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비서를 바라보는 구글의 고집
지난주, 구글은 IT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발표를 하였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명사인 구글이 스마트폰, VR 기기, 와이파이 라우터, 스마트 스피커 등과 같은 하드웨어를 한꺼번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한 하드웨어의 중심에 '구글 어시스턴트(이후 '어시스턴트')’라는 소프트웨어가 있다는 것은 여러 매체에서 다루었다. 수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구글 나우’에 관심이 많았던 이로서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구글 나우’와 유사한 서비스를 개발한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디지털 비서와 어시스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구글 나우의 등장
인공 지능과 접목한 디지털 비서에 대한 구글의 관심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었다. 몇 차례 프로젝트를 거치다가 본격적인 제품의 모습으로 등장한 서비스가 ‘구글 나우’이다. 구글 나우는 2012년 7월 안드로이드 4.1 젤리빈에 구글 검색 앱 일부 기능으로 추가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구글 나우는 지메일로 들어오는 정보를 분석하여 연관 콘텐츠를 카드 형태로 추천해주는 서비스였다. 이를테면 지메일 계정으로 항공사 영수증이 오면 여행지 정보를 알려주거나 호텔을 추천해주고, 상품 구매 확인 메일이 오면 배송 상황을 알려주는 식이었다.
구글 나우에 대한 투자와 개발은 우직하리만큼 계속되었다. 2014년부터는 카드형 노출 구조에서 디지털 비서 형태로 변경되면서 "OK. Google!”이라는 음성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M에는 홈버튼을 길게 누르면 실행되는 앱 위에 카드 형태로 추천 콘텐츠가 노출될 수 있도록 OS와 밀접하게 녹아 들어갔다. 안드로이드 웨어는 OS 전체 UI를 구글 나우로 구성할 만큼 전폭적인 지지를 했다. 웨어러블 기기에서는 입력과 검색이 힘들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묻지 않아도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전방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글 나우는 실패한 제품이 되었다.
실패의 원인
몇 가지 음성 제어 기능을 제공하고 IoT 기기를 제어하기는 했지만 구글 나우의 근본은 ‘검색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추천 서비스’이다. 방대한 데이터와 월등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디지털 비서 = 검색기반의 콘텐츠 추천’이라는 고전적인 등식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사용자들이 볼만한 콘텐츠는 이미 차고 넘쳐있는 환경이며 검색이 아닌 SNS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하루하루 유사한 생활패턴을 보내는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매일같이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지 않다.
유사한 프로젝트를 제작하면서 구글 나우를 주의 깊게 지켜봤지만 이미 위젯으로 확인했던 날씨 정보를 아침이라며 똑같이 알려주고, 매일 오후 같은 동선의 차량 정체 상황을 보여주는 게 전부였다. 상황에 기반한 추천이 Pull 형태일 때는 그나마 거부감이 낮았지만 Push 형태일 때는 스팸과 다를게 없었다. 구글 나우가 제공하는 카드 카테고리가 국내 생활 패턴과 다르기 때문일 거라는 기대도 했지만 해외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기기에 구글 나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충성도를 높이는 데 실패했다. 안드로이드 웨어에서는 다른 앱들을 실행하기 힘들다는 사용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플랫폼 UI에서 제외되고 하나의 앱 형태로 돌아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구글이 뚝심으로 밀어붙이던 구글 나우도 이제는 어시스턴트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구글 나우 vs. 구글 어시스턴트
오랜 루머 끝에 어시스턴트가 정식으로 발표가 된 것은 2016년 구글 I/O 행사를 통해서이다. "OK. Google!”이라고 부른 뒤 필요한 것을 지시하면 집안의 불을 켜고 가까운 운동점을 찾아 주거나 식당을 예약해 준다.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해당 행사에서 피차이 CEO는 음성을 통해 영화를 예매하는 데모를 시연하기도 했다. 발표된 어시스턴트는 구글 나우와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어시스턴트는 개방형 플랫폼 구조를 갖는다. 구글 나우도 외부 콘텐츠가 노출되긴 했지만 계약을 통해 진입한 소수의 사업자만 가능했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구글 내부의 것이었음은 당연하다. 반면에 써드파티 콘텐츠 사업자나 사물 인터넷 제조사들이 어시스턴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아직 제한적이긴 하지만 내년에 API가 제공되면 어시스턴트만의 생태계가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인터페이스의 변화이다. 구글 나우의 전유물이었던 "OK. Google!”로 시작되는 음성 제어와 함께 메신저 기반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모바일 메신저들의 강세와 새로운 챗봇 서비스들이 주목을 받는 시장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구글은 메신저와 챗봇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전문 스타트업인 API.ai를 인수했으며 '알로(Allo)’라는 메신저를 내놓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Push형 UI가 핵심 기능이었던 구글 나우와 달리 어시스턴트는 Pull 형 구조를 지향한다. 메신저 형태나 음성 인식을 기반으로 하되 사용자의 특정 요구로 동작을 하며 명령에 따라 필요한 콘텐츠를 알려주거나 기기를 제어하도록 설계되었다. 매일매일 유사한 카드가 노출되었던 구글 나우의 문제점이 해결된 셈이다.
구글 나우의 잔영
분명히 기능은 달라졌고 브랜드도 새롭게 바뀌었다. 전체적인 전략도 구글스럽게 개방을 지향하며 세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시스턴트는 구글 나우와 유사한 점이 너무나 많다. 나오자마자 '단순한 버전업이 아니냐', '리브랜딩 마케팅일 뿐이다.’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유사한 기능이 있는 게 문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용자가 혼란스럽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장 심각한 것은 명확한 서비스 정체성이 없다는 점이다. 구글 나우도 검색 위젯인지 추천 서비스인지, 음성인식 서비스인지를 오가며 사용자들을 혼란스럽게 했었는데 어시스턴트도 비슷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을 뽐내며 디지털 비서를 표방하기는 하는데 개인용 콘텐츠가 핵심인지, 홈 디바이스 허브인지, 인공지능 기반의 메신저 서비스인지 명확하지 않다. 마치, 애플의 시리와 아마존의 알렉사, 페이스북의 메신저를 상대로 3:1의 싸움을 하는 듯하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어시스턴트가 거실형 기기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도 아이러니이다. ‘개인을 이해하는 것’과 거실을 나눠 쓰는 ‘가족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과연 일정을 물어볼 때, 구글홈은 가족 중 누구의 일정에 대답해야 할까? 아무리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거실은 가족 공용 공간이다. 거실형 기기로서 호평을 받는 아마존 에코가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음악을 재생시키거나 날씨를 확인하고 집으로 배달되는 물건을 주문하는 데 집중하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디지털 비서를 바라보는 구글의 고집
처음 기사를 접하고 구글홈에 어시스턴트가 적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분을 했었다. 드디어 ‘디지털 비서 = 검색기반의 콘텐츠 추천’이라는 오래된 공식에서 구글이 벗어났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마존 에코의 경쟁 기기로 언급되는 만큼, 거실형 기기에 맞는 콘텐츠를 타겟으로 할 것이라고 보았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탑재된 수많은 셋탑 박스나 웨어러블 디바이스, IoT, 크롬캐스트 등을 연결하고 ‘명령’했던 과거에서 ‘대화’를 나누는 철학으로 변했나 싶었다.
하지만, 어시스턴트는 픽셀폰에도 들어갔으며 접근하는 전략이 구글 나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하면서 크게 실망을 했다. 어시스턴트가 구글 나우와 다르게 크게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개방형 구조와 UX 의 변화이지 디지털 비서의 재정의는 아니다. 기술은 세계 최고이지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아우르는 과정 중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IBM은 자사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왓슨을 '똑똑한 신입사원'이라고 소개한다. 업무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면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일정과 날씨를 알려주고 식당 예약을 해주는 천편일률적인 디지털 비서와는 다른 접근이다. 앞으로 구글이 만들어 내는 모든 하드웨어와 안드로이드에 어시스턴트가 들어가면서 트래픽을 만들겠지만 새로운 경험과 디지털 비서의 혁신을 만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IBM처럼 접근 철학을 바꾸지 않는다면 결과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