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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묵은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갈 수밖에 없던 이유

[MT리포트] 오징어게임 흥행의 명과 암(上)

[편집자주] 국산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이 국내 OTT 시장에 파장을 일으킨다. 국산 콘텐츠의 글로벌 흥행과 경쟁력 확대는 환영할 일이나 국내 제작업계의 글로벌 플랫폼 종속과 국내 OTT 플랫폼의 위기론이 교차한다. 오징어게임이 드러낸 국내 제작업계와 토종 OTT의 현주소, 성장을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오징어게임 이상하다며 다들 거절" 10년 묵은 대본, 넷플은 OK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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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포스터

"'오징어 게임'은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들 안 된다고 했는데 넷플릭스가 된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용기를 가지고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황동혁 감독 언론 인터뷰)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흥행을 이루면서, 더 많은 콘텐츠 창작자들이 넷플릭스를 주목하고 있다. 초기에는 '급이 다른' 제작비가 창작자들이 넷플릭스를 선호한 이유였다면, 최근에는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인 제작 환경이 더 많은 국내 창작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2008년에 구상하고 2009년에 극본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투자자, 배우들에게 다 거절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10년이 훌쩍 넘어 작품을 내놓은 지금도 '잔혹한 소재'라는 이유로 일부에선 꺼렸을 정도다. 그럼에도 넷플릭스는 형식과 수위, 길이 등의 제한을 두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흥행작을 탄생시켰다. 황 감독이 "넷플릭스가 금기를 깨고 있다"고 평가한 대목이다.


특히 오징어 게임에는 2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국내 제작환경도 급변하며 200억원은 '그리 대단치 않은 금액'이 됐다. CJ ENM은 자사 OTT 티빙에 5년간 5조 원을 쏟아 붓기로 했고,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협력한 웨이브도 2025년까지 1조 원을 투자한다. KT는 2023년까지 OTT 시즌에 4000억원을 투입한다. 창작자들의 넷플릭스 선택을 '자본력'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넷플릭스의 한국산 콘텐츠는 국내 제작환경에서 소화하기 난감한 다양한 소재를 과감히 시도했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또 다른 히트작 '디피(D.P)'는 탈영병을 잡는 헌병 이야기를 다뤘는데, 군대 내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만일 지상파 방송사가 다뤘다면 군 당국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을 소재다.


이전 히트작인 '인간수업'은 금기시되는 청소년 성매매를 다뤘고, '스위트홈'은 한국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크리처물이다. 세계적 'K-좀비' 열풍을 부른 '킹덤' 시리즈의 김은희 작가 역시 여러 인터뷰에서 "넷플릭스 덕분에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자유로운 제작 환경은 일찌감치 스타 창작자들을 매혹시켰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는 국내 멀티플렉스 대부분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넷플릭스 덕분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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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봉, 틸다 스윈튼, 안서현, 스티븐 연,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다니엘 헨션, 봉준호 감독(왼쪽부터)이 영화 '옥자'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chmt@

또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영화 '거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성호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을 연출했다. 메가히트 드라마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연출자인 이응복PD도 이미 '스위트홈'을 넷플릭스 흥행작 반열에 올렸다.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등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태호PD마저 MBC 퇴사 후 첫 작품으로 넷플릭스 예능 '털보와 먹보'를 선택했다. 그는 지난 7일 SNS에 "세상에 나쁜 콘텐츠 아이디어는 없다 단지 콘텐츠와 플랫폼의 궁합이 안 맞았을 뿐이다"라며 "여러 플랫폼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그걸 증명하고 싶다"고 적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곧바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도 창작자들이 국내 OTT 대비 넷플릭스를 선호하는 이유다. 김은희 작가는 이미 국내에서 스타였지만, 킹덤의 흥행으로 이전과 비교할 수 있는 글로벌 단위의 명성을 쌓았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제작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며 "전세계 시청자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놀이들을 골랐다"고 소개했다.


창작자들 뿐만 아니라 제작사들에게도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얹으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제작사에 보장 수익을 제공하는 넷플릭스 특유의 수익 배분 방식 때문이다. 다만 넷플릭스는 지식재산권(IP)을 가져가기 때문에 작품이 흥행하면 할수록, 향후 사업적 가치를 고려하면 넷플릭스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셈이 될 수 있다. 국내 OTT들이 넷플릭스와 차별화해 제작사를 공략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디테일이 다르네"…넷플릭스 韓콘텐츠 성공 뒤에 이 기업들 있다

"한국 콘텐츠, 전세계 대중문화로 자리매김" 넷플릭스 협업 국내 콘텐츠 제작기술 업체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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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의 콘텐츠는 말 그대로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콘텐츠 산업을 넘어 연관 분야 전반에서 약 5조600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29일 넷플릭스는 지난 5년간 한국 창작 생태계와의 동반 성장 성과를 조명하는 '넷플릭스 파트너 데이'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게임' 등이 한국 시리즈 최초로 미국 시청률 1위에 오르며 글로벌 흥행기록을 써나가자 이에 부응해 협업하는 국내 전문 기술기업들을 소개하며 한국 콘텐츠산업의 우수성과 상생효과를 부각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 진출 5년, 경제효과 5.6조·고용효과 1.6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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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VP /사진=넷플릭스

이날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VP(부사장)는 "지난 5년간 한국 작품 80편을 190개국에 전파했다"면서 "한국에 진출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700억원을 투자해 일자리 1만6000개를 생산하고 5조600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올초 약 5500억원에 달하는 연간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해외 시청자의 한국 콘텐츠 시청에서 넷플릭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영화와 드라마에서 넷플릭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4.3%와 63.2%에 달한다. 예능과 애니메이션도 모두 50% 이상이다. 강 VP는 "전세계 회원들이 한국 콘텐츠를 가깝게 즐길 수 있도록 31개 언어 자막과 20개 언어 더빙을 제공한다"며 "국내 창작업계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콘텐츠의 인기로 국내 콘텐츠 제작 능력도 재조명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촬영 현장을 관리하는 피지컬 프로덕션팀과 후반 작업을 따로 담당하는 포스트 프로덕션팀을 별도로 두는 등 촬영뿐 아니라 특수분장, 색 및 음향 보정, 더빙과 VFX(특수시각효과) 등 제작기술을 매우 중시한다. 이성규 넷플릭스 피지컬 프로덕션 총괄 디렉터는 "콘텐츠 제작 기술 구현에 어느 정도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지 미리 예측해 전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며 "체계적 프로세스는 창작자가 최상의 콘텐츠를 만들어 시청자에게 선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작사들 "넷플릭스 체계적 지원 인정…역량 발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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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에서 좀비 특수분장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넷플릭스

이날 행사에서 넷플릭스는 관련 기업으로 셀(특수분장), 덱스터스튜디오(색 보정), 라이브톤(음향), 웨스트월드(VFX), 아이유노SDI(더빙 및 자막) 등을 소개했다. 셀은 넷플릭스 한국 상륙 당시 첫 공개한 봉준호 감독의 오리지널 영화 '옥자'부터 '킹덤', '스위트홈' 고요의 바다' 등에서 특수 분장을 맡았다. 특히 '킹덤' 시리즈에서 선보인 좀비 특수분장을 위해 150일간 3000여명의 좀비들을 작업하면서 1톤 이상 가짜피를 쓰는 등 디테일한 제작 능력이 전세계적으로 호평받았다.


황호균 셀 대표는 "190개국에 동시에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자 경험"이라며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성장과 함께 특수분장 아티스트들이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물리적 지원은 물론 체계적인 일정, 예산 관리로 충분한 사전 제작 기간을 제공해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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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리호' 색 보정 전후 비교사진. /사진=넷플릭스

최근 넷플릭스와 2년간의 장기 계약을 맺은 덱스터스튜디오와 덱스터의 자회사 라이브톤 역시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콘텐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덱스터스튜디오는 '킹덤', '보건교사 안은영', '사냥의 시간', '승리호', '낙원의 밤', '새콤달콤', '고요의 바다' 등에서 색 보정을 담당했다. 박진영 DI본부 덱스터스튜디오 이사는 "덱스터스튜디오의 기술력에 UHD·HDR·4K 등 최신 기술을 반영한 넷플릭스의 가이드가 더해져 한층 뛰어난 작업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했다. '옥자', '킹덤', '승리호', '고요의 바다' 등의 음향을 맡은 라이브톤은 올 상반기 실적이 전년보다 49% 늘었다. 최태영 대표는 "현재 작업 중이거나 공개를 앞둔 콘텐츠 물량이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라고 했다.


웨스트월드는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고요의 바다' 등에서 VFX를 진행했다. 설립 당시만 해도 임직원이 10명도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170여 명이 근무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넷플릭스 측은 "실제 최근 국내 VFX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최근 10년간 국내 VFX 업체 평균 매출은 4배 가까이 늘었다"라고도 했다. 넷플릭스와 2015년부터 함께 한 아이유노SDI도 60개국 언어 더빙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연간 60만 시간에 달하는 자막 번역과 9만시간에 달하는 더빙 분량을 소화한다. 오혜석 글로벌 고객 디렉터는 "자막과 더빙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 해외 팬들에게 감동과 재미까지 전하는 현지화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창작 생태계의 확장과 함께 콘텐츠 관련 분야의 전문성과 위상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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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홈' 특수시각효과 전후 비교 사진. /사진=넷플릭스

한국 콘텐츠의 위상을 재확인한 넷플릭스는 연말과 내년에도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고 흥행몰이에 나선다. △백종원 토크예능 '백스피릿'(10월 1일) △한소희 주연 '마이네임'(10월15일) △동명 웹툰 원작 '지옥'과 예능 '신세계로부터'(11월) △김태호 PD 예능 '먹보와 털보'와 SF 시리즈물 '고요의 바다'와 일반인 연애예능 '솔로지옥'(12월) △김혜수 주연의 '소년심판'과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내년 1월) △서현 주연의 로맨스 영화 '모럴센스'(내년 2월) 등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김수현 기자 theksh01@mt.co.kr, 변휘 기자 hy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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