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전과목 시험문제 푼 '막내 검사'
검블리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편집자주] 검찰 수사는 브리핑이나 발표로 전달되는 뉴스 외에도 이면에서 벌어지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맛평가 조사인 블루리본처럼 검찰블루리본, '검블리'는 검찰 수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살펴보고 전달하고자 합니다.
[the L]쌍둥이 '답안유출' 사건 결정적 증거 문제분석 통해 발견
"고등학교를 그나마 가장 최근에 졸업한 ○○○ 검사가 가장 적격입니다. 직접 시험문제를 풀어보죠."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김유철 부장검사) 소속 검사 중 가장 젊은 30대의 검사가 진지한 얼굴로 한 고등학교 기말고사 문제지를 받아들었다. 국어, 영어, 수학……. 마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듯 전과목에 걸쳐 한 문제 한 문제 손수 풀면서 답을 적어내려갔다.
검사가 고등학교 시험 문제를 푼 것은 다름 아닌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희대의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다. 숙명여고 교무부장이던 아버지로부터 시험 답안지를 빼돌려 기말고사를 치렀다는 의혹을 받는 쌍둥이 자매 사건이다. 쌍둥이 측이 "공부를 열심히 한 죄밖에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검찰은 실제 문제를 풀었을 경우와 대조해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같은 '수사 기법'까지 동원한 것이다.
일일이 문제를 풀어보며 쌍둥이들이 쓴 답안 문구의 모순도 찾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국어 과목에서 세 단어를 쓰도록 구성된 서술형 주관식 문제에서 문과는 한 단어를 제시한 후 두 단어를 쓰도록 괄호가 이뤄진 반면 이과는 세 단어 모두 쓰도록 괄호로만 이뤄져 있었다.
쌍둥이는 국어에서 단 한문제만 틀렸는데 그게 바로 이 문제였다. 이과였기 때문에 세 단어를 써야했지만 엉뚱하게도 문과 정답인 두 단어만 썼기 때문이다. 검찰은 쌍둥이가 문과 시험지의 답안을 유출받은 후 이를 외워 썼다는 결정적 증거를 포착할 수 있었다. 검찰이 직접 시험 문제를 풀지 않았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부분이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는 시험 문제를 풀었던 검사가 증인 심문에 나서 직접 이를 입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날 검찰은 아버지인 교무부장 A씨에게 7년형을 구형했다.
이외에도 검찰은 쌍둥이 등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증인으로 부르는 한편 계량경제학자를 통해 쌍둥이들이 유출된 답안을 보지 않고 정정 전 정답을 답할 확률이 100만분의 1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줘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일반적으로 '검찰수사'하면 생각하는 사건 관계자 진술조서, 압수수색 등을 넘어 차별적인 수사기법과 증인·증거를 선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수사방식엔 제한이 없어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보강하기 위해 전문가의 진술을 듣는 건 이제 통상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수서경찰서가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자택에서 발견한 쌍둥이 문제유출 사건의 압수품인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 정답& 메모. 2018.11.12/뉴스1 |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