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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최선의 삶』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신종"의 출현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
바람이 있다면 저와 비슷한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 저는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며 세상을 볼 수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아요. 비정상에 내몰린 아이, 그렇지만 평범한 보통의 아이, 자신의 마음속에 불씨가 있는 아이와 제 소설이 소통되었으면 해요. _‘수상작가 인터뷰’ 중에서
열여섯 살 때부터 가출을 일삼음. 아파트 층계참에서 숙식 해결. 장애인 화장실에서 빨래. 번화가의 비루하고 불순한 ‘아저씨’들에게 붙어다니며 먹고 잠. 유흥업소 취직. 폭력의 피해자이자, 폭력의 가해자. 살인미수.

이것은 당신과는 너무 다른 삶인가요? 경험한 적도 없고, 굳이 상상해보려 하지도 않았던 위험한 삶인가요? 아마 그렇겠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인생은 너무 생소해서 마주하는 것 자체로 충격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 책을 들여다볼수록 저 인물이 그 특이한 이력에 어울릴 만큼 별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고, 서서히 그와 나의 닮은 지점들이 가슴을 찌르듯이 다가옵니다.

주변에서 비정상적이라고 몰아갈 뿐, 아주 뛰어난 면도 없고 아주 악한 성정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인간. 꿈이 있다면 그저 ‘병신같이 살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말하는 인간. 그 내면은 실상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이 인간의 삶이 저토록 강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상을 안개처럼 포위한 절망으로부터 ‘꿈’을 지키려면, 이 안개를 온몸으로 뚫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진한 체취 때문이 아닐까요.

뒹굴거리다보면 누가 누구인지 잊혔다. 자정이 되면 친구의 생일을 축하했다. 아침이 되면 순서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비치되어 있는 칫솔 두 개로 차례차례 이를 닦았다. 같은 샴푸로 머리를 감고 같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거울 앞에 놓인 스킨과 로션을 같이 발랐다. 아무나 쓸 수 있는 샴푸 냄새와 로션 냄새를 똑같이 풍기며 같은 냄새가 되었다. 나는 친구들이었다. 전날에 묵었던 손님이었다. 옆방, 윗방, 아랫방 손님이었다. 내일 묵을 손님이었다. 아무나였다. 그날은 세상 누구나의 생일이었다._32쪽
『최선의 삶』의 세 축은 화자인 ‘강이’와 그의 친구 ‘아람’ ‘소영’입니다. 강이는 여느 한국 부모의 욕심대로 대전의 낙후된 지역에서 좋은 학군으로 위장 전입한 열여섯 살 여중생인데요. 학교가 있는 전민동은 그녀가 살고 있는 읍내동과 너무도 다른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읍내동에서 쌓아온 예측의 기술들이 번번이 빗나가는 새 학교에서, 강이는 ‘외부인’으로서의 고독에 빠지지요.

어느 날 강이에게 친구들이 하나둘 다가옵니다. 하찮고 연약한 것들을 온몸으로 보듬는 아람은, 바로 그런 사람이기에 강이에게 손을 내밉니다. 원하는 미래를 현재로 당겨오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일 줄 아는 소영은 강이를 자신의 새로운 말로 포함시키고요. 그런 친구들에게 강이는 ‘개 같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애정과 의리를 쏟아붓습니다. 그들을 구분짓는 외벽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세 아이는 하나의 냄새, 하나의 색깔이 되어 몰려다니지요.

하지만 만약 아람이 강이보다 더 하찮은 존재를 찾아낸다면, 소영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강이라는 말을 버리기로 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나는 투어를 강이라고 불렀다. 강이는 평소에는 잘 헤엄치지 않았다. 플라스틱 물풀 뒤에 보라색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침을 먹을 때에도 점심을 먹을 때에도 강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강이는 혼자서 살았다. 다른 물고기와 함께 있게 된다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온전치 못할 것이다. 상대방이 사라지거나, 자신이 사라지거나. 그것이 투어의 운명이었다. 살기 위해서 강이는 혼자서 살았다. _149쪽
더이상 줄거리를 구구절절 쓰는 것은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아무런 정보 없이 꼭 한 번씩 읽어주길” 바란다는, “누구나 읽으면 그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나질 못할 것”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이 소설에 특기할 점이 있다면, 성장소설의 ‘신종’ 출현을 알리는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최선의 삶』은 시인으로 활동하던 임솔아가, 십 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시달려온 머릿속 악몽을 누군가에게 건네기 위해 쓴 첫 소설입니다. 주인공 강이는 작가가 설계한 그 악몽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데 집중하는데요. 감정을 절제하고 최선의 결과를 향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강이라는 캐릭터는 지금까지의 성장소설 속 풋풋하고 애틋한 주인공들과는 확연히 다른, 섬뜩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합니다.

이 글은 강이의 그런 특징을 담은 문장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최선의 삶』이 “다른 응모작과는 ‘체급’ 자체가 다른 소설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를 이 소개글에서 조금이나마 확인하실 수 있도록.
꺼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의 미래처럼 캄캄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해본 적이 없었다. 미래를 다짐해볼 때는 많았다. 언젠가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다, 먼 곳에서 더 먼 곳을 향해 가며 살 것이다, 이불 속에서 얌전하게 죽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다짐이었다. 다짐으로 점철된 미래를 펼쳐놓았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예언이 내게는 다짐뿐이었다. _21쪽

무릎은 꿇지 말았어야 했다. 무릎을 꿇으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는 태도, 희망을 향해 다가가려는 태도가 나를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병신이 되지 않으려다 상병신이 되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을 상상했다. 그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유일한 출구였다. 무차별하게 흙을 긁어쥐던 순간처럼, 아무 곳에도 손을 뻗을 수 없는 순간에야만 그러잡을 것이 생기리라는 희망이었다. _124쪽

여전한 모든 것을 함정이라고 불렀다. 더럽고 교활한 함정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소영에게 무릎을 꿇었던 그날보다 더 굴욕적인 함정들이 일상처럼 되어갔다. 익숙해지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나를 내버려두기로 작정했다면, 내가 내버려둘 수 없게 해야겠다고 작정하기 시작했다. _128쪽

아이들은 대부분 눈빛을 참지 못했다. 바라본다는 것만으로 ‘뭘 야려’ 하며 싸움을 걸곤 했다.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일은 저절로 벌어질 것 같았다. (…) 비누를 잡아 손가락 끝에 비빈 후에 그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흰자위가 벌겋게 충혈되었다. 눈물이 흘렀다.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눈에 비누를 비비고 눈을 감지 않는 연습을 했다. 물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종이비누 한 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수시로 주머니 속에서 종이비누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눈을 비볐다. 친구들이 지나갈 때마다 아래턱을 떨면서 쏘아보았다. 친구들은 개의치 않았다. _128~129쪽

우리집은 네 마리의 짐승이 각각 다른 광경에게 말을 걸며 사는 공간이었다. 강이는 아무도 없는 베란다 창문에 대고 귀를 쫑긋거렸고, 나는 방에서 옷장 깊숙이 넣어둔 식칼을 꺼내 보았고, 엄마는 거실에서 무릎 위에 천수경을 펼치고 있었고, 아빠는 안방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잤다. 우리는 각자의 어항에서 홀로 싸움을 했다. _161쪽

수많은 창문들 속에는 수많은 임씨와 유씨가 살고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임씨는 유씨를 죽이고 싶어할 것이다. 어쩌면 죽일 것이고, 어쩌면 죽이지 못할 것이다. 뉴스를 보며 사람들은 매일매일 혀를 찰 것이다. 수많은 임씨와 유씨는 금세 잊힐 것이다. 그러나 밤이 오면 누군가는 임씨와 유씨가 되어 자신의 악몽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잊혀도 그런 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_169쪽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_174쪽

임솔아
1987년 대전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재학중.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YAF 우수작가로 선정.

편집자 정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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