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 멈춰도 10조원 날아간다…이 사업장 어디길래?
코로나에도 멈추지 않는 기업들 ④
지난 28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고로에서 현장 근로자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포스코 |
1500℃ 쇳물이 출선구(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구멍)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현장 근로자들의 얼굴에 뜨거운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쇳물은 어뢰 모양의 운반차 '토피도카(Torpedo Car)'에 실려 곧바로 제강공장으로 향한다.
지난달 28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30층 높이 용광로(고로)는 코로나19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연신 쇳물을 쏟아냈다.
포스코 관계자는 "고로야말로 코로나가 아니라 그 어떤 감염 사태가 터져도 반드시 24시간 내내 돌아가야 하는 설비"라며 "전쟁이 나도 여긴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고로 운전실에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등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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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는 철강 생산의 시작점이다. 설비 상단에 철광석과 유연탄을 투입하고 아래쪽에서 고온·고압의 바람을 불어넣어 쇳물을 만들어낸다. 거대한 고온·고압 용기인 셈이다.
화입(火入·고로에 불씨를 넣는 것)을 기점으로 가동을 시작하면 15~20년 동안 계속 쇳물을 만들게 된다. 고로가 만들어지면 '화입식'을 열어 특별히 기념하는 이유다.
이 같은 고로가 한 번 멈추기라도 하면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한다. 가동 중단으로 고로가 식게 되면, 안에 있는 쇳물이 굳어 본체가 균열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복구에 3개월, 경우에 따라 6개월 이상 소요된다.
포항 제 2고로 전경/사진제공=포스코 |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1개 고로가 10일간 정지되고 복구에 3개월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약 120만 톤의 제품 감산이 발생한다"며 "이에 따른 매출 손실은 8000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철강업계가 국내에 운영 중인 고로는 현재 총 12개다. 포스코가 포항과 광양에서 각각 4~5기를 돌리고 있고, 현대제철은 당진에서 3기의 고로를 운용한다. 12개가 모두 멈출 경우 예상된 매출 손실은 10조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전쟁이 나도 멈출 수 없는 고로지만, 최근 코로나19 확산세 탓에 포항과 광양의 제철소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이미 현대제철 포항공장 한 사무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 포항공장에는 고로가 없지만, 고로 4기가 돌아가는 포항 지역도 안심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에는 대형 철강사는 물론, 1차 금속과 조립 금속 등 관련 기업 352개가 들어서 있다. 약 2만3000여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국내 철강 관련 제품의 3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혹여나 코로나19의 불똥이 고로에 튀면 이 같은 지역 철강산업 생태계도 멈춘다.
고로를 갖춘 철강사들은 코로나 대응 태세를 한결 끌어올린다. 현대제철은 공장과 분리된 별도 지역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고 공장 가동에 꼭 필요한 필수 인원을 여기에 투입하기로 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책까지 세웠다.
포스코는 예비 근무조를 편성하고, 확진자 발생시 해당 근무조 전원을 빼고 예비 근무조가 무균복을 입고 비상 조업에 투입한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전 직원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하루 1회 체온 측정은 이제 기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감염의심자 역학조사반과 비상조업 대응반, 방역 조치반 등으로 구성된 자체 비상상황실을 통해 현장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물샐틈 없는 자체 방역으로 생산라인을 멈추지 않고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포스코 직원들이 포항제철소 내 버스 대합실을 방역하는 모습/사진제공=포스코 |
안정준 기자 7up@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