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 없는 5층에, 쌀 20kg 배송"…'무게 배려'가 없다
[40대 신입 택배기사의 죽음이 던진 화두…중량·개수 제한 없는 배송 시스템, 택배기사들만 죽어나]
배송하는 쿠팡맨의 모습./사진=머니투데이db |
40대 택배 기사가 숨졌다. 쿠팡에 근무하는 신입 물류기사 입사 4주차 김모씨(46)였다. 그는 12일 새벽 2시쯤 안산시 단원구 와동 빌라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마지막 배송지였지만, 계단 4층과 5층 사이에서 쓰러졌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끝내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경찰 조사 중이지만, 40대 쿠팡맨은 택배 기사 근무 환경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떠났다. 실제 그는 유족들에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가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송 시간에 대한 압박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배송한 가구 수는 1시간당 20곳 남짓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엘베 없는 5층서, 쌀 20kg과 물 12통…죽을 것 같다"
쿠팡맨이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참고 사진, 기사와 직접 연관 없음)./사진=머니투데이db |
그의 죽음을 두고, 택배 기사들이 평소 겪을 고충에 대해 비로소 환기가 됐다. 평소 편리한 택배를 이용하면서도 크게 생각지 않은 것들이다.
가장 많이 언급된 것중 하나가 '배송 무게'에 대한 것이다. 택배 기사라 밝힌 한 누리꾼(yabu****)은 "요즘 코로나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5층, 6층에서 쌀 20kg, 물 2리터짜리 12개, 개 사료 20kg, 고양이 모래 등을 시킨다"며 "4년째 일하고 있지만 시키는 중량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비오는 날엔 더 무겁고 힘들다. 젊은 나도 죽겠는데, 갯수 제한이나 중량 제한이 필요할 것 같다"며 "힘들다보니 골병이 들어 그만두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고 했다.
배송 기사라 밝힌 다른 누리꾼(zzan****)도 "5층, 엘베 없는 빌라는 정말 사람 미칠 정도로 시킨다"며 "쌀 20kg에 생수 1.5리터 36개, 세제 등 무거운 건 다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 청원에 살려달라고 글도 올렸는데, 결국 일이 터졌다"고 했다.
"집 앞에 놔주세요"…기사 과로 부르는 '편리함'
그럼에도 "집 앞에 놔주세요"란 배송 메시지 하나 때문에, 무게가 아무리 많아도 별 수 없다. 누군가에겐 집 앞에서 갖고 들어가는 편리가, 누군가에겐 더 많은 노고를 요구하는 것이다.
택배 주문시 이에 대한 시스템상의 배려 또한 전무하다. 개수에 대한 것도, 무게에 대한 것도 제한도 없다. 과중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 특별히 배송료가 추가되는 것도 없다. 그에 대한 부담은 오롯이 택배 기사들 몫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택배 기사는 "엘베 없는 빌라 몇 군데만 돌아도, 숨이 턱턱 막혀서 힘들다"며 "그럼에도 배송할 곳이 많기 때문에 쉴 시간조차 없이 강행하게 된다. 그래서 과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숨진 40대 쿠팡맨 역시 집 앞까지 배송을 하느라 과중했을 거란 지적도 나왔다. 김한별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국장은 "쿠팡 배송이란 게 바로 집 앞에 두는 거라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무조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