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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없다 우민호 감독의

심우일의 영화 트렌드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 (2015)이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에 배신당한 조직폭력배 안상구의 복수극이라는 익숙한 소재 그리고 복수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의 민낯이 관객들에게 정서적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얼마 전 개봉했던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015)과 비교되기도 한다. 두 작품은 언뜻 비슷하게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우민호의 감독의 <내부자들>이 정치, 경제, 언론 권력이 맺고 있는 카르텔의 작동 구조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부도덕한 재벌 3세의 응징에 초점을 맞춘다. 즉 구조와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관심의 정도 차이가 두 작품의 결을 가른다. 이 글의 목적은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영화 <내부자들>에 더 집중하도록 하자. 

 

영화의 제목인 ‘내부자들’은 정치, 언론, 경제 권력의 카르텔(cartel)을 의미한다. 영화는 각각의 분할된 권력이 일종의 내부거래를 통해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며 공생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현실의 소재를 사용하여 리얼리티를 높이고 관객들이 일상적 현실에서 목도하는 정치, 언론, 경제 권력의 유착 관계를 디테일하게 재현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역설적인 것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카르텔이 공고해질수록 우리 사회의 결여 지점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익숙하고 친숙한 소재라서 지루할 수 있음에도 대중들이 빠져드는 것은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는 없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

이 작품에서 가장 허구적이고 영화적인 상상력의 산물은 안상구라는 인물이다.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자신의 오른쪽 팔을 썰어버린 조직의 배신에 목숨을 걸고 복수한다는 분명한 동기가 있지만 만약 실제 현실이라면 그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현실성이 없고 무모해보이지만 안상구의 복수는 드라마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개인 혹은 사회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갈등할 때 드라마는 성립한다. 익숙하지만 관객 누구나 납득할만한 ‘복수’라는 동기가 준비되었고, 인물의 행위에 설득력이 생겼으므로, 안상구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혹은 실패하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안상구라는 인물만으로는 영화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각색 과정에서 관객에게 원작과 다른 충족감을 안겨주기 위해 차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퇴물조폭의 B급 액션이나 원작의 세계 내부에서 헛돌지 않기 위해서는 원작의 세계관을 수용하면서도 비틀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되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정치, 경제, 언론 권력의 카르텔에 직접적으로 스트라이크를 줄 수 있고, 동시에 안상구의 복수를 도울 수 있는 검사 우장훈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었다. 영화에서 우장훈의 캐릭터는 원작에서 안상구의 뒤를 쫓는 프리랜서 다큐 사진작가 이상업 캐릭터의 변주로 보이는데, 이 같은 변화는 영화와 원작의 차이를 가른다. 기자 회견에서 “원작이 권력의 시스템 자체에 집중했다면 영화는 그 시스템에 속한 개인들의 치열한 대결에 집중했다.”는 우민호 감독의 발언처럼 캐릭터의 변화는 사진작가의 눈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의 눈으로 보이지 않은 권력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로의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정의는 없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

정리하면 영화 <내부자들>은 권력시스템의 작동구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해체시키기 위한 두 남자의 투쟁기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권력시스템의 추악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는 분명 가치를 지닌다. 예컨대 영화에서 우리의 일상적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사회적 계급체계의 구조는 음란한 외양으로 나타난다. 정치, 경제, 언론을 대표하는 각각의 인물들이 별장에서 탈의하고 자신의 발기된 남근을 방망이처럼 휘두르며 과시하는 장면은 정치, 경제, 언론 권력의 카르텔을 과잉된 음란의 형태로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노출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해결 불가능한 일들이 상상적으로 해결되는 지점에 있어서는 영화의 시선으로부터 거리를 취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사건과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안상구의 복수가 이룩되기 위한 조건으로 우장훈이라는 인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들의 협력은 현실의 문제가 실제로 봉합 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정치, 경제, 언론 권력의 카르텔이 오른팔을 잃은 조직폭력배와 족보 없는 검사 우장훈의 협력만으로 뒤집힐 만큼 나약할까? 고작 두 사람의 힘으로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권력이라면 과연 그것을 권력시스템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두 사람보다 강한 권력을 지닌 자들은 영화 속에서 무기력한가? 이에 대해 영화 <내부자들>은 정확히 대답해주지 않는다.  

 

작품의 플롯에서 결함을 찾기 어렵다. 안상구와 우장훈이 욕망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동기가 명확하고 정치, 경제, 언론이 맺고 있는 권력 구조의 추악함 또한 잘 포착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반전까지도 집어넣었다. 문제는 플롯에 있지 않다. 원인은 하나의 드라마가 생성되는 순간 다른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드라마들이 억압된다는 선험적 사실에 기인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안상구와 우장훈의 싸움은 영화가 의도하는 의식적 차원에서 작동한다면, 이를 위해 억압된 물음과 망각된 현실들은 카메라 밖의 무의식적 차원에 놓인다. 영화 <내부자들>이 의식적 차원에서 우리에게 쾌감과 욕망의 충족을 주기 위해서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현실적인 물음들은 망각되어야 한다. 즉 영화의 스크린은 발화하는 동시에 대상을 은폐한다.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이 얼마나 현실을 디테일하게 재현하였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대중들을 설득하는 욕망의 지점 그러니까 안상구의 복수가 우장훈의 조력을 통해 성공하는 과정에서 끼어든 불편함에 있다. 진부하지만 하나의 물음을 던져보자. 이들의 복수는 과연 정당한가? 그들의 정의는 결국 복수와 성공을 향한 거래가 아닌가? 

정의는 없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안상구와 우장훈의 싸움은 새로운 카르텔의 탄생 과정에 다름이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장훈이 기성의 카르텔에 내부자로 가담하여 몰래 성접대 동영상을 촬영하고 언론에 고발하는 순간 상실된 정의가 구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장훈에게 한 기자가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을 때 폭로의 의미는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개인적 출세 욕망의 달성으로 전환된다. 또한 우리는 안상구가 기성의 카르텔에서 행동대장으로 일했다는 점과 우장훈이 안상구의 복수를 도운 이유가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라는 점을 망각함으로써 정의를 획득한다. 즉 정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정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역설과 마주하는 것이다.

 

내부고발의 대가로 우장훈은 검찰청으로부터 쫓겨나게 되고 여의도 근처에 작은 법률사무소를 개업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6개월 뒤에 출소한 안상구가 우장훈의 사무소에 찾아온다. 둘은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건물의 옥상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카메라 원경(遠景)에 잡히는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안상구가 우장훈에게 정계에 진출할 욕망이 없는지 묻는다. 우장훈은 대답 대신에 모호하게 웃으며 함께 밥을 먹으러 가는 것으로 끝난다. 여전히 우장훈은 국회로 상징되는 권력의 중심을 배회하고 있으며 그들의 시선은 국회라는 권력의 중심을 향한다. 권력의 카르텔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교체되었을 뿐이다. 우장훈은 제2의 장필우가 될 것이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작동하는 한에서 안상구는 보이지 않는 조력자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진실의 힘은 무력하다. 안상구가 정치조폭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것은 진실을 듣기 이전에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대중들의 선입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작 영화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진실의 드러남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권력자들의 음란함을 노출시키는 것, 그들의 도덕적 결함을 증명하는 것에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말의 진위 여부는 ‘누가’ 발화하느냐에 달렸다. 즉 진실은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선택되고 구성되는 것이다. 대중들의 동의를 통해서 진실은 존재하고 아무도 믿지 않을 때 그것은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진실의 무력과 그것의 진성성이 조작되거나 구성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이처럼 영화 <내부자들>은 표면적으로 안상구와 우장훈을 통해 카르텔적 권력 시스템을 해체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과 싸우며 새로운 괴물이 탄생하는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 이것은 영화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한계와 모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영화 <내부자들>은 관객들에게 정의라는 이름으로 순환하는 권력의 시스템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기성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미의 사회적 관계를 생성할 수 있을지에 관해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심우일(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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