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비밀병기 '실버버드' 그 이후…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우주비행기의 현재와 미래]우주비행기 개발 주도권 경쟁…2억~3억원 민간 우주관광 시대 '초읽기'
1인당 2억~3억원, 지상 100km 상공(준궤도)에 올라 90여분간 파아란 지구를 감상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이르면 2~3년내 이른바 ‘우주관광’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꿈 같은 일을 현실화하고 있는 것은 로켓이나 위성도 아닌 ‘우주비행기’이다. 실제로 민간 우주 탐사기업 버진갤럭틱은 2014년 우주비행기를 이용한 우주여행패키지를 일인당 20만 달러(약 2억 2000만원), 100명 한정판으로 사전 예약을 받았다. 그 결과 예상을 웃돈 6만5000명이 몰려 전 세계 이목을 끈 바 있다.
실버버드 설계도면/자료=STEPI |
◇히틀러가 탐낸 우주비행기=우주비행기는 통상적으로 활주로에서 비행기처럼 이륙하거나 초대형 비행기에서 떨어져나와 우주선처럼 지구 궤도를 돌거나 준궤도 비행을 한 뒤 다시 대기권에 진입해 착륙할 수 있는 비행체를 가리킨다. 지구 궤도에 진입하거나 준궤도 비행을 하려면 최고 속도가 마하 5(음속 5배·시속 약 6110㎞)에서 20(시속 2만448㎞) 사이에 도달해야 한다. 때문에 초고속 비행체인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에겐 다소 낯설지만 우주비행기라는 개념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1940년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독일 시절 독일군이 V-2 미사일에 사용된 로켓엔진을 이용해 만들려한 준궤도 폭격기 ‘실버버드’(Silver Bird)가 세계 최초 우주비행기 개발 프로젝트다. 약 3㎞ 레일에서 가속 이륙해 145㎞ 고도까지 오른 뒤 시속 5000㎞ 속력으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날아 목표지점에 폭탄을 투하하는 비행체로 기획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불리해진 전세를 뒤집을 전략용 무기로 활용하려 했지만 본격 개발에 들어가기 전 독일이 패하면서 설계도면으로만 남았다.
우주비행기가 현실화한 것은 1959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미국공군(USAF)이 개발한 초음속항공기 ‘X-15’가 이착륙에 성공하면서다. 마하 6.7의 속도로 107.8㎞ 고도비행이 가능한 최초 유인(有人) 우주 비행기다. B-52 전략폭격기 밑에 붙어 있다 일정 고도에 오른 후 분리돼 독자비행하는 형태로 제작됐다. 50년 전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시험비행에 참여했고 최근 개봉한 우주영화 ‘퍼스트맨’의 첫 장면에 이 모습이 등장한다.
X-15/사진=NASA |
1981년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운용하기 시작한 우주왕복선은 개념상으로 우주비행기로 볼 수 있다. 이륙 시에는 비행기처럼 생긴 궤도선이 거대한 로켓 부스터에 실려 발사되지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할 때는 비행기처럼 활주로로 착륙하는 형태이기 때문. NASA 공학자들은 기체나 엔진을 재사용한다. 운용비가 크게 들지 않을 것으로 여겼지만 대기권 돌입 시 발생하는 열을 견디기 위해 외벽에 붙이는 내열타일을 모두 갈아야 하는 등 정비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1년 고정비로 NASA가 부담한 고정지출비가 60억달러(약 6조7000억원)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결정적으로 1986년(챌린저호) 2003년(컬럼비아호) 두 번의 폭발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2011년 NASA는 공식적으로 비행기 타입의 우주왕복선 개발을 포기한다.
X-15가 실질적인 출발점이었다면 ‘스페이스십1’(Spaceshipone)은 2라운드 개막의 성격이 짙다. 미국 스케일드콤포지트가 개발한 ‘스페이스십1’은 최초 민간 유인 준궤도 우주비행기이자 우주비행이 가능한 지 알아보기 위한 시제기(試製機)였다. 2004년 6월 스페이스십1은 2대의 비행기가 옆으로 나란히 붙은 특수 제작 비행기 ‘화이트나이트’(White Knight·백기사) 배에 붙어 미국 모하비사막에 있는 공항을 이륙했다. 화이트나이트가 16㎞ 고공에 오르자 스페이스십1은 로켓엔진을 점화하며 최고 고도 111.64㎞까지 올라 대기권 비행을 하고 90분 뒤 에드워드공군기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발사중인 챌린저호/사진=NASA |
스페이스십1을 통해 우주여행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 회사는 버진그룹과 손잡고 버진갤럭틱을 세운 후 6명의 승객과 2명의 승무원이 정원인 ‘스페이스십2’(Spaceshiptwo)를 개발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스페이스십2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페이스십2 VSS 유니티’에 2명의 조종사를 태우고 우주공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버진갤럭틱은 앞으로 100회 이상 추가 시험비행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한 뒤 1인당 약 25만달러(약 2억8000만원)의 비용으로 우주여행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준궤도 지점에 올라 약 5분간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동시에 둥근 지구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이미 700여명이 참여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서도 우주비행기를 임대하는 형태로 우주관광사업을 추진한 일화가 있다. 민간재단인 예천천문우주센터는 2009년 12월 미국 유인우주선 제작사 엑스코어(XCOR) 에어로스페이스와 파일럿 1명과 승객 1명이 탑승하는 준궤도 우주비행기 ‘링스’(Lynx) 도입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센터는 이 우주선을 2013년쯤 도입하고 경북 예천공항을 우주관광의 허브로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당시 책정된 예상 우주여행 이용료는 1억원대. 하지만 이 계획은 엑스코어의 파산으로 백지화됐다.
◇활용도 무궁무진…최적의 연소실험 장소=우주비행기는 특별한 재주꾼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미래융합연구부 최기혁 책임연구원은 “우주비행기로 새로운 ‘궤도서비스’ 사업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화물을 보내거나 인공위성이 소행성에서 채취한 토양이나 희귀광물, 동식물 및 세포 실험 성과물을 지구로 회수할 수 있다. 또 수천억 원짜리 인공위성에 결함이 발생하면 그 즉시 전문수리요원을 급파해 고장원인을 진단·수리하고 수명을 다해 폭발 직전에 놓인 통제불능 위성에 접근, 낙하산을 달아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뜨려 연소하는 청소부 역할도 맡길 수 있다. 첨단 고정밀 카메라를 탑재하면 군사·안보용으로도 쓸 수 있다.
최근에는 로켓·여객기·자동차엔진, 보일러 등의 각종 연소실험을 수행할 최적의 장비로도 주목받는다. 우주공간은 무중력 상태다. 순수한 연소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우주비행기에 실험하고자 한 부품을 실어 우주 밖으로 나가 테스트할 수 있다. 지상에서 이뤄지는 연소실험 장비·시설은 중력 때문에 매우 복잡한 구조를 띠고 오차도 따른다. 반면 우주 실험은 물리적으로 순수한 연소실험이 가능해 부품의 정밀도·완성도를 향상할 수 있다. 이처럼 용도가 다양한 덕에 우주비행기는 새로운 틈새시장을 창출할 것이란 기대 속에 미래 우주경제를 이끌 차세대 유망주로 떠올랐다.
◇NASA도 물밑 지원=우주비행기는 민간 주도, 상업 목적의 우주 개발이 중심인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 최대 승부처다. 앞으로 지구 저궤도는 민간에 맡기고 달·화성 탐사에만 집중키로 한 NASA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급품을 실어나르는 일을 우주벤처기업에 맡기는 형태로 측면 지원한다.
이를테면 NASA는 2016년 시에라네바다(SNC)와 올해부터 2024년까지 ISS에 우주인과 보급품을 실어나르는 정기 물자수송 계약을 했다. SNC는 자체 개발한 7인승 우주왕복선 ‘드림체이서’를 통해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한 번 운송 시 NASA가 지급하는 비용은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NASA는 해당 분야 전문인력 양성도 지원한다. 통상 우주인을 ‘애스트로넛’(Astronaut)이라 부르지만 NASA는 우주비행기 조종사를 ‘스페이스크루’(Space Crew)라 칭한다. 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이미 NASA는 늘어날 우주관광 수요에 대비해 5~10년 전부터 스페이스크루 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30년까지 우주개발 중장기 추진전략에는 우주비행기 개발계획이 아예 빠졌다. 대부분 투자가 한국형 발사체나 다중임무위성 개발분야로 한정된다. 일각에선 전세계 우주개발 트렌드에 맞춘 연구 다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기혁 책임연구원은 “‘누리호’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으로 우주비행기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다가섰다”며 “앞으로 대기권 재돌입, 우주 기동, 랑데부 도킹 등의 기술을 추가로 확보한다면 우주관광을 위해 굳이 미국 유럽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움말=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연(STEPI) 부연구위원
류준영 기자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