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토양서 빛난 한국 유니콘 6개 전 세계 326개…성공까진 ‘머나먼 길’
‘유니콘’이 대한민국 경제에 활기를 넣을 희망으로 떠올랐다.
유니콘은 뿔이 하나인 전설 속 동물. 2013년 미국 카우보이벤처스의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에일린 리(Aileen Lee)가 기업가치 10억달러가 넘고 창업 10년 이하인 비상장 벤처기업을 ‘유니콘’으로 명명했다. 전설 속 동물처럼 현실에서 쉽게 보기 드문 기업이라는 뜻에서다.
2009년 3월 블룸에너지(Bloomenergy)라는 유니콘이 탄생한 뒤 또 다른 유니콘 반클(Vancl)이 등장할 때까지 20개월이 걸렸다. 이후 유니콘 기업 등장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2011년 4월 팔란티어(Palantir)가 유니콘 기업으로 이름을 냈고 2012년에는 한 달에 한 개 이상씩 나타났다. 2014년부터 등장 간격은 한 주당 한 개 이상으로 폭증했다. 불과 5년 만에 유니콘의 등장 속도가 100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119개 유니콘이 추가돼 전 세계 유니콘은 한국 6개를 포함해 326개가 됐다. 포춘 500대 기업이 20년 걸려 이룬 기업가치 1조원을 평균 6년 만에 달성했다.
유니콘 기업이 국가 경제를 이끄는 동력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326개 유니콘 기업 절반인 156개가 미국 기업일 만큼 미국에서 유니콘 역할은 막강하다. 미국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리프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리프트는 222억달러(약 25조2400억원) 시가총액으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는 현대차(25조5300억원)에 육박한다. 4월 상장 예정인 차량공유 업체 1위 우버는 기업가치 100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사진공유 기업 핀터레스트가 6월, 빅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 기업용 메신저 슬랙 등이 상장을 앞뒀다. 내년에는 공유숙박 기업 에어비앤비까지 증시에 입성을 예고한다. 이들 기업은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으로 불린다.
중국에도 유니콘 기업이 넘쳐난다. 326개 유니콘 기업 중 91개가 중국에 자리 잡고 있다. ATD(알리바바, 텐센트, 징둥) 3대 인터넷 기업이 ‘마중물’을 대며 새로운 유니콘을 창출해냈다.
2012년 이후 유니콘 기업이 폭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유니콘 등장은 4차 산업혁명과 관계가 깊다. 2008년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이 클라우드·사물인터넷과 더불어 O2O(Online to Offline) 세계를 열었다. 이때가 유니콘 1차 붐 시기다. 2차 붐은 2010년 인공지능(AI) 기술이 본격화하면서 시작됐다. 4차 산업혁명의 파괴적 기술이 유니콘이란 새로운 기업군을 탄생시킨 셈이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1, 2차 산업혁명은 오프라인 혁명, 3차 산업혁명은 온라인 혁명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술의 융합이 아니라 오프라인과 온라인 세상의 융합인 O2O 혁명이라며 O2O 융합경제는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2030년 세계 경제의 50%를 차지하며 새로운 유니콘 기업이 창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유니콘 기업 성공 비결
▷이커머스·해외 시장 공략·규제 극복
미래 먹거리를 찾지 못하는 한국 산업에서 ‘유니콘’은 희망의 등불이다. CB인사이츠가 집계한 국내 유니콘 기업은 6개지만 업계에서는 10여개에 이를 것으로 파악한다. 쿠팡·위메프·티몬·11번가·쓱닷컴 등 이커머스 기업들과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크래프톤(옛 블루홀)·스마일게이트 등 게임업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엘앤피코스메틱,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급성장하는 온라인 쇼핑·배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둘째,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흥행 산업 부문에서 대박을 터뜨렸으며 셋째, 규제 산업에서 새로운 BM(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먼저 쿠팡·위메프·티몬·11번가·쓱닷컴 등 이커머스 기업들과 우아한형제들은 첫 번째 유형에 속한다.
쿠팡은 지난해 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서 약 2조2500억원 규모 투자를 받을 때 기업가치를 10조원 안팎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11번가는 지난해 6월 국민연금(3500억원)과 사모투자펀드(PEF) H&Q코리아(1000억원)·새마을금고중앙회(500억원)로부터 총 5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을 때 2조7500억원 안팎의 몸값이 산정됐다. 신세계그룹의 이커머스 플랫폼인 쓱닷컴은 지난해 10월 외국계 PEF에서 1조원을 투자하면서 약 3조원의 기업가치로 산정됐다.
티몬도 지난 2016년 NHN엔터테인먼트로부터 475억원의 자금을 유치할 때 기업가치 1조7000억원,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말 힐하우스캐피털, 세쿼이아캐피털,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으로부터 총 3억2000만달러(약 3600억원)의 투자를 유치, 기업가치를 3조원으로 평가받았다.
위메프는 지난 2015년 넥슨 지주사 NXC로부터 1100억원 투자를 받은 것이 마지막 투자 유치 사례다. 당시 기업가치 평가액은 1조원에 조금 못 미쳤다. 그러나 이미 4년 전에 매겨진 평가액인 데다 그간 위메프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돼 기업가치 1조원은 가뿐히 넘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 위메프는 2015년 거래액 2조4000억원, 영업손실 1424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거래액 5조4000억원, 영업손실 390억원으로 외형 성장과 재무 상태 개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이커머스 기업들이 국내 유니콘의 절반에 달하는 것은 그만큼 온라인·모바일 쇼핑과 배달앱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온라인 쇼핑 부문에서 국내 벤처업계의 기록적인 투자 유치 사례가 쏟아진 점이 이를 증명한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2015년과 지난해 쿠팡에 총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자한 것은 국내 인터넷 기업 투자 유치 역사상 최대 금액이다. 보수적인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적자 상태인 11번가에 35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결심한 것도 이례적이다.
“온라인 쇼핑업체에 대한 투자 열기는 세계적인 추세다. 과거에는 단순히 이용자만 많아도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았지만 요즘은 적자더라도 또박또박 현금이 창출되는 곳을 선호한다. 특히 한국 기업은 언어장벽이라는 한계가 있어 글로벌 진출이 쉽지 않다. 그 와중에 국내 시장은 또 한정적이다. 그 한정적인 국내 시장에서 지속 성장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임을 증명해내야 한다. 이커머스는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지금은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해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일단 경쟁에서 이겨 안착하면 안정적인 흑자구조가 나오니 매력적이다.”
위메프 관계자의 설명이다.
크래프톤, 스마일게이트, 엘앤피코스메틱,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해외에서 성공한 두 번째 유형이다.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는 대표적인 흥행산업이다. 대박 아이템이 하나만 터져도 언제든지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언제 어떤 아이템이 대박 날지 몰라 기업가치 산정이 쉽지 않다. 실제 크래프톤의 경우 배틀그라운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뒤 장외시장 주가가 불과 3주 만에 13만1500원에서 21만5000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기업가치도 92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급등, 단번에 유니콘 기업이 됐다. 배틀그라운드 게임 개발을 주도한 김창한 당시 블루홀 PD는 지난 17년간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창업도 3번이나 했지만 대체로 흥행에 실패한 경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김 PD의 아이디어를 전폭적으로 승인, 지지했고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에 배틀그라운드를 선보이면서 해외 시장에 직진출했다.
스마일게이트 역시 처음부터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성공한 사례다. 2000년대 초반 국내 FPS(1인칭 슈팅 게임) 시장은 이미 네오위즈게임즈의 ‘스페셜포스’와 넥슨의 ‘서든어택’이 선점한 상태였다. 2007년에서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크로스파이어가 들어갈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의장은 마침 온라인 게임이 급성장하던 중국의 FPS 게임 시장에 주목했다. 당시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인기가 한풀 꺾인 상태였고 스페셜포스와 서든어택은 아직 중국 시장에서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었다. 권 의장은 중국 최대 게임 퍼블리싱 회사인 텐센트와 손잡고 크로스파이어를 중국 시장에 선보였고, 누적 회원만 6억명이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최근 상장을 준비 중인 스마일게이트 자회사 스마일게이트RPG는 ‘로스트아크’가 인기를 끌며 증권가에서 기업가치를 최소 5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스마일게이트는 권혁빈 의장이 외부 투자 유치 없이 회사 지분을 대부분 갖고 있어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스마일게이트는 자회사만 9개 거느리고 있는 데다 흥행작 크로스파이어도 있어 기업가치 1조원은 훌쩍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스크팩 브랜드 ‘메디힐’을 보유한 엘앤피코스메틱은 지난해 11월 크레디트스위스(CS)로부터 400억원을 투자받으며 기업가치를 1조2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창업한 지 10년도 안 돼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는 물론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 전 세계 26개국에 진출해 마스크팩 단일 품목으로만 누적 판매량 14억장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달리는 덕분이다. 매출의 60%를 해외에서 거둬들이는 이 회사는 특히 지난해 11월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광군제 기간에 총 153억원의 매출을 기록, 전년 대비 12% 성장하며 주요 온라인 쇼핑몰 징둥(JD닷컴)과 티몰(Tmall)의 주요 판매 순위 1위를 달성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BTS)은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연중 월드투어를 진행하는 등 일찌감치 글로벌화를 시도해 성공했다. 상장을 앞두고 증권가에서는 기업가치가 최대 2조원이 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 세 번째 유형으로 분류된다.
금융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기존 시중은행 외 신규 업체가 비집고 들어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토스는 간편송금을 앞세운 핀테크 혁신으로 새로운 BM을 구축, 4년 만에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지난해 12월 클라이너퍼킨스, 리빗캐피털 등으로부터 8000만달러(약 90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1조3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비바리퍼블리카 관계자는 “금융은 워낙 보수적이고 규제가 강한 산업이어서 혁신 자체가 어렵다고 여겨졌다. 토스도 2014년 간편송금 서비스를 선보이자마자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1년간 서비스가 금지되며 수차례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넘어야 했다. 이런 불리한 여건과 위기를 극복하고 업계 1위로 자리매김한 것이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벤처들의 연합인 옐로모바일은 한때 국내 첫 유니콘 기업으로 주목받았지만 최근에는 명성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 2월 청와대가 국내 유니콘 기업 대표들을 초청한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도 옐로모바일은 제외됐다. “유니콘의 기준은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데, 옐로모바일은 최근 기업가치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 회사는 빠진 상태로 진행했다”는 게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 설명이었다.
쿠팡(좌)은 빠르게 성장하는 온라인 쇼핑·배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업가치는 10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쏘카는 향후 유니콘으로 등극할 유망주로 꼽힌다. |
▶‘차세대 유니콘’ 유망주
▷야놀자·쏘카·마켓컬리 ‘출격 준비’
앞으로 어떤 기업들이 기업가치 10억달러를 넘어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야놀자, 쏘카, 마켓컬리, 직방 등을 첫손에 꼽는다.
국내 1위 숙박앱 야놀자는 2016년 1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할 당시 기업가치를 3500억원 정도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레저·액티비티 플랫폼 ‘레저큐’를 인수한 데 이어 중국 ‘씨트립’, 일본 ‘라쿠텐’, 유럽 ‘호스텔월드’, 동남아 ‘젠룸스’ 등 주요 글로벌 숙박 플랫폼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전 세계 50만개 호텔에 대한 예약 서비스를 시작하며 이제는 글로벌 종합 여가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났고 기업가치도 덩달아 높아졌다. 현재 싱가포르투자청 등과 진행 중인 투자 유치건이 확정될 경우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차량공유 서비스 ‘쏘카’와 ‘타다’ 두 브랜드를 운영하는 쏘카는 미래형 모빌리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월 알토스벤처스, KB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벤처캐피털(VC) 4곳으로부터 총 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7000억원 안팎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비바리퍼블리카처럼 규제가 강한 모빌리티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모빌리티 시장은 카풀, 공유택시, 자율주행 등 혁신할 거리가 많지만 강한 규제 탓에 리스크가 크다 보니 뛰어드는 기업이 별로 없다. 카풀앱 ‘풀러스’도 지난 2017년 출퇴근시간 선택제를 도입했다가 서울시에 의해 경찰에 고발당하면서 대표가 사임하고 직원 70%가 구조조정된 바 있다.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다면 한국판 우버나 제2의 쏘카가 등장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업계 1위 마켓컬리는 최근 세쿼이아캐피털과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DST) 등으로부터 총 10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 6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6월 670억원 규모 자금을 유치할 때 약 2000억원이었던 기업가치가 1년도 안 돼 3배가량 늘었다. 매출도 2017년 465억원에서 지난해 1800억원(추정치)으로 1년 만에 4배가량 급성장한 점을 감안하면 연내 기업가치 1조원 돌파도 가능해 보인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프롭테크 업계 1위 직방이 차세대 유니콘 기업으로 주목받는다. 2015년 말 골드만삭스 컨소시엄으로부터 38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을 당시 기업가치는 3000억원대로 평가됐다. 최근 국내 벤처캐피털을 대상으로 약 5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며 직방 기업가치는 6000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직방은 1·2인 가구를 타깃으로 원룸 중개 시장에 집중해왔지만 최근에는 보다 큰 시장인 아파트 중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미 앱 이용자 수는 원룸보다 아파트가 더 많아졌지만 문제는 이 부문에서 BM이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 중개 부문에서 어떻게 BM을 발굴할 것인지에 따라 직방의 유니콘 도약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해 성공했다. |
▶유니콘 기업 육성하려면
▷해외 투자 유치·대기업과 협업 필요
한국에서 더 많은 유니콘 기업이 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규제 개혁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유니콘이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면 70%는 불법일 수 있다. 한국의 각종 규제가 유니콘 성장 기회를 막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민화 교수는 “유니콘 4대 천왕인 미국·중국·영국·인도는 거대 시장과 네거티브 규제로 글로벌 벤처투자가를 끌어들였다”며 “거대 시장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규제는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는 만큼 정부는 규제 개혁과 테스트베드 제공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벤처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 시장만 공략해서는 기업이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 글로벌 시장 진입은 필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해외 진출 지원 체제가 빈약하다는 평이 많다.
이영달 한국기업가정신기술원장은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은 자국 기업이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체제가 잘 갖춰져 있다. 예를 들어 자국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법률 분쟁에 휘말리면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부가 책임진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한국 스타트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생 기업이 대기업과 협업하는 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분석도 일리 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스타트업이 해외 시장 진출 노하우를 갖춘 대기업과 협업한다면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기업과 정부 모두 적극 나서 협업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해외 자본이 국내 스타트업 지분을 사들이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에도 귀기울여봄직하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해외 벤처캐피털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이 많이 등장해야 시장이 크고 생태계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에 오랫동안 자금을 지원하는 투자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에도 귀기울여봄직하다. 김홍일 디캠프 센터장은 “통상 스타트업이 처음 이익을 내기까지 4년, 기업공개(IPO)를 하기까지는 11년이 걸린다. 그런데 국내 벤처캐피털 상당수는 투자 3~4년 후 회수를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 기업이 장기 계획을 세우고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투자자가 등장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눈에 띄는 해외 유니콘
‘버드’ 1년 2개월 만에 유니콘 등극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글로벌 유니콘 기업은 326개. 이 중 가치가 가장 큰 기업은 바이트댄스(Bytedance)다. 중국 업체로 기업가치가 750억달러다. 맞춤 뉴스 제공 서비스 ‘진르터우탸오’,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 등을 운영한다. 세쿼이아캐피털차이나, 소프트뱅크그룹, 시나웨이보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자동차 공유 시장 선두주자 우버(720억달러)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중국 카셰어링 업체 디디추싱(560억달러)은 기업가치로 따지면 3위지만 총 투자금액을 보면 1등이다. 매트릭스파트너스, 타이거글로벌 매니지먼트,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총 185억6700만달러를 유치했다. 168억5900만달러를 기록한 우버가 2위다.
3위는 줄랩스(Juul Labs). ‘전자담배계 아이폰’이라고 불리는 ‘줄(Juul)’을 만든다. 미국 전자담배 시장점유율 1위며 지난해 말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올해 상반기 내 국내 시장에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간 IDG캐피털, 차이나에쿼티그룹 등으로부터 자금 135억6200만달러를 조달했다.
유니콘 대열에 합류하기까지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린 기업은 스쿠터 대여 업체 버드(Bird)다. 2017년 4월 법인이 설립되고 같은 해 9월 스쿠터 대여 서비스를 시작한 뒤 이듬해 6월 유니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약 1년 2개월이 걸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가치는 20억달러로 추산된다. 전기자전거, 전기스쿠터 등을 빌려주는 라임(Lime) 역시 설립 이후 약 1년 반 만에 기업가치 10억달러 클럽에 입성했다.
데스크톱메탈(Desktop Metal), 브렉스(Brex), 그레일(Grail) 등도 유니콘으로 성장하기까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데스크톱메탈은 3D 프린터를 만드는 업체. 2015년 10월 설립 후 약 1년 9개월 만에 기업가치 10억달러를 넘겼다. 주요 투자자는 ID인베스트파트너스, 오렌지디지털벤처스, 킹덤홀딩컴퍼니, LBO프랑스 등이다. 브렉스는 스타트업 설립자에게 법인카드를 발급해주는 기업. 설립자 개인의 신용 대신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상황, 현금흐름, 소비 패턴 등을 토대로 발급 여부를 판단해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는 스타트업 오너라도 카드를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그린옥스캐피털, DST글로벌, IVP 등으로부터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이 된 ‘뉴페이스’다. 그레일은 암 조기 진단을 위한 혈액검사 기기를 개발 중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가 세운 개인투자회사 베조스 익스페디션 등이 투자했다. 이 밖에 중고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렛고(Letgo),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죽스(Zoox) 등이 약 2년 만에 기업가치 10억달러를 돌파했다.
[명순영·노승욱·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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