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대한민국 판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요? TV뉴스에서 근엄하고도 무표정하게 판결문을 낭독하는 판사님들의 모습은 좀 무겁고 보통 사람들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어 뵙니다. 엄중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분들이니만큼 불가피한 일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원고 편집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처음 문유석 판사님을 뵈었을 때 내심 놀랐습니다. 문판사님은 그런 이미지와는 정말 다른 분이셨거든요.
양복 차림이 아닌 캐주얼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나타나셨는데, 왠지 그 모습부터 제 눈에는 무척이나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법복을 입을 때가 아닌 경우에는 늘 편한 복장을 선호하신다고 하네요. 인사를 나누자마자 유쾌한 수다가 이어졌습니다. 최근에 읽은 재미있는 책, 재미있게 본 미드에서 시작해 살아온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거리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편집부와 함께 맛집으로 소문난 중국요리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으레 맛집들이 그렇듯 소박하지만 손님들로 북적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판사님은 굴짬뽕을 시켰습니다. 친구들끼리 그러듯, 판사님은 자신이 주문한 굴짬뽕이 나오자 이 집에서 제일 소문난 거니 자신이 먹기 전에 저희더러 먼저 국물 한번 떠먹어보라 하시더군요. 얼떨결에 숟가락을 들이밀어 국물을 떠먹어보았는데, 그 세심하고 친근한 태도에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더랬습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유석 판사님은 제가 그간 대한민국 판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원고에서 느껴졌던 인간다움이, 그대로 진실이었구나 하고요. 손석희 앵커가 문판사님의 따스한 시선이 반가워 판사님의 글을 찾아 읽어왔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나는 문유석 판사 생각의 대부분과 그의 성향의 상당 부분이 나와 겹친다는 데에 경이로움까지 느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러면 훗날 내게 기회가 오더라도 이런 책은 쓸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책이 그냥 그런 많은 책들 속에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 손석희 / [JTBC뉴스룸] 앵커
<개인주의자 선언>은 그렇게 '의외로'(!) 인간미가 묻어나는 책입니다. '개인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차가움에 비해, 오히려 책은 인간다운 삶과 사회를 소박하게 그려나갑니다. 읽다보면 대한민국 판사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살아가는구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어렵게 어렵게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왜 문유석 판사님을 두고 ‘법조계의 유재석’이라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대한민국 판사는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가, 그리고 판사 문유석이 그리는 더 나은 사회는 어떤 곳인가 궁금하신 분들은 <개인주의자 선언>을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편집자 박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