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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손석희 현상』 (인물과사상사, 2017)

신뢰받는 언론인이란 무엇인가?

손석희 뉴스는 왜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뉴스’인가?

 

2016년 9월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손석희가 2005년 이후 1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또 JTBC가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조사에서 사상 첫 1위를 기록했다. 2016년 12월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004명에게 ‘어느 방송사 뉴스를 즐겨 보는지’ 물었는데, 응답자의 45퍼센트가 JTBC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좋은 방송 보도’에서 JTBC가 1년간 좋은 보도상을 싹쓸이했다. 2016년 10월 24일에는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 특종 보도를 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열어젖히며 더욱더 빛을 발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손석희 현상’을 말해준다. 진보 진영은 종편이 부정한 탄생의 역사를 지녔다고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더구나 2013년 5월 손석희가 JTBC행을 결정했을 때, 거의 모든 진보 인사가 도박, 배신, 실망, 투항 등의 단어를 쏟아내며 손석희를 비난했다. 특히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물이 다 빠지면 언젠가 쫓겨날 것”이라고 손석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지금 손석희와 종편인 JTBC는 공영방송을 능가하는 언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다시 말해 지상파가 무력화되었고, 이제 종편이 의제설정을 주도하게 되었다.

 

강준만 교수가 ‘손석희 저널리즘’의 특징과 한국 언론사에서 그것이 놓여 있는 맥락을 파헤친다. 손석희가 재벌 미디어그룹 JTBC에 몸담고 있어 언론 문제와 재벌 문제는 분리할 수 없긴 하지만, 언론 문제를 곧장 재벌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고 제안한다. 언론 상업주의와 재벌의 기득권 유지·강화 사이엔 작은 균열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그 균열을 이용할 것인지가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손석희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 재벌의 한국 사회 지배를 도울 가능성 못지않게 전혀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언론개혁에 관심을 갖고 실천의 길로 나서는 것은 그런 다른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다.

균형, 공정, 팩트, 품위

손석희는 텔레비전 뉴스가 시청자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스토리․텍스트만 있고, 히스토리․콘텍스트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뉴스는 현상을 계속 보도하지만, 그에 대해 콘텍스트(맥락)를 시청자들이 모르고 히스토리를 알 수가 없다면, 그 뉴스에 대해 깊이 알기도 어렵고 평가도 할 수 없다. 결국 백화점식 보도인 1분 30초짜리 뉴스 나열만으로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JTBC의 〈뉴스룸〉은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 코너를 통해 “토막토막의 텍스트가 아닌 연결된 콘텍스트, 혹은 사람들이 그 뉴스를 접했을 때 하나쯤은 더 알고 싶은 것”을 전한다. 손석희는 “토막의 텍스트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있다면 거기서 보다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균형, 공정, 팩트, 품위는 손석희 저널리즘의 4대 가치라고 할 만하다. 손석희는 2013년 5월 JTBC 보도국 기자들과의 첫 회의에서 4대 가치로 한 방송 뉴스를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팩트’는 팩트대로 인정하고 가치관이 부딪치는 사안은 ‘균형’ 있게 다룬다. 팩트를 과감하게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 뉴스는 많은 이해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공정’하고 균형 있게 잘 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뉴스를 ‘품위’ 있게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JTBC 뉴스 홈페이지의 상단 제목은 ‘균형 있는 보도 JTBC 뉴스’다. 어쩌면 손석희는 저널리즘의 이론과 실천, 그 두 세계를 연결하는 데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강준만의 『손석희 현상』 (인물과사상

‘어젠다 키핑’과 ‘진영 논리의 극복’

손석희는 ‘어젠다 세팅’ 못지않게 ‘어젠다 키핑’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JTBC는 세월호 참사를 200일 동안 보도했으며, 4대강 보도는 6개월 가까이 다루었다. 그렇게 해서 세월호 보도를 기점으로 JTBC에 특종이 몰리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손석희는 모든 정보가 빠르게 소비되는 미디어 시장에서 언론사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정보 가운데서 중요한 정보를 고르고 이것을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어젠다 키핑이 중요한 것은 ‘소비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에 뉴스 소비자들은 단순히 ‘뉴스를 보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보를 제공하는 존재’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어젠다 키핑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사회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빨리빨리’ 이루어지는 변화를 통해 그 문제를 건너뛰거나 비교적 사소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문화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손석희는 ‘어젠다 키핑’을 통해 그런 흐름에 정면 도전했다.

 

손석희는 JTBC 뉴스는 진영 논리에 속해 있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시민사회는 진영 논리 속에 있지 않다고도 단언한다. 그러면서 진영 논리에 빠져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수익 모델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모험을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사실 진영 논리에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이 쉽지 않겠지만, 손석희가 끊임없이 그 방향으로 가려고 애써온 건 분명하다.

언론과 방송은 권력의 전리품인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구조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정부는 비판하면서도 박근혜를 노골적으로 칭찬하는 신문과 방송 보도가 많았다. 즉, ‘박비어천가’가 난무했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박근혜는 직무 정지 직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탄핵 가결 등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다”고 말했다. 이를 언론은 상세하게 보도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장본인이 눈물이든 피눈물이든 흘리든 말든 언론은 보도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언론은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된 후 이명박 정권의 ‘방송의 전리품화’가 진행되었다. 2008년 10월 노종면을 비롯한 YTN 기자 6명을 해직시켰고, KBS에서는 정연주, 정관용, 윤도현, 김제동, 박인규 등도 방송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MBC에서는 신경민, 손석희까지 방송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KBS와 MBC는 청와대 낙하산 사장이 와서 철옹성을 구축한 후 ‘청와대 방송’이 되었다. “5공화국 보도지침 시절보다 지금이 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KBS-이정현 녹취록’은 청와대 홍보수석이 방송사, 신문사, 통신사 보도를 어떻게 좌지우지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언론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이 되어야 하지만, 권력의 무릎 위에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애완견이 된 현실은 한국 언론의 추악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국민들이 “수신료 모아 JTBC에 주자”는 말을 했을까?

‘언론장악방지법’과 ‘방송의회’

언론장악방지법은 낙하산 사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취지로 정부 여당에 쏠린 공영방송 이사회 중립화, 사장추천위원회와 특별다수제 도입, 노사 동수 추천의 편성위원회 구성 등을 뼈대로 한 방송 관계법이다. 야당과 언론단체들은 언론개혁을 위해서는 이 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금 공영방송은 정권의 애완견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신뢰도와 시청률 모두에서 철저하게 망가졌다. 공정방송을 요구한 기자와 PD들은 해직되거나 제작 현장에서 쫓겨나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빨리 공영방송을 정권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게 하고, 언론이 권력의 감시견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방송위원회 위원과 공영방송사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방송의회’에 위임해야 한다. 방송의회를 구성하는 방송 의원은 교통비조차 받지 않는 완전 무보수 명예직이다. 방송 의원들은 방송위원회 위원과 방송사 사장 등을 선출하는 투표권만 행사하면 된다. 방송 의원 규모는 사회 각계를 대표하고 외부 압력과 로비를 거의 무의미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게끔 수천 명으로 한다. 선출은 완전 자유경쟁 공모제로 하되 후보자들은 수천 명의 방송 의원 앞에서 자신의 비전과 소견을 역설해 본격적인 검증을 받도록 한다. 이것은 지금처럼 정치권의 정략적 갈라먹기 싸움에 이전투구로 전락하며 공정성 갈등을 유발하는 기존의 방식보다 나을 것이다. 방송계를 눈만 뜨면 싸움질하기에 바쁜 정치권의 대리 전쟁터로 만들거나 볼모로 잡아두는 건 우리 모두의 자학이다.

 

2014년 손석희는 제13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송건호언론상 심사위원회는 “손석희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면서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는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엄격한 자기관리와 신중한 처신으로 정진한 결과”라며 “한평생 언론인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던 송건호 선생의 자세를 수상자에게서 발견했다”며 선정 배경을 밝혔다. 손석희는 수상 소감에서 “송건호 선생 시절로부터 물려받은 용기, 즉 정치권력으로부터 저널리즘을 지켜야 하는 용기뿐만 아니라, 왜곡된 시장논리로부터 본래적 의미의 저널리즘을 지키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처지”라며 “저희로서는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를 부리고 싶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극단을 도구로 한 이익의 추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우리 언론에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 되묻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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