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채에 1년치 연봉"... 공인중개사는 '꿈의 직업'?
공인중개사의 '꿈'
[편집자주] 공인중개사 40만명 시대다. 시장은 포화상태지만 매년 1만~2만명씩 추가로 쏟아지고 있다. 최근엔 합격자중 20, 30대 청년이 40%에 육박한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꿈의 직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가격 담합과 허위매물로 시장을 교란하는 '적폐'로 몰리기도 한다. 공인중개사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20, 30대 몰리는 공인중개사…한 채 중개에 1년 연봉?
안정적인 고소득 직업 기대…실제론 영세 공인중개사 상당수
정부가 강남 재건축·고가 아파트 이상 과열 현상을 막기 위해 무기한 현장 단속을 예고한 가운데,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부동산이 휴업으로 불이 꺼져 있다. /사진=뉴스1 |
"부동산 중개 수수료가 너무 비쌉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처럼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인하해 달라는 요청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최근 집값이 급등하면서 중개 수수료 부담도 덩달아 커졌기 때문이다. 매물을 소개하고 서류에 도장 몇개 찍어 주는데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는 것은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꿔 말하면 공인중개사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꿈의 직업'으로 인식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취업난과 고용불안 등으로 안정적인 고소득 직종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수험생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28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올해 공인중개사 2차 시험에는 8만327명이 응시해 이중 21%인 1만6885명이 최종 합격했다. 불과 5년 전인 2013년 3만9343명보다 응시자수가 2배 이상 늘었다. 20~30대 합격자는 6379명으로 10명 중 4명 꼴이었다. 40~50대 중장년층이 많아 '중년의 고시'로도 불리지만 최근에는 20~30대 비율이 약 40%일 정도로 젊은층에게도 인기다.
손영호 에듀윌노원 원장은 "최근 취업난이 심각한 원인도 있지만 공인중개사는 자신이 한 만큼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전문직이라는 인식에 응시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과연 공인중개사는 쉽게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꿈의 직업일까. 우선 중개 수수료만 놓고 보면 고소득이 가능한 직업인 것은 사실이다. 매물 1~2건만 중개해도 웬만한 직장인 한달 월급을 능가하는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거래금액이 크면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을 한번에 벌 수도 있다.
수수료율은 거래금액에 따라 0.4~0.9%로 책정된다. 서울 평균인 8억원짜리 아파트를 중개했다면 요율 0.5%를 적용해 수수료는 400만원이고, 매수·매도인에게 각각 받을 수 있다. 1건 중개에 총 800만원을 버는 셈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1채를 20억원에 중개했을 경우 수수료는 3600만원에 달한다.
고소득을 올리는 공인중개사도 있지만 실제로는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영세 공인중개사가 더 많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시장은 점점 포화상태인데 중개앱 수수료와 광고비 등 추가 비용이 늘면서 수익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지난해 회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연 매출액이 48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73.5% 였다. 임대료 인건비 광고비 등 영업비용으로 월 100만~200만원을 지출한다는 비중이 35%였고 월 200만~300만원을 쓴다는 응답자도 18% 였다. 협회 관계자는 "지출을 고려하면 한 달 수입이 100만원도 안 되는 사업자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개가 '서류에 도장 몇 번 찍어주는 쉬운 일'이라는 것도 대표적인 오해라고 항변한다. 매수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융자나 압류 등 부동산의 각종 권리관계를 분석하는 일은 기본이고, 매수자가 원하는 매물을 찾기 위해 몇 날 며칠 발품을 파는 일도 상당하다.
최근에는 개업 공인중개사가 급증하면서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올 6월말 기준 전국의 개업 공인중개사는 10만5269명으로 2014년 보다 24.2% 증가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폐업자 수는 △2015년 1만3844명 △2016년 1만4457명 △2017년 1만4903명에 이어 올해는 상반기까지 8191명으로 갈수록 증가 추세다.
유재기 공인중개사협회 이사는 "정부가 나서서 공인중개사 수급을 조절해야 공인중개사들이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사무엘 기자
"우리가 적폐?" 뿔난 공인중개사들의 항변
집값 급등기 의례적 단속대상, 거래시장 침체 우려 속 경쟁 심화 ‘겹악재’
"집값만 오르면 범죄자 취급을 받는데 일하면서 굉장한 자괴감이 듭니다"
양천구에서 20년 넘게 중개업소를 운영한 50대 공인중개사 A씨는 “정부가 부동산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하다”며 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중개사부터 옥죄는 발상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8·2대책 이후 연초부터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이 급등하자 정부와 지자체는 올해 초 부동산 투기 특별단속반을 꾸렸다.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단속반에 긴급체포, 임의동행 등 사법경찰권을 줬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발표 직후 강남, 용산 등 고가주택 거래가 많은 지역에선 문을 닫은 중개업소가 늘었다. 정부는 이런 현상이 불법 부동산 거래를 줄인 효과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현업 중개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단속반이 현장조사 실적을 위해 고의성없는 작은 실수까지 잡아내 과태료를 물리기 때문에 아예 며칠간 영업을 접는게 낫다는 것이다.
중개사들은 ‘집값 담합’ 주범이란 세간의 인식도 서글프다. 실제 가격하한선을 만들고 호가를 띄우는 주체는 부녀회나 입주민 인터넷카페가 대부분이며 중개업소는 이 과정에서 피해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용산구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집주인 요청에 시세보다 낮은 급매물을 올리면 누구 마음대로 집값을 떨어뜨리냐며 욕설에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며 “동네 부동산 커뮤니티에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어 아예 거래를 못하도록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동부이촌동 49개 중개업소는 악의적이고 지속적인 호가 담합 압력을 넣은 주민들을 지난 2월 검찰에 고소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원들이 지난 8월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열린 공인중개사무소 무차별 단속 중단 궐기대회에서 정부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
집값 담합을 막기 위해 도입한 인터넷 허위매물 신고센터도 부작용이 발생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부동산매물클린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8월 역대 최대인 2만1824건의 허위매물 신고가 접수됐는데 대부분 ‘시세보다 낮은 매물’이 지목됐다. 허위매물 신고시 48시간 동안 인터넷 노출이 막히고 해당 매물을 등록한 중개업소의 매물 등록이 중단된다는 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부녀회, 입주민 단체 등의 중개업소 업무방해 행위 및 공인중개사의 시세 조작 행위를 모두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의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
정부 부동산 규제로 거래가 줄어 업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20~30대 젊은층도 공인중개사 시험에 뛰어들면서 매년 신규 합격자가 1만~2만명씩 증가한다. 자격증을 대여한 중개업자나 떳다방 등 불법 영업도 많다. 설상가상으로 ○방·△방 등 온라인 중개대행사도 시장을 넓히고 있다. 변호사들도 법인을 꾸려 중개업 시장을 노크한다. 중개수수료 인하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중개사들은 매년 1만개 이상의 중개업소가 문을 닫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침체에 규제 강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업계가 더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얘기다.
유엄식 기자
자격증 따면 중개 OK? 수천만원 '권리금'부터 구해야
'자격증' 만으론 자기 사업하기 어려워… 개업까지 험난한 길
#40대 A씨는 20여년 전 취득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장롱 면허'로 묵혀두고 있다. A씨는 "권리금부터 월세, 직원 월급까지 내야 할 비용이 많아 개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A씨처럼 개업의 장벽을 넘지 못한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자들이 30만명에 달한다. 개업 조건으로 의무화된 사무실 마련부터 난항을 겪기 때문이다.
28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공인중개사 자격 시험이 처음으로 실시된 1985년부터 올해까지 해당 자격증 취득자수는 42만2957명이다. 이중 개업 공인중개사는 지난 6월 기준 10만4919명에 불과하다.
공인중개사 합격률은 2016년 31.1%, 2017년 31%에 이어 2018년 21%로 낮아졌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1차에서 부동산학개론 등 2개 과목과 2차 부동산중개사법 등 3개 과목으로 진행된다. 1·2차 모두 100점 만점 기준으로 매 과목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 득점해야 합격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법상 합격자는 부동산 매물을 중개할 수 있는 공인중개사 지위가 부여되지만 곧장 사무소를 열 수는 없다. 개업을 위해선 자격 취득 이후 사무소를 개설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는 개업 절차가 의무화돼 있기 때문이다. 사무소 개설 등록 전 1년 이내에 시도지사가 실시하는 실무 교육(28~32시간)도 받아야 한다.
중개사무소 매물은 아파트 대단지나 거래가 활발한 곳일수록 비싸고 권리금만 1억원 이상인 곳도 있다. 권리금은 '피'(프리미엄)라고 불리며 신규 임차인이 사무실 명칭을 유지하고 고객 장부 등을 전달받기 위해 기존 임차인에게 지불하는 대금이다.
'친목회' 회원 지위를 기존 임차인으로부터 승계받기 위한 비용이기도 하다. 친목회는 회원끼리 매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지역마다 존재하고, 지역에 따라선 회원과 비회원 간 공동 중개를 제한하는 등 배타성이 높다.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도 있지만 암암리에 활동해 적발은 쉽지 않다. 개업 비용 마련이 어려운 중개사들은 개업 공인중개사를 보조하는 '소속 공인중개사'로 활동하며 보수를 받는다.
50대 공인중개사 B씨는 "간혹 권리금이 전혀 없는 중개소 임대 매물도 있는데 기존에 다른 업종이 영업하던 곳"이라며 "친목회에 들지 못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차라리 주민센터에서 직거래"… 중개수수료 딜레마
집값 상승에소비자 불만 높아져… '전속중개+실비' 없는 현행 보수체계 '탈법' 부추겨
"차라리 주민센터에서 직거래를 하게 해주세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올라온 글이다. 아파트처럼 획일화된 부동산 거래는 주민들이 공신력 있는 주민센터에서 직거래를 하게끔 해달라는 목소리다.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자 공인중개사에 대한 불신과 수수료에 대한 반감도 높아졌다.
공인중개사들도 할 말은 많다. 2015년 9억원이상 주택과 오피스텔 등에 대해 중개 수수료율이 이미 낮춰진데다 서울을 비롯해 일부지역을 제외한 지방 부동산시장은 수년째 싸늘하다. 정부도 부동산 서비스 선진화를 위해 수수료체계 개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국토교통부는 '중개 보수 선진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장기과제 6개 관련 연구용역을 내년 예산에 반영했다.
용역 세부 과제로는 △단계적 보수지급 세분화 △주거용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인 상업용 건물을 제외한 부동산에 대해 중개보수 자율화 △직접거래 거래당사자의 요구시 계약서 및 확인·설명서 개업공인중개사 작성 교부 및 실비지급 근거 마련 등이 포함돼있다.
중개보수 선진화는 중개시장 정상화를 위한 업계의 해묵은 과제다. 우리나라는 전속중개 계약시스템이 아니라 매도자가 하나의 매물을 복수의 중개사무소에 내놓다보니 과다경쟁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에 따른 중개사들의 매몰비용도 크다.
거래가 성사됐을 때에 한해 일정 요율의 수수료를 받다보니 성사되지 못한 매물에 대한 임장과 권리분석, 공부 열람 등의 실비를 개별중개사가 전적으로 떠안아야 한다. 시장이 침체돼 부동산 거래가 줄면 고정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지난 2014년 11월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원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중개보수 요율 인하를 골자로 한 정부 개선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이재윤 기자 |
중개사무소 취업 2개월만에 그만뒀다는 한 공인중개사는 "시장이 포화돼 경쟁이 치열한데 법과 원칙을 지키면 손님을 뺐기더다. 혼자 깨끗한척 한다며 주변 중개사들도 공동중개를 꺼린다. 당장 십만원, 이십만원이 아쉬운 중개사는 다운계약서를 쓰더라도 법정한도 이상의 수수료를 준다는 고객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람에 따라 간보고 수수료를 매긴다는 소비자 불만도 높다. 현행 공인중개사법엔 중개 수수료율의 한도만 정해 놓고 소비자와 중개사가 '협의'를 통해 정하게 돼있다. 하지만 중개사들은 암묵적으로 최대수수료율에 맞춰 중개보수를 받고있다. 협의한들 소비자 입장에선 협의과정이 만만치 않다.
'복덕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중개서비스를 선진화하려면 수수료체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개사들의 자정노력과 함께 선량한 중개인이 지속적 중개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도 필요하단 목소리다.
김승종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센터장은 "전속중개나 상담료, 실비 인정의 필요성엔 상당수가 공감하나 문제는 그래서 어느선까지 얼마나 인정해주느냐는 세부지침"이라며 "소비자부담을 최소화 하면서도 시장질서를 세울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