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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오지의 원시인이길 바란다

김선우의 문화 포커스

몇 년 전 중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시간과 돈에 쫓기는 사람들이 택하는 패키지 여행 상품이 대개 그러하듯 멋진 경치들과 장터를 둘러보고 관광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몇 가지 코스가 덧붙여져 있었다. 그 가운데 기억나는 장면들 세 가지.

 

“자, 여기는 최근에야 발견된 토인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아직 학계에도 보고되지 않은 야만인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입니다. 아직 우리 말(중국어)도 모르고 문명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야만인이라 위험합니다~~~!”

 

가이드는 기획된 쇼의 호스트이니 관광상품을 기획한 사람들(혹은 자본)의 지시대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일 테지만, 그리고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제한된 상품들 중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만들어진 전통’에 속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관광객들이지만, 그래도 좀 우습다.

 

“이 사람들은 뱀을 잡아먹고 삽니다. 살아있는 뱀입니다. 저, 저거 보세요, 꿈틀거리죠?”

 

산 뱀을 정말로 질겅질겅 먹는 ‘야만인’은 담과 도랑으로 둘러싸인 마당에서 마치 동물원의 동물들마냥 괴성을 지르며 반라로 뛰어다니다가 어디선가 형광등을 가져와 씹어먹는다. 관광객들은 두려움에 경악을 하고 아이를 동반한 주부들은 무섭다며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동물원의 탄생』에 소개된 19세기 유럽의 하겐베크 동물원이 21세기에도 버젓이 살아있고, 우리는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여가와 문화의 이름으로 그것을 소비한다.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에서 “아직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우리의 환상. 잘근잘근 찝혀지는 뱀과 형광등의 이미지 앞에서는 자본에 의해 기획되어 외국 관광객들에게까지 전시되는 사람들을 미지의 사실을 찾아 연구하는데 혈안이 된 학자들이 아직 모르고 있다는 간단한 의심조차 사라진다. 도대체, 문명과 동떨어진 사람들이 씹어먹을 형광등은 대체 언제부터 어디서 구했단 말인가.

나는 당신이 오지의 원시인이길 바란다

우리의 관광이 얼마나 남성중심적, 제국주의적이며 타자를 대상화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필자 촬영

이어서 가이드는 어느 집 앞에 이르러, 이 부족은 아직도 ‘모계제 사회’이며 그래서 추장 또한 여자라고 설명하더니 문앞에 의관을 갖춰 입은 여성을 가리키며 그녀와 함께 사진을 찍으라고 권한다. 일행이 머뭇거리는 가운데, 식사 자리에서 현지 민속주를 반주로 걸친 초로의 사내 한 사람이 나와 여자 추장의 옆에 가더니 덮석 안고 자세를 취한다. 일행은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고 객쩍은 농담을 풀어놓으며 그제서야 너도나도 그녀를 안고 포즈를 취한다.

 

우리의 중국 민족구역 여행이나 동남아 여행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것이 ‘모계제’인데, 모거제ㆍ모권제ㆍ모계제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그 뒤에는 우리의 부거ㆍ부권ㆍ부계제는 발전한 정상의 상태임을 은연 중 강조가 있다. ‘그들’은 ‘낙후’했고, 생활의 전반에 걸친 의식주와 문물의 차이 뿐만 아니라 가족제도처럼 기본적인 사회 구성 원리까지 온통 원시적이라는 암시는 관광객들에게는 ‘전시되는 그들을 볼’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 관광객이 마을을 방문하는 시간대에는 남성들이 일하러 나가서 마을에 여성들과 아이들만 남아있게 되고 자연히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모계제 사회’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는 아주 간단한 생각조차 여행을 나가면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한국에 와서 덜 떨어진 짓 하는 외국인들 보고 뭐라고 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마을의 혼인 풍속을 소개하며 벌어진다. 처녀들이 일렬로 늘어서자 가이드는 “이 사람들은 첫날밤을 치르려면 처녀를 안아들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남성분들은 맘에 드는 처녀를 안아서 저 문지방을 건너가 보세요!”라고 외치는 것이다. 중년의 남성들 서너 명은 킥킥거리는 자신들의 배우자 앞에서 ‘야만인 처녀’를 번쩍 안아 품에 품고 원주민 집을 넘어가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는 “요즘 여행은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체험 코스가 있어 좋아”라는 말을 주고 받는다. 이왕 체험하는 거, 산 뱀 씹어먹는 야만인 청년의 품에 아주머니들이 안기는 체험은 없냐고 물으니 시도해 본 적이 없단다. 아이고~

나는 당신이 오지의 원시인이길 바란다

사진과 저널리즘 이면의 인식론을 잘 보여주는 『오지의 대탐험』 © 2003 by 한국신문기자클럽

타자를 보는 이런 식의 시선은 단지 여행 상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신문기자클럽이 2000년 발간한 『오지의 대탐험』이라는 사진집이 있다. 두툼한 2권의 사진집은 동남아의 여러 소수민족이 사는 ‘오지’를 누비며 그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책인데, 이 나라 사람들의 부실함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민족학적인 설명이 부실한 것이야 당연하고, 오히려 놀라운 것은 수백 컷의 사진 중 거의 90%가 원주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찍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원주민 여성들은 놀랍게도 하나같이 전부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여성들은 음식을 하거나, 가사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인 데 반해 남성들은 서구식 복장(티셔츠에 바지)을 입고 있으며 대개 놀거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 뿐이다.

나는 당신이 오지의 원시인이길 바란다
나는 당신이 오지의 원시인이길 바란다

일상적인 노동복이 아님은 깨끗한 구두에서도 잘 드러난다. 연출 사진으로 보이는 바, 그 연출의 의도는 무엇인가? © 2003 by 한국신문기자클럽

나는 당신이 오지의 원시인이길 바란다

타일 붙이고 지붕 개량한 ‘오지’의 주택 카메라는 ‘오지’를 만들어 낸다. 오지에서는 주택 개량 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오지’가 과연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대도시보다 낙후하거나 교통이 좋지 못하면 오지인가? 저들은 충분히 문명인이다. 아니면 뉴욕이나 파리가 아닌 곳에서 사는 당신이 ‘오지’에 사는 것인가? © 2003 by 한국신문기자클럽

나는 당신이 오지의 원시인이길 바란다

사진집 전체에서 몇 장 안 되는 남성 사진 중 하나. 남성들은 전통 복장을 안 해도 된다. 카메라가 그들에게까지 관심을 둘 마음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 2003 by 한국신문기자클럽

타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을 앵글에 즐겨 담았던 그 시선 그대로에 머물러 있다. ‘때’묻지 않은 ‘오지’에 무거운 카메라 짊어지고 여러 날 돌아다니려면 대개 체력 좋은 남정네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상은 주로 여인네들이었다. 하기사 그래야 가서 정복하고 싶을 것 아니겠는가. 사회를 여성이 주도하고 남자들은 무력하게 놀기만 한다는,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묵묵히 일하며 고통을 감내하기만 한다는 제국주의자들의 상상이야말로 침략이 수월하며, 아름다운 여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당위로까지 이어졌고, 지금도 그 상상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TV의 수많은 여행 프로그램들은 어떤가. 대표적인 몇몇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장면과 장면 사이의 맥락은 전혀 없다.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보여주며 “맛있나요?”라고 물어보고 “우리는 이걸 좋아합니다. 아주 맛있어요”와 같은 하나마나한 인터뷰를 하고 다시 전혀 엉뚱하게 오래된 미술관을 거닐다가 갑자기 현지의 국립공원에 가서 풍광을 보여준 뒤 수공예품 만드는 현장으로 건너뛴다. 그냥 겉핥기다. 대개 여행사의 여행상품을 협찬 받아 상품 홍보를 하는 것을 우리는 해외 문화에 대한 다큐로 인식을 하고 있다. 마거릿 미드 같은 이름난 학자들이 타문화를 소개하고 해설해 주는 교양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던 것이 미국의 1930년대 라디오 방송임을 알면 우리는 1세기도 더 뒤져 있는 것이다.

 

한 강의에서 우리의 타자에 대한 인식을 논하며 아프리카 오지여행 다큐가 실은 대개 그 나라의 ‘민속촌’에서 촬영하는 것이며, 알몸의 부족민들은 대개 오후 5시면 차 몰고 퇴근해서 햄버거 먹는 고용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주자 많은 학생들이 못 미더워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방학을 이용해 아프리카 어느 나라를 여행하다가 잠시 현지 민속촌에서 도우미 생활을 했는데, 하필 그 무렵 한국의 방송사가 와서 뭔가 촬영을 해갔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우연히 TV에서 자신이 있었던 민속촌을 “카메라가 가본 적이 없는 오지”라 소개하며 ‘여행 다큐’가 방송되더란다. 아침 저녁 청바지와 티셔츠 입고 영어로 떠들던 현지인들의 실생활은 외면한 채, 민속촌에 출근하여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들의 전통 복식을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만 보여주는 방송에게 교양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민속과 민속의 창조(folklorism)를 구분 못 하거나 아예 외면하는 태도가 타자를 보는 대중과 대중매체 사이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것이다. 방송이 사람들에게 오지의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 한편 「The Savage Innocents」라는 유명한 영화도 있음)’이라는 루소 시대에나 통했을 환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며 자연에 적응해 온다. 이 말은 그 자체로 인간이 끊임없이 이동해 왔음을 함의한다. 인간이 아프리카를 벗어나고,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 남아메리카 남쪽 끝까지 갔다는 것 자체가 여행인 것이고, 전쟁을 위한 출정과 무역도 여행이다. 식민과 유배도 여행이다. 계속된 이동을 통해 낯선 세계와 만나는 것은 인류의 출현 이후 계속되어 온 것이며, 이는 우리의 문화적 유전자인 신화도 온통 여행 이야기라는 것으로 증명된다.

 

낯선 세계와의 만남에서 인간은 타자에 대한 시선을 형성하고 세계와 나(우리)를 고민하게 된다. 젊어서는 낯선 것을 찾아 경험을 넓히고 자신을 찾기 위해 여행을 하지만, 늙어서의 여행은 먼 이방의 삶도 결국 나(우리)와 다를 바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여행의 성격으로 인해 정신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결과하기도 한다. 남과 나의 차이를 보는 것에서 혐오가 생겨나기도 하고, 자신과 타자의 삶에서 보편성을 확인하는 순간 오히려 우열의 차별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일본인들이 드라마 「겨울 연가」에 감명받아 한국을 찾아왔음을 잘 알고 있다. 문화적 자부심에 더해 문화 컨텐츠의 경제적 가능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만 따져보면 그렇게 반가워 할 일만은 아니다. 일본의 중년 여성들에게 한국은 백설로 뒤덮인 세상처럼 순수한 사랑이 가득한 곳이라는 환상은 애오라지 우리를 좋게 보는 것만은 아니다. 산업화한 일본에서는 이제 보기 힘들어진 백색의 순결함이 있는 곳, 아직 강고꾸는 그런 순수한 사랑이 남아 있는 때묻지 않은 곳이라는 이미지화는 결국 한국은 자신들이 지나온 과정을 아직 지나오지 않은 곳이라는 허상과 일정하게 공모한다.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과거의 식민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인간성에 대한 바램이 동반한 과정이었음은 그들의 한국 사랑이 일정하게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찾는 관광으로, 또는 민족의 뿌리를 찾는 여행으로 알아서들 진화해 갔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여행의 대부분은, 그리고 오늘날의 관광은 타자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하기에 그만큼의 성찰이 요구된다. 근래 들어 중국인 관광객의 추태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우리는 또 어땠는지,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과연 타자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미래지향적인 관계맺기를 하려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구태여 오리엔탈리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대중매체들에서는 어느 나라에 가면 고산족들이 까마득한 산꼭대기에서 논밭을 갈고 살아간다며 그네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만 한다. 어느 누구도, 그들이 왜 넓은 평지 놔두고 산꼭대기에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갖은 핍박과 전란을 피하기 위한 목숨 건 투쟁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머리가 아프다. 그저 멋진 풍광과 동시에 험준하지 않은 곳에서 사는 우리의 안락한 삶, 그리고 발전만 되새기며 자위를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타자에게서 배우고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음은 국가가 운영하는 타문화에 대한 연구 조사기관이나 박물관조차 변변히 없다는 사실로 연결된다. 이래서야 세계와의 깊이있는 만남은 요원한 가운데, 소비와 생산의 세계화 흐름 속에 갇힐 뿐 진정으로 세계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최순실의 미얀마 ODA 개입은 타자를 그저 돈벌이의 수단이자 대상으로만 삼는다는 점에서 21세기 우리 사회, 우리 대중의 민낯을 보여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김선우(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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