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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2개'…할머니가 위험하다는 신호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홀로 어르신 집 앞에 '안부 묻는 우유' 400개 배달해보니…우유 2개 이상 쌓이면 '위험 신호', 고독사도 막지만, 움직이기 힘든 어르신에겐 유일하게 영양 챙기는 식사이기도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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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매일유업 우유대리점 점장이, 홀로 사는 어르신의 집에 우유를 넣고 있다. 다시 우유배달을 갔을 때, 우유가 쌓여 있는지를 보고 '안부'를 확인한다. 2개 이상 쌓여 있다면 위험 신호여서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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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쯤 됐을까. 작은 차가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길을 거침없이 나아갔다. 여기, 서울 종로구 창신동, 위아래로 심하게도 굴곡져 있던 동네. 차 조수석에 앉아 있으니 흡사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어질어질했다. 나도 모르게 오른편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뒤 트렁크에 잔뜩 실린 우유들이 플라스틱 상자에 붙들려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오르막길도 아니에요. 진짜 오르막을 아직 못 보셔서 그렇지. 여긴 운전 못 하면 안 돼요."


빙긋 웃으며 운전대를 쥐고 있던 사람, 김태용 점장(55). 그는 매일유업 성동·광진 우유대리점 점장이면서, 이 특별한 우유 배달을 10년 넘게 해왔다고 했다. 배달할 사람 명단도, 주소도 전혀 안 보고 종횡무진 골목길을 누비던 그의 차가 이내 멈추었다. 휙 하고 빠르게 내려 차 트렁크를 열더니, 능숙하게 손에 우유 여러 개를 끼고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발걸음이 빨라 황급히 쫓아갔다. 새벽 기온은 영하 10도, 헉헉거리자 입김이 훅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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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사는 홀로 어르신의 집. "잘 지내시는지요?" 우유로 그리 안부를 묻는 거다./사진=야간모드로 찍고 있는 남형도 기자

'끼이익', 초록색 낡은 철제 대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문 앞에 보라색 우유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김 점장이 우유가 꺼내졌는지 확인하더니, 이어 새 우유를 집어넣었다. 불빛은 꺼져 있고 TV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적막한 시간이라 김 점장이 소곤대며 말했다.


"102세 할머님이 사시는 집이에요. TV를 저렇게 틀어놓으셔요. 소리가 좀 크죠? 귀가 어두우셔서…"


그리, 그와 함께 홀로 사는 어르신들 안부를 우유로 묻고 있었다.

우유 2개가 쌓이면…괜찮은지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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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고독사한 어르신의 집. 소파에 고스란히 흔적이 남았다. 누구도 알기 힘든 죽음이다./사진=남형도 기자

2021년 여름에 '고독사' 현장에 갔었다. 어르신은 돌아가신 지 10일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시신이 부패해 집 밖에 냄새가 빠져나온 시간이었다. 어둡고 오염된 집에 들어섰었다. 숨진 이로부터 나온 피와 기름이 온 집에 배어 있었다. 생경하고 아찔한 죽음의 내음이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혼자 사는 삶, 그러니 도무지 알 길 없는 죽음. 그 마지막 흔적이 너무 복잡하고 진해서 상념에 잠겼었다.


그 외로운 죽음을 알아차리는 게 '우유'다. 실제 지난 1월 25일, 서울 송파구에서 최모 어르신이 숨졌다. 배달됐던 우유가 주머니에 쌓여 있었다. 어르신이 우유를 빼지 않았던 거다. 그걸 본 배달원은 그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단 걸 알았다. 고독사가 길어지지 않았다. 우유로 안부를 살펴서였다. 쌓인 우유가 1개면 주의, 2개면 위험 신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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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로 안부를 물을 수 있다고. 이 같은 아이디어가 점차 많아진다면 사각지대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사진=어르신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이는 2003년,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호용한 이사장이 처음 시작했다. 당시 홀로 어르신 가정 100곳에 배달을 시작해 현재 3323곳으로 늘었다(올해 1월 기준). 2만여 명이 개인 후원을 한다. 우아한형제들, 골드만삭스 등 기업 20곳이 이에 보태고 있다. 매일유업도 '소화가 잘되는 우유' 매출 1%를 2016년부터 기부하고 있다. 현재 어르신 가정에 배달하는 우유이기도 하다.

밤 11시, 커피를 마시고…우유를 차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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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트렁크에 가득 쌓인 우유. 하나하나가 모두 어르신을 향한 '안부'다. 김태용 점장은 이 배달을 위해 작은 차를 장기 렌트했단다./사진=의욕이 불타오르고 있는 남형도 기자

매일 새벽, 어르신 댁에 가서 우유를 배달하러 찾아가는 사람들. 가장 가까이에 다가가 안부를 묻는 이들. 우유배달원 400여 명이다. 그중 한 명인 김태용 점장을, 1일 밤 11시에 만나러 갔다. 배달을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김 점장이 말했다.


"이게, 일이 힘들어요, 기자님. 그냥 1~2시간만 하시고 가세요. 중간에 대학로에 내려 드릴게요."(김 점장)


"저 이거 끝까지 하려고 미리 잠도 자고 왔는데요."(기자)


그 말에, 적당히 취재하고 가라던 이의 너털웃음이 터졌다. 어르신 우유 배달은 아무리 빨리해도 새벽 5시에 끝난단다. 밤새 고생할 걸 걱정해 배려하려던 거였다.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 배달 준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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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커피 두 잔을 싣고 밤샐 준비를 했다./사진=오늘도 마감하며 새벽 커피 마신 남형도 기자

180㎖(밀리리터) 우유 400개를 꺼내어, 차 트렁크에 함께 실었다. 차곡차곡 잘 쌓았다. 다 싣고, 김 점장이 "따뜻한 커피나 한 잔 하고 시작하자"고 했다. 야심한 시각이라 연 데는 편의점뿐이었다. 원두 가는 소리에 한 번, 뜨끈한 커피 한 모금에 두 번, 혹시 올지 모를 잠을 쫓았다.

계단 수십 개 오른 '달동네'…우유를 집 앞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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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동네. 그러니 안부를 묻기가 더 쉽지 않다./사진=오르막길을 헉헉 오르며 사진까지 찍는 게 가능한 남형도 기자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겨울밤, 그래도 따뜻한 우유 배달, 하나하나 어르신 집 앞에 놓으며 뿌듯하게 미소짓는 걸 상상했건만. 웬걸, 역시 모든 건 해봐야 안다고.


숨 가빴다. 정신없었다. 처음 간 종로 창신동 달동네는 좁고 어둡고 경사가 대부분 심했다. 차가 덜컹거리고 멈추고 또 '부우웅' 출발하고 다시 멈추는 게 한없이 반복됐다. 그 진동에, 차 안 컵홀더에 꽂아놓은 커피를 흘릴까 걱정될 정도였다. 배달할 집은 아예 다 아는 듯, 빠르고 정확하게 멈췄다. "다 외우는 거냐"고 물으니, 김 점장은 "그럼요, 배달 명단 보면서 하다간 밤새도 다 못 한다"고 했다.


그 발걸음이 무척 빨랐다. 쫓아가기도 숨 가빴다. 계단이 많아, 많게는 수십 개씩 오르기도 했다. 헉헉, 거리며 뒤따랐다. 다 오르면 집을 향해 또 빠르게 움직였다. 문에 걸린 보라색 우유 주머니가 보였다. 우유가 없어졌는지 살피고, 챙겨간 우유를 다시 넣었다. 한 손에 많게는 4개씩 갖고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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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종로구의 한 동네. 우유를 든 김태용 점장의 뒷모습이 익숙하다./사진=남형도 기자

한 번에 일곱 개를 넣는 집도 있었다. 김 점장은 "원래는 더 자주 넣어줬는데, 이젠 일주일에 한 번 넣는다"고 했다. 이 집 할머니가 "우유를 찾으러 나오는 것도 힘들다"며 그리 부탁했단 거였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 하나씩 빼서 드신다고. 건강이 더 나빠진 걸지 걱정하자, 그는 "나이 드신 분들은 안 좋은 일이 더 많다"고 했다. 돌아오는 걸음이 더 무거웠다.


언덕 많은 동네는, 유독 일주일에 한 번 넣어달란 부탁이 많단다. 동네 특성도 있단다. 김 점장은 "자기 집 위치가 어떤지 아시니까, 미안해하며 자주 오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언덕을 다 오르고, 빌라 5층 계단을 또 오르며 그 배려에 안도했다. "평소 운동 많이 되시겠다"고 하자, 김 점장은 "아주 끝장난다, 돈 벌면서 운동한다"고 웃었다.

"우유를 안 뺐어요, 확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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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주머니에 우유를 넣고 있는 김태용 점장. 넣으면서, 쌓인 우유가 없는지 동시에 확인하는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대부분 불빛이 꺼진 집. 이따금 소리가 흘러나오는 집. 그러나 고요한 집. 다가가 닿을 수 있는 건 어르신들 집 앞까지. 집안의 일은 알 수 없으니. 우유가 확인해주는 안부가 더 절실히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김 점장은 우유주머니가 비었는지를, 하나하나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저절로 알게 되어서 더 그러지 않았을까. 우유를 배달하며, 그 집에 사는 이가 누구인지를. 익명의 누군가가 아는 이가 되는 순간, 그 안부는 더 깊이 물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북촌에 사시는 한 할머니는 잠이 없어요. 여름엔 바깥에 나와 계시거든요. 그럼 제가 그래요. '어머니, 제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유 넣어 드릴 테니 오래 사세요'라고요. 그럼 '야, 나 지금 102살인데 뭘 오래 살어?' 그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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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가 빠지지 않았다며, 김태용 점장이 본사에 확인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런 어르신의 집에 우유가 쌓이기 시작했다면 어떨까. 김 점장은 "우유를 안 빼면 싸인(sign)인 거다, 뭔 일이 있구나. 한 번까진 보고, 두 번부터는 무조건 확인해달라고 한다"고 했다. 엊그저께도 그랬다며 김 점장은 본사에 확인 요청한 문자를 보여줬다. 갑자기 입원하느라 우유를 못 뺀 어르신이었다. 고독사를 발견하는 경우도 1년에 여러 건 있단다. 몇 개월씩 방치되는 일은 없고,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 안으론 발견한다고. 그걸로도 큰 의미였다.

새벽 3시, 24시간 무인 카페에서 고단함을 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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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은 떡볶이와 어묵./사진=순대도 사실 먹고 싶었지만 눈치껏 가만히 있었던 남형도 기자

어느덧 새벽 3시가 넘어갔다. 종로에서 대학로로, 다시 북촌에서 서촌으로. 동분서주 배달이 계속되었다. 허기져 중간에 떡볶이와 어묵을 먹었다. 추운 새벽 공기에 정신을 다잡고, 차가 뒤집힐 듯한 어느 동네의 가파른 경사에 잠을 또 깨웠다. 저벅저벅, 부스럭부스럭, 걷고 우유를 넣는 소리만 좁은 골목을 울렸다.


어느 반지하 빌라에 다다랐다. 흔한 불빛 하나 없어 컴컴했다. 계단이 위험할 듯싶어, 핸드폰 조명을 켜서 김 점장의 앞길을 비춰주었다. 우유를 넣고, 아침에 확인할 누군가를 상상하며 돌아섰다. 지대가 높아 야경이 잘 내려다보였다. 허리를 쭉 펴고 또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집을 지나칠 때쯤엔 '웡웡' 하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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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이지 않는 그늘에 집이, 그 안에 홀로 사는 이들이 빠짐없이 다 있었다. 우유를 배달할 때만큼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을 건네는듯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고단함은 점점 커지고 눈꺼풀이 쌓인 눈처럼 무거워졌다. 결국, 그가 자주 간다는 24시간 무인 카페에 차를 세웠다. 4시간 만에 커피가 또 필요했다. 야식을 얻어먹었으니 내가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들이부었다. 그러면서 또 여러 얘길 나누었다.


"혼자 배달하실 땐 더 졸음을 버티기 힘드실 것 같은데…어떻게 하세요?"(기자)


"헤드폰 끼고 음악도 듣고요. 제가 원래 음악 전공했거든요. 헤비메탈도 많이 듣고, 클래식도 많이 듣지요."(김 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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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한 잔 더 마셔야 했다. 몽롱하다./사진=순식간에 원샷한 남형도 기자

음악을 반대했다던 옛날 아버지 이야기에, 아이가 생겼을 때 투잡을 뛰느라 우유 배달을 처음 시작했단 얘기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단 것도. 노란 카페 불빛에 익어가는 새벽에, 그리 각자 버텨온 시간을 회상하고 들려주며 서로를 깨웠다.

기다리는 어르신 300명…작은 우유 한 팩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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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할 곳이 많을 땐 아예 우유 상자를 들고 걷는다./사진=남형도 기자

배달이 끝날 무렵엔 180㎖ 우유가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무게를 오롯이 알게 되어서. '고독사 예방'만 생각했으나 그건 일부였다. 김 점장은 "주로 지금은 식사를 못 해 우유를 드시는 분들이 많다"며 "건강하지 못한 홀로 어르신이 절반 정도는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양이 불충분하니 우유가 유일한 공급 수단이 되는 거라고. 가슴 한쪽이 어쩐지 저렸다. 경험해보지 못한 나이 듦의 무게.


식사를 배달해줘야 한다. 그래서 맘대로 아프지도 못한단다. 10년 동안 몸살로 토할 듯 아파 쉰 것 말고는 배달을 거른 적이 없단다. 코로나19 예방접종도 4번 다 맞았다고. 이걸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다고. 심지어 이런 얘기까지 들려줬다.


"오토바이 타다 택시가 들이받아서 넘어졌었어요. 갈비뼈가 금 가서 전치 4주가 나왔지요. 근데 입원을 못해요, 배달해야 하니까. 보험사 직원이 전화왔어요, 왜 입원 안 하냐고. 통원 치료해야 한다고 했더니 보험 사기꾼인 줄 알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랬죠. '나를 기다리는 어르신이 300분이 넘는데 어떻게 입원을 하겠어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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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님 댁엔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려 있기도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족 여행도 2박 3일이 최대이고, 딸래미들과 놀아주다가 잠들면 또 나오는 삶의 반복이다. 참 고된 일이라고, 그렇지만 좋은 일이라고 했더니 "한 달 있다 돌아가실 분이, 내 덕에 그래도 6개월은 더 사시겠구나 생각하면 보람은 있다"고 했다. 생각 없이 해야 오래 한다며, 그리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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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글씨지만 마음만은 분명하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래도 그걸 알아주는 이가 있다. 매일 우유를 받는 어르신들이다. 그날 배달할 때 어느 우유주머니엔 힘내라며 음료가 들어 있었고, 다른 어느 날엔 이런 쪽지가 붙어 있는 것도 봤다며, 힘이 났다고 했다. 거기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리 쓰여 있었다.


"우유 선생님, 고맙씁니다. 2023년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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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사는 80대 할머니의 댁이 마지막 배달지였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새벽 4시에 종로구 이화동의 마지막 집으로 갔다. 86세 할머니가 산단다. 일찍 일어나 우유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우유주머니가 걸려 있지 않았다. 김 점장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우유 왔어요, 어머니. 주머니는 왜 안 다셨어?"


그때 알았다. 그 두드림은 걱정이었단 걸. 안녕하다란 말은 어쩌면 노년에 가장 필요하니까.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기 쉬우니까. 다행히 할머니가 집에서 나왔다. 두근거리던 숨이 편안해졌다.


"아유, 미안해요. 자꾸 이렇게 (주머니 다는 걸) 까먹지, 점점."(할머니)


"뭐 어때요, 안 걸어놨으면 내가 두드리면 되지(웃음). 근데 아직도 아프셔? 자꾸 살이 빠지시네."(김 점장)


"자꾸 다리에 쥐가 나고 이쪽이 말라가면서 아프네. 다릴 못 걸으니 죽겠어."(할머니)


그리 15분을 이야기하고 난 뒤 비로소 알았다. 할머니가 새벽에 기다린 게, 비단 우유만이 아니었단 걸. 돌아서는 내 손엔, 할머니가 괜찮다는 데도 애써 건네준 샛노란 귤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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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우유 가져 오시는데,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잘 먹고 있어요. 다리 아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너무 좋지요." 귤을 꼭 주고 싶다며 건네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그랬다. 새벽 피로가 싹 가시는듯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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