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일탈의 욕망과 낭만적 판타지
박범신의 장편 『은교』(문학동네, 2010)
1. 금기 일탈의 욕망
박범신의 장편 『은교』(2010)에서 늙은 시인인 이적요는 과거의 삶을 후회하는 회한(悔恨)으로 가득하다. 이적요는 말년에 자기부정과 자학을 통해 회한의 시간을 갖는다. 이 소설은 얼핏 보면 예순아홉 살의 이적요가 열일곱 살의 한은교를 운명적으로 사랑하면서 겪게 된 일을 기록한 소설로 읽혀진다. 하지만 이것은 표층 구조에 불과하다. 장편 『은교』의 심층 구조는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을 예감한 늙은 시인이 삶을 가급적 오랫동안 연장하려는 몸부림의 이야기다. 이적요는 서지우라는 대역작가를 만들고, 미성년자인 은교에게 위험스러운 금기 위반의 애정을 드러낸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이적요의 죽음을 더욱 빨리 재촉한다. 장편 『은교』는 삶의 끝자락에서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리셋 욕망이 낳은 비극을 보여준다. 소설은 이적요 시인과 제자인 서지우가 남긴 기록물을 변호사이자 시인인 Q가 검토하는 순서대로 서사가 전개된다. 이적요의 유서는 열일곱 살의 한은교를 사랑했다는 것과 서지우를 자신이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한다. 독자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왜 이적요 시인은 여고생을 사랑했고, 제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은교』는 이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추리소설의 문법을 일부 차용한다.
주인공인 이적요는 필명이 고요하고 쓸쓸한 의미를 지닌 적요(寂寥)이다. 그는 열두 권의 시집을 발간했고 평생 홀로 살면서 시만을 창작한 위대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끄러운 소음에 시달리는 대중들은 결벽과 고요한 목소리를 내는 시인을 사랑했고 존중했다.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의 탄압으로 월남하여 20대를 사회주의 혁명 전선에서, 30대를 감옥에서, 40대부터 문학의 성채에서 시만을 보며 살아왔던 이적요 시인. 그는 대중에게 ‘곧은 정신, 높은 품격, 고요한 카리스마’로 인식된다. 이렇게 시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던 이적요는 말년인 60대 후반에 자신의 문학을 부정하는 자학적 욕망에 사로잡힌다. 한 마디로 대중들이 기억하는 이적요의 이미지는 철저하게 날조된 허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시인 이적요는, 불측不測했던 세월과 교활한 전략과 거짓 관념으로 도배질된 추상의 어휘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멋대로 조합되어 만들어진 것에 불과했다.”(130쪽)
자신의 삶을 온통 부정하는, 부정하고 싶어하는 이적요는 말년에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강하게 욕망한다. 이적요는 고상한 문학에서 벗어나 성적 욕망에 충실한 ‘포르노그래피 소설=천박한 문학’을 마음껏 창작해 서지우의 이름으로 발표한다. 다음으로 진정한 사랑에 대한 결핍 속에 열일곱 살의 은교를 사랑하게 된다. 한은교와 서지우는 이 소설에서 이적요의 숨겨진 무의식의 욕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서지우는 이적요의 문학적 욕망을, 은교는 진정한 사랑의 결핍을 채워주는 이적요의 성적 욕망을 대변한다.
2. 대역작가 서지우와 낭만적 사랑의 대상인 은교
공대생이었던 서지우는 문학적 재능이 부족하지만 이적요 시인을 동경하여 문인을 꿈꿨다. 3류 소설가로 데뷔한 서지우는 아무리 해도 뛰어난 작품을 창작하지 못한다. 서지우는 이성의 자장에 문학적 상상력이 감금되면서 문학적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다. 반면에 이적요는 절제와 금욕을 실천하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감금하지 않았다. 이적요는 말년에 이성으로 통제된 상상력의 빗장을 풀어 포르노그래피소설을 창작해 서지우의 이름으로 발표한다. 이적요는 서지우의 이름으로 고상한 문학에서 벗어나 천박한 문학인 포르노그래피 소설을 마음껏 창작했던 것이다. 서지우는 이적요가 쓴 글로 스타작가가 되지만 어디까지나 원본인 이적요의 욕망이 만들어낸 아바타이자 복제품에 불과하다.
“결국은, 시인으로 성역화해온 나의 ‘빛나는 성취’를 스스로 시궁창에 버리고 싶은 자학의 한 수단으로, 서지우를 대리인 삼아 내가 ‘당신들 문법’에 맞춰 포르노그래피 소설을 썼다는 결론에 도달했다.”(145쪽)
서지우는 스타작가가 되면서 이성적 존재에서 점차 본능적 욕망의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상금과 원고료는 이적요가 갖고, 명예는 서지우가 갖는다는 계약 관계는 좀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하는 서지우의 욕망이 작동하면서 균열하기 시작한다. 이적요와 서지우는 독자를 기만한 대역작가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욕망하면서도 그것이 밝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상반된 욕망을 갖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태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다. 서지우는 이적요의 아바타이자 복제물이 아니라 자신이 유일한 원본이 되기를 욕망한다. 문학 열등생인 서지우는 이적요의 뛰어난 문학적 능력을 질투한다. 이러한 질투심은 이적요의 욕망 대상인 은교를 소유함으로써 보상받고자 한다. 질투는 서지우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은교를 두고 서지우와 경쟁하는 이적요는 서지우의 젊음을 질투한다. 이적요는 늙는 것을 범죄이자 기형으로 취급한 서지우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서지우가 자신의 집에서 은교와 섹스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적요는 적대적 분노에 휩쌓여 서지우를 살해할 계획을 실행시킨다.
이적요는 자신의 집 벤치에 무단으로 앉아 있는 소녀 은교의 손등을 보고 갑자기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은교가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창과 똑같은 창의 문신을 이적요의 가슴에 새겨넣는 행위는 이적요의 은교에 대한 사랑이 불가항력의 운명임을 상징한다. 이적요는 북쪽에서 자신을 몰매로부터 지켜주던 젊은 D라는 여성을 평생 잊지 못했다. 은교는 D라는 여성을 연상시키는 닮은꼴이다. 이적요는 D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은교를 통해 시도하며 덧없이 흘러간 청춘의 마지막 보상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은교는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D와 참된 사랑을 하고 싶은 이적요의 욕망이 낳은 아바타이다. 이적요 시인은 은교를 통해 D라는 여성을 만나고, D라는 여성을 통해 은교와 만난다. 평범한 외모의 은교가 이적요 시인에게 아름다운 처녀의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은 D라는 여성과 사랑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불러낸 허구적 판타지이다. 은교는 당시에 잠깐 사귀던 고딩 오빠와 성관계를 했고, 서지우와 원조 관계의 섹스를 한 존재로서 순수한 처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제3자인 Q변호사가 낭만적 판타지가 아닌 냉정한 현실의 눈으로 본 은교의 모습은 보통 여자애에 불과하다.
보통 여자애에 불과했다. 이적요 시인이 본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란 은교로부터 나오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단지 젊음이 내쏘는 광채였던 것이다. 소녀는 ‘빛’이고, 시인은 늙었으니 ‘그림자’였다. 단지 그게 전부였다.(163쪽)
미성년자인 열일곱 살의 은교와 예순아홉 살의 노인인 적요는 현실적인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적요와 은교의 사랑은 사회적 금기인 원조교제이기 때문이다. 이 금기는 이적요와 한은교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생성시키고, 이 거리는 낭만적 판타지가 번성하도록 만드는 동력을 제공한다. 은교는 이 소설에서 이적요, 서지우, Q변호사라는 남성에 의해 보여지는 타자로 등장한다. 그래서 주체로서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타자로서 은교의 위치가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은 이적요의 유서의 결말 부분에 있는 이사를 하는 은교를 그린 장면이다. 이적요는 눈도 잘 보이지 못하는 상태이면서도 은교의 모습이 잘 보인다면서 자신의 일방적 시선과 상상에 의해 재구성된 순수한 처녀라는 은교의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이러한 이미지는 실체와 무관한 이적요의 욕망이 불러낸 판타지이다.
3. 엇갈린 욕망의 사랑 방정식
이적요, 서지우, 한은교의 사랑 방정식은 무엇이었을까? 서지우는 존경과 사랑을 하는 욕망의 대상으로서 스승인 이적요가 존재했다. 하지만 서지우는 이적요의 대역작가를 하면서 이러한 존재 방식은 균열되기 시작한다. 이적요는 사랑의 대상으로서 은교를 선택한다. 은교는 원조섹스의 대상으로서 서지우를 선택하고, 아버지와 같은 사랑의 대상으로서 이적요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적요는 은교가 자신을 아버지만이 아니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선택하기를 욕망한다. 이적요는 서지우의 젊음을 질투하고, 서지우는 문학적 재능이 넘치는 이적요를 질투한다. 이적요, 서지우, 한은교의 사랑 방정식은 엇갈린 욕망과 층위가 다른 사랑의 전개 속에 질투와 의심이 엇갈리면서 불신과 배신으로 이어진다. 이 중심에서 은교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욕망 대상이자 갈등을 증폭시키는 폭발물이 되었다.
사랑의 방정식은 이것만이 아니다. 원래 서지우와 한은교는 모두 이적요의 사랑을 받고 싶어했던 존재였다. 이런 점에서 서지우와 한은교는 이적요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사랑의 경쟁자였다. 은교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적요는 서지우를 통해 충족되지 못한 자신의 문학적 욕망을 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은교의 등장으로 인해 이적요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서지우의 독점적 지위는 위태롭게 된다. 서지우는 이적요의 욕망 대상인 은교를 성적으로 소유함으로써 이적요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구도를 지키고자 한다. 은교를 두고 이적요와 서지우가 사랑의 경쟁자가 된 것도 서지우가 이적요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는 전략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서지우는 스승이 자동차의 조향장치를 조작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버림받았다는 충격에 절망의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중앙선을 넘어오는 트럭을 재빨리 발견하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서지우가 원본이 되고자 했던 것은 문학적 재능이 없다며 자신을 멍청이라고 비판하는 스승인 이적요에게서 당당한 문인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기도 했다.
『은교』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일부 차용하기에 결말에서 두 번의 반전이 발생한다. 이적요가 서지우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 은교가 이적요의 유서를 불태워버리는 것은 극적 반전이다.
4. 소설 『은교』와 영화 <은교>
박범신의 『은교』는 정지우 감독에 의해 영화 <은교>(2012)로 만들어졌다. 영화와 소설은 구성상에서 시간적 순서와 내용상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상문학상, 은교를 형상화한 단편소설 「은교」는 박범신의 장편 『은교』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은 죽음을 앞둔 이적요의 일탈적 욕망의 서사에, 영화는 나이를 뛰어넘어 미성년자인 은교를 사랑하는 사랑의 서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영화와 소설은 결말도 다르다. 소설과 영화를 비교 감상하는 것은 ‘은교’를 색다르게 읽어보는 즐거움일 수 있다.
장편 『은교』는 60대 후반 늙은 시인의 성적 욕망과 유명작가가 되고 싶은 제자 서지우의 심리를 잘 형상화했다. 문학 천재인 이적요와 문학 둔재인 서지우의 갈등과 충돌은 『은교』를 긴장감 있는 서사로 만들었다. 또 『은교』는 사회적 금기인 원조 교제와 섹스라는 민감한 주제를 대중적 눈높이에서 형상화했다. 그래서 사회적 금기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논란이 크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장편 『은교』에서도 옥의 티는 존재한다. 작중인물의 시점을 넘어서는 묘사와 서술은 글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은교』를 읽어보면 서사의 진행이 남성의 시점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여성의 주체적 관점은 부재하다. 남성의 시선이 중심이다 보니 남성의 시선에 비친 낭만적 판타지인 타자로서의 은교만이 부각될 뿐이다. 이러한 옥의 티들은 장편 『은교』를 수작이 아닌 범작으로 만들어버렸다, 안타깝게도.
박범신은 『은교』 발표 이후 2016년에 여성을 늙은 은교와 젊은 은교라 호칭하며 어떤 여성을 술자리에서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쌓였다. 나는 성추행 논란을 지켜보며, 『은교』의 이적요 시인과 박범신 소설가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소설가 박범신이 이적요 시인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모두의 불행이다. 그것은 은교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별점 |
대중성 |
★★★★☆ 8 |
평균 |
최종 별점 |
예술성 |
★★★☆☆ 6 |
7.0 |
8.0 |
최강민(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