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작가의 책」이토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상

편집자의 책소개

지하철에서 옆 사람이 무언가를 읽고 있을 때, 뭘 읽는지 궁금해집니다. 표지가 보일 때까지 시선을 거두기 힘들어요. 절반 이상 읽어가는 책이라면 더 궁금해집니다. 표지를 보고 나면 생각해보죠. 저 사람은 왜 저 책을 읽을까? 저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이렇게나 산만히 주변을 관찰하는데, 저 사람은 자기 세계에 몰두해 있군. 이런 자기 비하적 잡생각까지. ^^

 

친구가 재밌다고 하는 책은 좀더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영화처럼 추천받고 바로 보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꼭 리스트에 간직하고 있죠.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더 신뢰하게 되고요. 읽지는 않더라도, 그 책으로 친구의 취향을 다시 가늠해보게 됩니다. 이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의외네, 잘 어울리네 등등. 그에게 새로운 걸 배우고 수혈받는 경우도 많고요.  

 

여하간 저는 이렇게 책으로 몰래몰래 오지랖을 펄럭이며 혼자 즐거워하는 것인데! 지난겨울 대놓고 저에게 "앞자락 맘껏 펼치라" 하는 책을 만나게 되어버렸지 않겠어요.

「작가의 책」이토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작가의 책>. '작가 55인의 은밀한 독서 편력'

뉴욕 타임스의 서평지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서 매주 연재되는 작가 인터뷰를 추려 묶은 책입니다. 한 주에 한 명씩 작가를 골라, 독서 취향 및 습관에 관한 모든 것을 묻는 책이에요.

"최근 읽은 최고의 책은?"

"가장 영향을 받은 책은?"

"끌리는 이야기 종류는?"

"실망스럽거나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책은?"

"대통령에게 권하고픈 책은?"

"당신의 책장 중에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지금 침대맡에 놓인 책은?"

"어릴 때 좋아한 책은?"

대략 이런 공통 질문을 필두로 각 작가에게 어울리는 여러 질문이 펼쳐집니다. 같은 질문이라도 작가마다 반응하는 양상이 참 달라요. 예를 들어, 실망스러웠던 책이 뭐냐고 물으면,

 

게리 슈테인가르트는 이렇게 방어를,

"아무리 제가 생각 없이 떠들어대기로는 문단에서 으뜸가는 수다쟁이라 해도, 어떤 책을 싫어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일만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책을 한 권 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세요?"

 

유머러스한 작가, 데이비드 세다리스는 이렇게 고전으로 답을 회피하고요,

"『모비 딕Moby Dick』을 읽어내느라 진짜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리처드 도킨스는 이렇게,

"『오만과 편견』이요. 제 편견임에 틀림없고, 그게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누가 누구와 결혼을 할지, 그들이 얼마나 부자인

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 걸 어떡합니까?"

(참 그다운 대답이죠?)

 

조이스 캐럴 오츠는 이렇게나 겸손히,

"저는 이런 종류의 ‘실망’을 저 자신의 기질상의 결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감상할 줄 아는 것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여기도록 훈련받았어요."

 

맬컴 글래드웰은 이렇게 대담하고 직설적으로,

"이런 말을 해서 정말 찜찜하긴 합니다만, 그게 조앤 K. 롤링이 쓴 것인지도 모르고 『쿠쿠스 콜링Cuckoo’s Calling』을 읽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대답하죠. ㅎㅎ 작가들의 개성이란.

 

"고인이 되었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가운데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란 질문에는 어떻게 반응하냐면요,

 

도나 타트는 이렇게나 질문을 반기고요,

"이것이 제게는 가장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매일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지요. 어떤 작가의 책을 정말로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작가와 함께 어울리기 좋은 건 아닐 거예요. 오스카 와일드를 만난다면 정말 재밌을 거 같아요."

 

스콧 터로는 이렇게 젠틀하게 피하죠.

"대체로 저는 “작가에 대해서 알려면 그 작가를 만나는 것보다는 그의 책을 읽는 게 더 낫다”는 말을 믿는 편입니다."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너무나 진지하게, 상상력에 불을 지피며

"일단, 셰익스피어한테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 “또다른 사람들은 누가 오지요?” 하고 셰익스피어가 묻지요. “톨스토이요” 하고 제가 대답하면, “그날 저녁에는 제가 좀 바쁠 것 같군요” 하고 셰익스피어가 응답합니다. 그다음엔 카프카한테 전화를 걸어 묻자..." (너무 길어서 생략)

 

존 어빙은 이런 질문에는 굳이 답하지 않겠다는 듯,

"제가 감탄하는 작가들이라면, 그들이 쓴 책에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알아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좋은 작가는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그의 책을 읽는 게 더 낫지요."

 

줌파 라히리는 좀더 까칠하게, 뭐 이런 질문을 하냐는 듯,

"제가 읽은 책의 작가를 만난다는 발상에는 별로 흥미가 가질 않네요. 말하자면, 저한테 주어진 길을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죠."

 

라고 답합니다. 작가들이 인터뷰어에 호응해주는 정도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_+ 저는 이 책의 이런 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모르는 작가가 나와도 재밌게 읽을 수 있었어요.

 

유명한 작가의 인터뷰는 물론 더 재밌었고요.

 

예를 들어, 이언 매큐언에게 "시도 읽냐"고 묻자

"아마 독서가 주는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는 무아無我라는 요소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의 망각하는 거죠. 지난번에 시를 한 편 읽다가 그런 경험을 했는데요, (...) 시로부터 “다시 돌아온다”는 느낌은 정확히 어떤 걸까요? 뭔가가 더 가볍고, 부드럽고, 넓어졌다가 결국 다시 원래대로 바뀌고 말지만, 결코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닌 그런 경험이 아닐까요?"

이렇게 친절하고도 멋지게 대답해주는 것이라든지,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끼는 것을 묻자,

"지금은 제 최근작 『스위트 투스』를 『속죄』 바로 앞에다 두고 있지요."

라고 답해주는 것,

(속죄보다 아끼는 작품이라니, 대체 어떤 작품일지)

 

"소설은 여기저기로 마구 뻗어나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결코 완벽할 수가 없는 장르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그걸 추구하지도 않죠. 시는 완벽을 성취해낼 수가 있지만—단 한 단어도 바꿔선 안 되죠—중편소설이 그런 경우는 정말로 드물지요."

라며 자신의 작품관을 드러내는 부분이 재밌었어요.

 

이 외에도, 조앤 K. 롤링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으로 "콜레트 전집"이라고 답하는 부분(전 이게 정말 의외였어요. 영미권 작가들은 대부분 영미권 책 내에서 고르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녀는 콜레트를 고르더라고요)이라든지, 이사벨 아옌데가 미국인 남편과 살다보니 "글이 스팽글리시로 써져버린다"고 말하는 부분, 어렸을 때 좋아했던 책을 묻자 이창래 작가가 "부모님이 이민을 오시는 바람에 영어로 말도 못하고 책도 읽어주시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부분, 그렇지만 가장 좋아하는 책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라며, 모범생 이민자 소년에게 매우 유혹적인 책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이민자로서 그의 삶이 느껴져서 짠했어요)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지리 관련 책을 하나 추천해달란 질문에 태연하게 자기 책을 추천하는 부분, 존 어빙이 제임스 설터나 커트 보네거트, 귄터 그라스에게 편지를 써서 답장받았다는 이야기, 로베르토 볼라뇨에 대한 주노 디아스의 열렬한 사랑 등등이 펼쳐볼 때마다 재미났습니다. 

 

보통 작가를 인터뷰하면, 철학이나 인생사 같은 것을 묻게 마련인데요, '독서'에만 포커스를 맞춰 질문하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55인 작가의 다채로운 대답이 엮어내는 세계는 어찌나 생기 있고 아름다운지. 편집을 하며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책을 읽느냐를 떠나서, 우리 생에서 읽는 행위, 읽는 욕망 자체가 멋지다고!

 

책을 만들다보면, 손을 털고 다시는 열어보고 싶지 않은 책이 있는가 하면, 곁에 두고 계속 열어보고픈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감사하게도, 두고두고 열어보고픈 책이 되었습니다. 저마다의 독서가 촘촘히 얽혀 이루는 책 세상! 그 세상을 조망하고픈 분들께 권합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모든 독서에 가열찬 뽐뿌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편집자 류기일

오늘의 실시간
BEST
munhak
채널명
문학동네
소개글
문학동네는 인간과 세계 사이에 가로놓인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통로를 꿈꾸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