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 ‘요기요’ 팔고 ‘배민’ 얻은 속사정 보니
서울 마포구 배민라이더스 중부지사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인수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제시한 ‘요기요’ 매각 명령을 전격 수용키로 하면서 그 배경에 귀추가 쏠리고 있다. ‘요기요’는 DH한국법인(DHK)이 직접 운영하는 배달 앱이다. 업계에선 배민을 인수하려면 요기를 팔라는 공정위 승인조건을 사실상 불허 결정으로 해석하는 분위기였다. ‘양자를 들이려면 적통을 포기하라’ 식의 조건을 DH가 끝내 받아들인 건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과 배민의 가치를 그만큼 높이 샀기 때문이다. 난관도 없지 않다. 공정위 조건에 맞추기 위해선 최대 1년 안에 요기요를 매각해야 하는데, 매수자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DH의 공정위 요기요 매각 수용, 파격적 반전 평가
DH는 28일 공정위 조건부 승인 발표 이후 “내년 1분기까지 인수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제시한 승인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업계에선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공정위 심사보고서를 통해 DH코리아 매각 조건이 업계에 알려졌을 때만 해도 DH측은 “공정위 제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 시장 내 여론 등을 감안할 경우, 심사 결과를 뒤집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고 수용이냐 계약 철회냐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매각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민 인수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더 크다는 얘기다.
배달의민족 김봉진 의장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현재 국내 배달앱 시장에서 배민의 점유율은 78%.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팡이츠 등 신규 배달앱들이 새로운 경쟁 위협으로 대두된 상황에서 당초 기대했던 M&A를 통한 마케팅비 절감 효과가 크지 않고, ‘시장 점유율 제한’ 강제조치보단 차라리 자산 매각이 낫다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내 시장보다는 아시아 시장에서 배민의 가치와 김봉진 의장의 리더십 시너지에 더 무게를 뒀다는 분석도 있다.
니콜라스 외스트버그 DH 창업자 겸 CEO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우아한형제들과의 협업을 실현하는데 한걸음 더 더가서게 돼 감격스럽고, 김봉진 의장을 식구로 맞이하게 돼 기대된다”며 “아시아 전역에 우리 입지를 확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기요 매각이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됐지만 아시아 시장 공략이라는 큰 목표를 감안해 과감하게 배팅한 셈이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파트너십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배달 산업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DH는 지난해 12월 13일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국내 1위 배달앱 배민을 인수해 출혈경쟁을 지양하고 우아한형제들의 우수한 마케팅 노하우와 DH의 물류 인프라, 해외사업 경험을 결합해 급성장하는 아시아 배달음식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취지였다.
DH는 싱가포르에 DH와 김봉진 의장 등이 절반씩 출자해 조인트벤처인 ‘우아DH아시아’를 세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작사는 한국과 베트남, 일본 등 아시아 배민 지역법인과 12개 DH 지역법인을 총괄한다.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인 김봉진 대표는 우아DH아시아의 의장이자 집행이사(Executive Director)를 맡는다. 현재 푸드판다아시아의 CEO인 제이콥 안젤레와, 우아한형제들의 현 CFO겸 CSO인 오세윤부사장은 합작회사의 공동 대표 (CEO)로 선임돼 푸드판다아시아와 우아한형제들 사업을 이끌게 된다. 우아DH아시아는 배달·공유주방·아시아 디마트 등 퀵커머스 등 DH 아시아 사업과 함께 우아한형제들 사업을 거느릴 예정이다. 김 의장은 또 DH 본사에 구성된 글로벌 자문위원회 멤버 3명 중 1명으로 외스트버그 CEO와 에마누엘 토마신 CTO(최고기술책임자)와 함께 DH 경영을 이끈다.
한편, 이번 매각이 최종 성사되면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등 경영진과 투자자들은 40억 달러(약 4조3840억원) 규모의 잭팟을 터트리게 된다. 김 대표를 비롯한 우아한형제들 경영진 주식 13%는 DH 지분으로 맞교환되는데 김 의장이 DH 경영진 중 최대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또하나의 스타트업 성공신화가 결실을 맺게 되는 셈이다.
요기요 누구에게 어떻게 팔까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서울의 한 요기요플러스 매장 앞에 배달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다. 2020.06.02. bjko@newsis.com |
관건은 ‘요기요’를 누구에게 어떻게 팔 것이냐의 여부다. 현재 요기요와 배달통을 포함한 DH코리아의 시장점유율(지난해 거래액기준)은 20.9%로 배민(78%)의 3분의 1가량이다. 이용자 수 기준으로는 30%가 넘는다. 투자업계에서는 요기요가 시장에 나올 경우 인수 금액이 2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평가한다. DH의 배민 지분(88%)인수 가치가 4조7500억원에 달했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배달 앱 이용이 급증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로선 쿠팡과 카카오, 유통기업들까지 인수 후보군으로 물망에 오르내린다. 특히 쿠팡은 지난해 8월 배달 앱 시장에서 쿠팡 이츠를 출시한 이후 공격적 확장 행보를 보여왔다. 배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라이더들에게 대폭 인상된 배달비를 지원하고 있다. 입점 식당이나 소비자에게 통 큰 프로모션도 제공한다. 이는 쿠팡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의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고 있어서다. 비전펀드는 2018년 11월 쿠팡에 20억 달러(약 2조3000억원)를 투자했다.
하지만 DH로선 잠재적 경쟁자들을 일단 매수 후보자에서 제외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배달앱 시장에 진출할 신규 사업자를 찾아 공정위가 제시한 6개월 이내 매각하기란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공정위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 6개월간 연장해 최대 1년까지 시간을 줬지만 충분치 않다. 1년내 매각이 이뤄지지않으면 일별로 5억원 가량의 이행강제금(매각대금의 1만분의 1)을 물어야 한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배달앱 서비스가 각광받는게 사실이지만 배민이 70%로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는데다 최근 당국의 규제도 강화추세여서 기업들이 인수에 선뜻 나설지 의문”이라면서 “결국 요기요에 대한 잠재력과 시장평가가 관건인데 1년 내 매각은 쉽지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성훈 기자 search@, 이진욱 기자 showgu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