 머리와 손발처럼 솟아 있다.


대흥사에선 조선 후기 가장 높은 종교적 경지에 이른 사람인 대종사를 비롯해 많은 대강사, 대선사를 배출했다. 그중 한 인물이 우리나라 차문화(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1786~1866)다. 그는 39세에 '우리나라 차의 성지'라고 불리는 일지암이라는 암자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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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는 샘물인 일지암 유천©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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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지붕으로 덮여 있는 일지암©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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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도서관에서 여는 다도체험© 뉴스1

일지암은 대흥사를 지나 두륜산 중턱을 따라 약 30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다. 정확히 말해 '짧고 굵은 등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언덕은 꽤 가파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높은 위치 덕분에 경치는 예술이다. 저 멀리 바다와 맞닿은 다도해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경치 감상 후 뒤돌아서면 초가 지붕이 얹어진 소박한 암자가 나온다. 주변엔 작은 연못도 있고, 봉우리가 몽실몽실 펴 있는 수국은 암자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암자 내부엔 딱히 이곳을 상징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마루에 앉아 천천히 둘러보면 대롱을 따라 흐르는 유천(乳泉)과 찻잎을 다루던 맷돌, 찻물을 끓이던 부뚜막, 초의선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다선삼매에 들던 돌평상, 초가 뒤편의 대밭과 차밭 등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새삼 이곳이 차의 성지였음을 느낀다.


일지암 앞엔 숲속도서관이 있는데, 이곳에선 숨 한 번 고르고 자연과 교감을 할 수 있는 '다도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전통남화의 성지에서 또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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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 화실의 툇마루에 앉아 경치를 만끽해도 좋다© 뉴스1

해남과 '진도대교'로 이어진 진도에도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있다. '진도에 가면 세 가지 자랑을 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첫째가 글씨, 둘째가 그림, 세 번째가 노랫가락이다. 그중 두 번째는 운림산방에서 비롯된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림산방은 추사 김정희 제자이자 조선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이 말년에 고향을 내려와 만든 화실로 200년간 4대에 걸쳐 5명의 화가를 배출해낸 동양화의 산실이다.


허련은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제대로 된 그림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해남으로 건너가 초의선사를 스승으로 섬긴 후 28세 늦은 나이에 동양화에 입문한다. 초의선사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추사에게 소치의 그림을 보냈고, 실력을 간파한 추사는 허련을 흔쾌히 제자로 받아들인다. 허련은 스승인 추사가 죽자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불후의 명작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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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의 전경. 연못 위 분홍빛 꽃을 피워낸 배롱나무가 눈에 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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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가 여름에 비가 내리는 운림산방을 그린 운림각도© 뉴스1

운림산방은 소치의 그림 그 자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구름이 껴서 흐려도 아름답다. 뒤편에 자리한 첨찰산의 수많은 봉우리에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운림산방(雲林山房)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소치의 대표작인 '운림각도'(雲林閣圖)는 여름비가 내리는 운림산방을 그렸다. 운림산방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화실'이었다는 것은 연꽃과 오리, 잉어가 노니는 조그만 호수인 운림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오각형 모양의 호수 한가운데 진한 분홍꽃을 피운 배롱나무는 소치가 150여 년전 직접 심었다고 한다. 운림산방 툇마루에 앉아 운림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잠시 잡념이 사라진다. 운림산방 한쪽에는 전시관이 있다. 소치의 작품부터 시대별로 변화되는 허씨 집안 5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음속 인생 사진 남기는 남도여행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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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 News1

대흥사와 일지암, 운림산방 외에도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남도 명소들이 있다. 해남엔 해남윤씨 종가 고택이자 윤선도를 배출한 녹우당이 있고, 강진엔 다산 정약용이 500여 권의 저술과 후학을 길러낸 다산초당이 있다.


행촌문화재단은 1박2일간 해남, 진도, 강진을 둘러보며 세계문화유산, 전통 남도 음식, 수묵 예술을 녹여낸 '남도 수묵기행'을 선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원하는 '전통문화체험관광'이다.


9월과 10월에 총 5차례 기행이 예정돼 있다. 20명 이상 운영하고 교통, 숙박, 3회 식사, 일지암 차 시음과 판소리 공연까지 포함이다. 자세한 문의는 행촌문화재단으로 하면 된다.

 

(전남=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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