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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의 '마지막 이사'를 도왔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고인이 떠난 뒤 유품 챙기고, 흔적 정리하는 '특수청소전문가'의 하루…죽은 집을 살려, 삶과 다시 잇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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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숨진 이가 마지막으로 누웠던 소파. 김호중 사회복지사가 발견했을 땐, TV만 나오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이곳에 이사온 지 불과 한 달 반만이었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영상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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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현관에 들어섰을 때, 그 집의 이 끊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난달 21일, 지병이 있던 집주인은 TV를 보다 소파에서 갑작스레 숨졌다. 10여 일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 고이 하늘로 보내줬으나, 고인의 짐은 미처 챙겨주지 못했다. 핸드폰 번호 뒷자리가 '1004(천사)'이면서, 검은 옷을 입은 이들과 함께 거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 널린 담뱃갑과 라이터, 빈 사이다병, 소파엔 잘린 옷가지와 핸드폰. 그리고 온 집에 짙게 밴 건, 생경하고 아찔한 죽음의 내음. 그 모든 광경에 아득해졌으나, 검은 사내들은 이미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110리터짜리 검은 비닐에 물건을 담고, 검게 물든 바닥에 특수용액을 뿌리고, 구더기를 청소기로 세차게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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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수습하느라 미처 챙기지도, 정리하지도 못한 고인의 흔적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영상PD

섭씨 33도. 이 한여름에도 누군가는 홀로 죽을 것이고, 그의 죽음은 쉬이 발견하기 힘들 것이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집엔 진한 흔적이 남을 터였다.


생(生)이 끝날 때의 그 복잡한 잔상들은 누가 다 정리하고 있을까. 짐작만해도 버거운 그 수고로움을 잘 기록해서 알리고 싶었다. 드라마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로. 20일 오전 9시, 경기도 동두천을 찾아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47), 직원 박용철씨와 함께 세상을 떠난 이의 집 청소를 했다.

기름 찌든 내, 혈흔 지우기…그래서 '특수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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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가, 고인이 남긴 바닥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특수한 방법을 써야하는, 특수청소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영상PD

그 집은 완전히 밀폐돼 있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갔어도 아무 것도 열지 못했다. 새별씨는 "창문 열면 큰일난다. 이웃집서 냄새난다고 민원 들어온다"며 블라인드도 걷지 않았다. 용철씨가 물건을 옮기느라 현관문을 열어놓았더니 "빨리 닫으라"고 재촉했다.


그 안에서 냄새에 갇힌 채 청소를 시작했다. 그걸 '특수청소'라 부르는 이유를 금세 알았다. 고온이라 더 심한 기름 찌든 내, 피와 단백질이 썩어 뒤섞여 밴 진한 검갈색빛의 잔재, 벽까지 타고 올라온 구더기의 흔적. 그건 걸레질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 닦이는 게 아녔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새별씨가 기름을 분해하는 용액을 넓게 뿌렸다. 잠시 두자 거품 같은 게 생겼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천으로 검은 얼룩을 닦았다. 부패해 굳어버린 것 같던 흔적들이 스르르 지워지기 시작했다. 뿌리고 멈추고 지우는 작업이 이어졌다. 금세 무릎이 아파왔다. 새별씨는 그래서 '무릎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악취를 유발하는 것도 세균이란다. 그걸 잡으려면 과산화수소수나 과탄산소다 같은, '산소 계열'이 효과가 좋다고 했다. 새별씨는 "처음에 냄새 잡으려고 온갖 약품을 수천만 원씩 들여서 다 써 봤다"고 했다. 소독약도 두 가지나 쓴다. 그걸로 집에 들어오기 전엔 바이러스를 잡고, 집을 나갈 땐 세균을 없앤다고.

"왜 그리 사셨어요", 고인을 향한 안타까운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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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과 과자, 비타민, 화장품 등 고인이 남기고 간 물건들./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 이사를 하는 동안엔, 어쩐지 고인이 와서 지켜보는 것 같단다. 새별씨 얘기다.


그래서 일할 때 혼잣말하듯, 고인을 향한 얘길 많이 한다. 그 죽음이 안타까울 땐 잔소리도 한다. "선생님, 왜 이러셨어요, 왜 이렇게 하고 지내셨어요" 같은 거다. 이날도 그는 고인에게 잔소릴 많이 하고 싶었으나 삼켰다고 했다. 소화기 관련 약봉지가 있는데도, 담뱃갑과 탄산음료가 많이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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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인의 집에서 나온 수많은 술병들. 새별씨는 "희망의 끈을 놓고 살았던 이들의 흔적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어떤 집에 가면, 그가 죽을 수밖에 없던 이유가 보인다. 새별씨는 "고인의 집에서 많게는 소주병 2000개까지 빼 봤다"고 했다. 방의 절반이 술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이 안 열릴 정도였다. 단체로 함께 생을 끊었다는 곳도 가봤다. 거기선 로또가 많이 나왔다. 그런 곳에서 일하고 오면 씁쓸하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또 다른 현장에선 살려고 애쓴 흔적이 묻어난다. 폐암 말기였다는 고인의 집에선, 채 다 먹지도 못한 차가버섯이 많이 나왔다. 그의 집에선 보험회사서 상담할 때 받는 기념품 같은 것들이 많이 나왔다. 고인의 딸은 "아버지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다'며, 평소에도 그런 걸 많이 줬었다"며 울었다.


침실의 걸레받이를 뜯었을 때 어떻게 들어갔나 싶을 정도로 구더기가 많이 나왔다. 새별씨는 "구더기도 살겠다고, 이렇게 도망가 숨은 것"이라고 했다. 구석구석, 필사적으로 말이다. 죽음과 삶이 뒤섞인 곳에 서서, 그리 맘이 복잡했다.

죽으려다 맘 돌린 이도…'무료 특수청소'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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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자꾸 흘러서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때가 많았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집 청소, 그러나 냄새 때문에 문을 열 수도 없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니 머리가 아파왔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영상PD

꽉 막힌 공간서, 작업복을 겹쳐 입고 일하려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적응되지 않는 냄새는 고성능 마스크조차 푹푹 뚫고, 코를 집요하게 찔러댔다. 새별씨가 카메라 배터리를 교체할 겸, 잠시 쉬자고 했다. 1층으로 향했다.


커다란 아이스박스엔 얼음물과 시원한 이온 음료가 가득 담겨 있었다. 땀을 잔뜩 흘린 터라 한 병을 벌컥벌컥 금세 비웠다. 새별씨는 "살기 위해선 억지로라도 마셔야 한다"고 했다. 돌로 된 턱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런데 웬 카메라 배터리인지, 왜 현장을 찍는지 물었다. 실은 새별씨는 유튜브를 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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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별씨의 유튜브 채널 영상에 달린, 구독자의 댓글. 죽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가 생각을 바꾼 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가 고민을 하면서도, 영상을 올리는 이유다./사진=김새별씨 유튜브 영상 댓글 화면

이유가 있었다. 외국에서 시집 와서 남편에게 맞다가 생을 끊으려던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새별씨의 특수청소 영상을 봤다. '사람이 죽으니 이렇게 남는구나, 대신 잘 살아봐야 겠다', 그리 용기를 얻었다고. 새별씨는 그 여성과 다른 구독자들과 함께 쓰레기 집에서 사는 어르신을 위해 치우는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1년 넘게 집 안에 있다가 처음 세상에 나와 좋다"며 웃었다.


그러니 영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겠다 싶었다. 더 나아가 무료 특수청소를 해보기로 했다. 고인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많아서였다. 이날 방문한 고인의 집도, 실은 무료 특수청소였다. 비용으로 따지면 150~200만원에 달했다. 청소 비용 절반은 유튜브 구독자의 후원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새별씨가 낸다. 어떤 중학생은 3000원을, 어떤 초등학생은 300원도 보낸다. 비공식적인 무료 청소까지 합치면, 벌써 30건 넘게 진행했다고.

'마지막 이사'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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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묻은 소변 흔적을 가위로 오리는 새별씨.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사진=이주아 머니투데이 영상PD

한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의 짐은 생각보다 많았다. 냉장고에선 반찬 통과 김치와 냉동식품과 달걀이 빼곡했고, 주방 수납장엔 냄비, 후라이팬과 컵과 그릇들이 가득했다. 밥솥에는 차마 다 먹지 못하고 남긴 밥이 있었다. 비닐로 겹겹이 싸고, 냄새가 나오지 않게 테이프로 밀봉했다. 새별씨는 "비닐이 한 50개 넘게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 이사'라는 건, 옮겨갈 곳이 더는 없단 거였다. 그러니 침대나 옷장도 다 분해하고, 소파도 바깥으로 빼야 했다. 비닐 폐기물을 수도 없이 빼고 나니, 이젠 무거운 폐기물을 옮겨야 했다. 그걸 다 들고 1층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숨이 턱턱 막혔다. 익숙해진 것 같았던 냄새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다시 강하게 났다. 새별씨는 "여긴 그래도 양호한 편이고, 심한 데는 쓰레기를 퍼내다시피 해야 한다"고 했다.


고단하지만 끈기 있게 청소가 이어졌다. 집이 겨우 비워지기에 '이제 깨끗한 것 아닌가' 싶었더니 아직 멀었단다. 청소기를 돌리고, 특수용액을 뿌려 흔적을 닦고, 물걸레를 빨아 닦고, 락스에 묻혀 또 닦아야 했다. 심지어 전동 드릴에 브러쉬까지 끼워서 흔적을 닦겠다고 돌렸다. 새별씨는 "짐만 꺼내고 닦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해야할 게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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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를 들어 밑바닥의 더러운 부분을 잘라내어, 내부까지 청소한 뒤에야 폐기물로 배출할 수 있었다. 새별씨는 "이 소파도 청소하는 이들이 있을텐데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고인에 대한 예의랄까, 이젠 그가 없는 집일지라도. 집요하고 섬세한 작업에선 그런 게 물씬 느껴졌다. 새별씨는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개고, 침대 커버를 벗기고, 매트리스에 묻은 소변까지 가위로 동그랗게 오려 깨끗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버리는데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때, 그의 설명이 날 부끄럽게 했다.


"쓰레기 치우는 것처럼 하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깔끔하게 하려고 합니다. 대충 할 거면 왜 유품 정리사라고, 마지막 이삿짐이라고 하겠어요. 그게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지요."

부친의 '흑백 사진', 다이어리엔 '엄마 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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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 사진. 오래돼 보이는 흑백사진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점심을 먹고 와서 작업을 이어갔다. 오후엔 벽지와 장판에도 냄새가 배어 있다며, 북북 다 뜯어냈다. 벽지에도 '결'이 있어, 함부로 뜯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실제로 옆에서 해보니 잘 안 뜯겼다. 그게 다 노하우였다. 벽지를 다 뜯고도, 작업 칼로 계속해서 슥슥 긁어냈다. 구더기 때문에 물든 부분이 있다며, 원인 제거를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


새별씨가 "두통이 올라와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가 되어서야, 고인이 숨진 거실이 깨끗해졌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니 나도 머리가 띵하고 아팠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근육 경련이 온단다. 새별씨가 용철씨에게 "두통약 좀 달라"고 찾았지만, 가지고 있던 여덟 알은 모두 다 먹은 뒤였다. 만성적으로 아픈 게 두통, 허리통증, 비염 등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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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다이어리에는 누군가의 생일이 하나씩 표시돼 있었다. 챙겨주고 싶었던 것이리라./사진=남형도 기자

고된 특수청소 작업이 거의 다 끝난 뒤에야, 청소하며 챙겨둔 고인의 유품이 하나씩 다시 보였다. 고인의 부친으로 보이는 흑백 사진과 서랍에서 꺼낸 가족관계증명서, 다이어리에 표시된 '멍충이 생일''엄마 생신'이란 손글씨, 다 맞추지 못한 퍼즐까지도. 고인의 모친은 치매로 요양원에 있다고 해서, 김호중 사회복지사는 "고인 누나가 멀리 있는데, 전달할 수 있을지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죽었던 집에, '햇빛'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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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한 달여 만에 햇빛이 다시 들어오고 집이 숨을 쉬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쓸고 닦고 몇 번을 더 반복하니 냄새도 많이 빠졌다. 그렇게 고인이 숨진 지 한 달 만에 창문이 열리고, 블라인드가 올라갔다. 햇빛이 쏟아져 방바닥을 비추었다.


마치 오래 죽어 있던 집이 되살아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집엔, 다시 또 다른 생(生)이 이어지리라. 그러니 새별씨와 용철씨가 하는 일은, 죽음과 삶을 다시 잇는 일이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별씨는 "누가 들어와 살 수 있던 집이 아닌데, 새 삶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또 한 가지. 어머니와 한때 구멍가게를 했고, 치매로 요양원에 가신 뒤 홀로 남아 힘들어했으며, 다시 잘살아보려 애쓰다 갑작스레 떠난 고인. 그래서 황급히 가느라 놓고 갔던 그의 마지막 짐까지, 고이 잘 챙겨 보냈다. 용철씨는 깨끗한 집을 보며 "또 한 분을, 좋은 곳으로 보낸 것 같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어느 현장에선 '천국의 계단' 같았다는 128개 계단을 오르내리며 짐을 빼고, 자정까지 치워 50만원을 받으니 왜 이리 비싸냐며 도둑놈 소릴 듣고, 밥 먹으러 식당에 가선 이게 무슨 냄새냐며 저쪽에 앉으란 말을 듣고, 회사 역시 냄새 민원 때문에 여섯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는 이들. 쉽지 않은 일.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새별씨는 이렇게 답했다. 의외로 단순했다.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운명' 같아요. 그리고 저의 마지막은 이랬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까운 사람 하나 죽었다고. 그래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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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epilogue).


청소하던 새별씨의 작업복 왼쪽 가슴에 새겨진 꽃 하나.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에델바이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스무 살 청년 이야기를 했다. 외국에 사는데,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 했다. 그는 꿈을 안고 한국에 왔다. 그러나 작은 여관방에서 숨졌단다. 청년의 가방 속 노트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꿈이 도봉산을 보는 건데, 눈에 담아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 유서에 눈물이 났단다.


그 얘기를 듣고 새별씨에게 물었다. 그동안 청소했던 집을, 고인을 기억하느냐고. 새별씨가 답했다. 그걸 어떻게 잊느냐고. 다 기억하고 있다고. 저라도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집에 와 찾아보니, 에델바이스의 꽃말은 '소중한 추억'이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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