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의 5년과 새로운 비전
팀 쿡에 대한 평가
오늘(2016년 8월 24일)은 팀 쿡이 애플의 CEO에 오른 지 5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5년 동안, 애플의 매출은 2배가 증가했고 주식은 123%나 올랐다. 지난해에는 세계 증권 사상 최초로 70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돌파했으며 현금보유량은 2315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당기 순이익은 530억 달러(약 59조 원)으로 페이스북과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IT 대기업들의 당기순이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높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팀 쿡을 향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증시 전문매체인 마켓워치는 애플은 머스크를 CEO로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쿡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는 오래된 애플팬들 사이에서 더욱 많은 듯 하다. 이들은 스티브 잡스가 보여주었던 혁신은 사라지고 매출만을 바라보는 안정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실제로 애플워치는 스마트워치 시장을 장악하긴 했지만 아이폰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경험은 없었다. 비츠뮤직을 인수해서 만든 애플뮤직은 경쟁사들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다를 게 없었고 아이폰의 매출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쿡은 다소 의외의 키워드를 꺼냈다. 취임 5주년을 기념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래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력은 인공지능(AI)이다.”라며 엉뚱하게 인공지능에 대한 중요성과 자신감을 피력했다. 쿡의 주장이 다 맞지는 않겠지만 이 시점에서 인공지능을 거론한 이유와 자신감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왜 애플팬과 쿡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출처 : 워싱턴포스트 |
인공지능 퍼스트(AI First)의 시대
불과 몇 개월 전, 쿡과 똑같이 인공지능을 강조한 유명인사가 있는데 바로 구글의 CEO인 순다 피차이이다. 지난 4월에 피차이는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 주주들에게 ‘창업자의 편지(Founders’ Letter)’를 보냈는데 이 편지에서 ‘인공지능 퍼스트(AI First)’를 강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인공지능이 점차 확대될 것이며 구글이 집중해야 할 주제라는 것이다.
피차이의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며 설득력이 있다. IT 산업은 지금까지 다양한 기기(Device)와 화면(Screen)을 통해 발전해 왔다. 그런데, 소형화된 컴퓨팅 기기들이 점점 강력해지고 저렴해지면서 사용자들이 다양한 기기들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는 ‘스크린 확산(proliferation of screens)’이 되면서 점차 기기 간의 구분이나 개념조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특정 기기를 넘어서는 플랫폼이 필요한데 바로 ‘인공지능'이 그 주인공이라는 주장이다.
쿡도 TV와 스마트폰을 거론하며 동일한 맥락으로 인공지능을 강조했다. 스마트폰과 같이 모두가 하나 이상을 소유하는 기기가 흔하지 않다. 애플팬들이 기대하는 ‘포스트 아이폰’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특정 디바이스를 타겟팅하기보다는 스크린과 기기를 넘어서는 ‘팀 쿡만의 혁신’을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인공지능 경쟁에서 잘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자신감의 근거는 두 가지
쿡이 인공지능을 강조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낸 배경에는 회사적인 차원과 개인적인 차원이 있다. 회사적으로는 ‘시리(Siri)’를 근간으로 한다. 애플은 누구보다 더 빠른 2011년부터 아이폰에 인공지능 개인비서를 탑재하여 발전시키고 있다. 이제는 아이폰을 벗어나 데스크톱 맥 컴퓨터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영국의 음성 인공지능 스타트업 보컬아이큐(VocalIQ)와 사람의 표정을 분석해 감정 상태를 읽어내는 감정분석 인공지능 기술 스타트업 이모션트(Emotient)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성능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두 번째 배경을 이야기하기 전에 '개인비서’와 같은 소비자 대상의 인공지능 서비스에 대한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개인비서 서비스는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소비자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콘텐츠를 전달한다. 사용자를 이해하는 수준이나 필요한 콘텐츠를 선택하는 기술은 상향 평준화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추천할 수 있는 콘텐츠의 종류와 양이 풍부해야 하는 게 중요하며 서비스적인 차별화를 이루는데 핵심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 서비스에서는 사업 포트폴리오나 외부 사업자와의 제휴와 관리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팀 쿡은 SCM 전문가이다. 그는 애플에 입사하자마자 부품 공급업체를 최적화시켜 70일 치가 넘던 재고물량이 10일 이하로 줄였다. AMR 리서치가 애플의 SCM 관리 능력을 세계 2위로 평가한 것도 쿡 덕분인데 그는 부품조달, 공급망 관리, 통신사와의 협상 등의 업무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외부 사업자를 서비스의 일원으로 참여시키고 관리하는 SCM의 능력은 인공지능을 통한 콘텐츠 추천과 서비스 연계 사업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최근 애플의 행보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개방형 제휴를 확대하는 전략적 변화는 최근 애플의 행보를 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애플은 하드웨어를 포함한 플랫폼과 콘텐츠를 수직계열화 시키면서 폐쇄적인 정책을 일관되게 펴왔다. 자사의 전략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있다면 인수를 통해 자산을 흡수했고, 외부 제휴나 투자는 최소화했다. 이를테면, 5년 전에 발표된 시리를 외부 사업자가 이용할 방법은 없다.
출처 : 애플 |
그런데, 지난 WWDC 2016에서 시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리킷’을 공개하였다. 써드파티 개발자가 시리를 자사의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관심 있는 기업과 협업하는 방식도 바꿨다. 중국의 차량호출 서비스 업체 '디디 추싱(옛 디디콰이디)'에 10억 달러를 투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중국 사용자에 대한 호감을 올리고 애플 페이를 위한 노림수도 작용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O2O 시장을 염두에 둔 제휴 방식의 변화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애플의 변화는 쿡에 대한 평가로 이어져서 개방형 생태계에 대한 이해라는 호응과 부진한 실적을 해결하려는 ‘애플답지 못한 CEO’라는 비판을 동시에 만들어 내고 있다. 애플팬들이 지금까지 애플을 좋아했던 이유는 경쟁사와는 다른 애플 만의 색깔이 있었다. 기기는 멋지고 안정성이 높았고 UX는 화려했다. 다른 기업과의 제휴로 어설픈 내용이 채워지기보다는 애플 만의 콘텐츠로 멋진 기기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는 애플의 변화는 현실과의 타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간혹 들려오는 아이폰7에 대한 루머는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기대마저 없애고 있다. 하지만, 쿡은 더 이상 실체 없는 ‘포스트 아이폰’에 매달려있지 않아 보인다. 스마트폰처럼 모두 다 한 개씩 소유할 수 있는 시장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기기와 스크린을 넘어서는 더 큰 혁신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상관없습니다. 솔직히 그들은 2001년 애플에 대해서도 그리 얘기했었어요. 2005년에도 그랬고 2007년에도 그랬습니다. 이 멍청한 아이폰을 누가 사랴? 2010년 우리가 정점을 찍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2011년도 그랬고요.” ( 인용 : 워싱턴 포스트 기사의 번역본)
인공지능 경쟁에서 승리할 것인가
지금까지 철저하게 인공지능과 팀 쿡의 입장에서 애플의 행보를 평가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전략이 맞고 능력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성공시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팀 쿡을 비난하는 애플팬들은 여전히 애플의 기기를 구입해주겠지만 주주들과 투자자들은 입장이 다르다.
애플의 가장 큰 약점은 지금까지 개방형 플랫폼을 운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쿡이 아무리 SCM의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CEO의 능력이 애플 전체의 역량이 될 수는 없다. 디디 추싱에 투자를 하긴 했지만 당장 북미에서 매력적인 콘텐츠가 없다는 점도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주기 힘든 한계이다.
빠르게 제휴사를 확장하여 O2O 서비스와 콘텐츠를 시리에 연결시켜 주지 못한다면 구글의 알로, 알파고와 아마존의 알렉사 등과 같은 쟁쟁한 경쟁사들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쿡에게 필요한 것은 스피드이다. 인공지능 시장은 먼 미래가 아니고 이미 와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