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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기억을 앓는 자들이다

이정현의 이방인 여행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절박해질 때가 있다. 성숙하지 못한 호감과 거기서 비롯된 나르시스적인 열정이 상처의 공장으로 변환될 때, 경계를 허물려다가 더욱 깊은 경계를 만들게 될 때, 그래서 가역반응이 허용되지 않는 관계를 자각할 때, 삶은 절박해진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기에 우리는 뒤를 돌아본다. 돌아보는 시선 속에는 아무것도 구체적인 것은 없다. 기억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으며 다만 명징하게 다가오는 것은 몇 개의 순간들이 아니었던가. 기억을 되새길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좌우한 몇 개의 순간들과 마주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어느 여름날 차 안에서 잠든 당신의 옆모습에 매혹되었을 때, 처음으로 아프게 인식했던 활자의 기억들, 낯선 풍경이 익숙함으로 다가올 때 느껴지던 기시감,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맑게 들리던 순간, 삶에서 잊히지 않는 몇 개의 풍경들.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한 남자의 방황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기'는 헤매고 있다.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기’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에 그는 남미 대사관의 직원이었으며, 누군가의 절친한 친구였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기'에게는 어떤 뚜렷한 기억도 없다. 낡은 사진 한 장을 단서로 기는 자신의 과거 속을 헤맨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향기. 낯익은 거리의 풍경, 그런데 기억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온전한 삶이라고 믿었던 것도 불투명하고 흐릿한, 언제 사라질 지 알 수 없는 그런 헛된 기억들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기억을 앓는 자들이다

점차 자신의 과거로 알아갈수록, 그는 전쟁 중 스위스로 넘어가려고 하다가 실패한 어떤 남자의 모습이 자신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조차도 희미하게만 느껴져서 자신이 진실로 누구였는가를 확신할 수가 없다. 가끔씩 명멸하는 것은 과거의 어떤 '순간'일 뿐, 퍼즐 같은 그것들은 끝내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기억의 부재를 거듭 확인하면서 기는 계속 방황한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인 로마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향해가는 '기'. 거기에는 자신의 온전한 과거가 있을까.

 

이 소설은 세계대전 이후 정체성과 가치를 상실한 채 부유하는 프랑스의 젊은 세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들은 과거에 빚진 것이 없기에, 새로운 가치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해야 했다. 기성세대의 과거-기억에 좌우되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항의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바로 '68혁명'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특정 세대를 다룬 소설이 다른 세대에게 읽힐 때, 그 소설은 '세대론'의 영역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소설 속의 '기'처럼, 어쩌면 우리도 자기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기'의 행보는 인간이 과거의 틈새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전쟁으로 파괴된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서는 ‘기’의 자의식은 슬프지만 아름답게 다가온다.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기’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어이 확인하고자 한다. 기억이 없다면, 인간이란 한낱 먹고 배설하기만을 반복하는 존재에 불과한 까닭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9쪽)

우리는 모두 기억을 앓는 자들이다

실재를 대면하지 않고 흐릿한 과거의 풍경과 풍경 ‘사이’를 자신만의 환상으로 채우는, 손쉬운 자기합리화를 ‘기’는 끝내 거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순된 실재를 보지 못하고 완벽하게 논리적인 환상을 믿으면서 살아간다. 그들이 신뢰하는 논리적인 환상 안에서 독재자가 다스리던 과거는 미화되고 폭력적인 사랑은 아름답게 채색된다. 사회의 혼란은 오로지 ‘좌파’의 선동 탓이고,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줬다는 과거의 ‘영도자’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칭송된다. 그들이 자신의 기억을 신뢰하는 한 세계는 늘 그대로다. (논리적인 환상으로 구축된 과거를 신봉하는 이들의 비틀린 향수가 사회 전체를 얼마나 퇴행시키는지를 우리는 지금 적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기억을 앓는 자들이다

잃을 수밖에 없는 기억의 체계와 불화하면서 우리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다. 내가 아는 당신은, 그리고 당신이 아는 나는 견고하지 못한 기억을 지닌 채 만나고 헤어진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기억은 조각난 퍼즐에 불과하며 우리는 혼돈과 고통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작고 위태로운 기억의 편린들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희망의 근거가 아닐까. 우리는 불완전한 기억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기'의 친구 위트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은 이러한 사실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이 옳았습니다" (177쪽)

몇 개의 조각들, 어떤 것의 한 귀퉁이들이 갑자기 내 수사의 과정을 통하여 되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인 모양이지요.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241쪽)

글. 이정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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