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극복한 여성 스타트업 CEO 3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덕분에…‘주독야창’
35%.
국내 만 25~54세 여성 중 결혼, 임신·출산, 양육, 가족 돌봄 등의 이유로 경력 단절을 경험한, 이른바 ‘경단녀’ 비율이다(여성가족부 ‘2019년 경력 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자료). 이런 상황에서 구글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요람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가 경력 단절을 딛고 성공한 여성 창업가들을 배출해 눈길을 끈다.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가 뭐길래
낮에는 멘토링, 저녁엔 창업 ‘주독야창’
구글은 지난 2015년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서울 대치동에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를 개관하고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해왔다. 참가 기업에 입주사 전용 공간 무료 제공, 구글의 제품·네트워크 기반 맞춤형 교육, 멘토링 등을 지원한다. 지난 5년간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 39개 스타트업이 입주했고, 190여가지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를 거쳐간 창업가들이 창출한 신규 일자리는 1100개가 넘는다. 또 100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구글은 한국에서 여성 창업자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에 착안, 개관 직후인 2015년 7월 ‘엄마를 위한 캠퍼스’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한국 정서에 맞춰 프로그램 진행 기간에 업무 공간 옆에 18개월 미만 아기가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돌봄 서비스도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5년간 ‘엄마를 위한 캠퍼스’ 한국 프로그램에 참여한 엄마 창업가는 총 142명. 이들은 시장 조사, 비즈니스 모델 기획, 마케팅과 브랜딩, 팀 빌딩, 펀딩과 IR 워크숍 등 다양한 세션으로 구성된 창업 관련 교육을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낮에는 캠퍼스에서 실제 스타트업 대표들의 강연을 들으며 창업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창업활동을 하는 ‘주독야창’ 끝에 경단녀에서 창업맘으로 거듭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다랑 | 그로잉맘 대표
상담사 경험으로 ‘족집게 육아’ 서비스
이제는 육아도 ‘족집게 육아’ 시대다.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는 상담사 경험을 밑거름으로 밀레니얼 부모가 원하는 육아 서비스를 제공한다. |
“과거의 육아는 말로 노하우를 전수하는 ‘구전 육아’였어요. 요즘 부모인 밀레니얼 세대는 ‘데이터 육아’를 원합니다. 족집게 강의처럼 ‘족집게 육아’를 원하는 시대죠.”
시대와 세대가 바뀌면 육아 방식도 바뀐다. 그 변화를 가장 체감하는 사람은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35)다. 그로잉맘은 부모와 자녀의 기질, 아이가 노는 모습 등을 분석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육아 전문기업이다.
이 대표는 창업 이전 탄탄한 경력을 자랑하는 아동심리상담사였다. 대학교·대학원에서 아동발달심리학을 전공했고 여성가족부에서도 일했다. 아동심리상담사로 활동하면서 이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가정 분열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가정폭력이 늘어나고, 가출하는 청소년 연령대는 낮아지고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육아 교육과 상담은 청소년기가 아닌 영유아기 때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이 양육에 고민이 있어도 육아상담센터를 찾아오는 것이 쉽지 않다. 상담센터는 ‘치료’ 목적이 크다는 인식이 있는 데다 비용 부담도 적잖아 문턱이 높았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그로잉맘 서비스다. 온라인에서 비대면으로 전문상담을 해주면 상담 문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로잉맘 앱에서는 아이에 대한 기질 검사를 제공합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아이 연령과 발달에 따라서만 아이를 짐작했다면, 이제는 아이 기질에 맞춰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요. 부모인 자신과 아이에 대해 잘 아는 상태에서 육아를 시작할 수 있는 거죠.”
그로잉맘의 주 고객은 밀레니얼 세대다. 이 대표는 “밀레니얼 부모의 특징은 젊은 아빠가 아이에 대해 관심이 많고 엄마는 관련 학습을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정확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요. 상담 영역도 꼭 ‘아이가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같은 심각한 사례뿐 아니라, ‘유치원과 어린이집 중 뭘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등 실용적인 내용이 많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아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그로잉맘 서비스에 젊은 부모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크라우드펀딩으로만 아이 기질검사 보고서를 2000만원어치 선구매했다. 현재 유료 회원 수는 8100명. 기질분석 보고서는 매달 400건 정도 주문이 쇄도한다.
최근에는 아이 기질에 따라 그림책과 교구를 제안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1시간 만에 그림책 3000만원어치가 팔렸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그로잉맘에 기회가 됐다. 집에서만 지내느라 지친 부모와 아이를 위해 진행한 ‘아무 놀이 챌린지’가 SNS에서 5만5000건 넘게 공유된 것. 집에서 하는 놀이가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이벤트가 서울시 재난 사업으로 선정되고 신규 고객도 많이 유입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예비 창업자, 그중 경력 단절로 고민 중인 여성들에게 “창업은 대단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단, 창업 과정은 매우 험난한 만큼 확실한 동기와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김혜송 | 스타일앳홈 대표
디자이너 경력 살려 500만원으로 창업
자신의 전공(인테리어)을 살려 ‘스타일앳홈’을 창업한 김혜송 대표. 현재 성과를 넘어 ‘퍼스널 브랜드’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
인테리어 회사에 근무하던 김혜송 스타일앳홈 대표(37)는 결혼과 육아라는 벽에 부딪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회사를 계속 다니려니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찮았다. 그렇다고 디자이너로서 쌓아온 경력을 포기하기에는 아까웠다. 그때 창업을 떠올렸다. 평소 디자이너로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꿈도 퇴사를 결심하는 데 한몫했다. 사업을 준비하던 중 구글의 ‘엄마를 위한 캠퍼스’ 모집공고를 접하고 ‘도움이 되겠다’ 싶어 지원했다.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 들어가 마케팅·회계를 비롯한 기본 상식부터 아이디어 개발 등 노하우를 배웠다.
“수업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좋은 인맥을 얻은 것이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양한 예비 창업자들과 교류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어요. 나중에는 책도 같이 낼 정도로 친해졌죠. 당시 만난 사람들과 아직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어요. 거친 비즈니스 세계에서 서로 기댈 수 있는 동지가 생긴 셈이죠.”
김 대표는 전공을 살려 2016년 인테리어 소품업체 ‘스타일앳홈’을 설립했다. 김 대표가 직접 만든 상품들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었다. 때마침 홈퍼니싱 트렌드가 강화되며 ‘랜선 집들이’가 유행한 것도 순풍이 됐다. 집 베란다에서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1년 만에 연 매출 1억원을 달성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호사다마. 순항하던 사업은 오프라인 매장을 내며 위기를 맞았다.
“상권, 고정 비용 등 기본 상식도 모른 채 무작정 집 근처에 매장을 열었어요.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이 없었으니 실패는 당연했습니다. 월세와 인건비로 나가는 고정 비용을 감당 못해 곧바로 매장을 접었어요.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시장의 냉혹함을 배웠습니다.”
그는 소규모 작업실을 구한 뒤 다시 온라인에만 집중했다. ‘오늘의집’ ‘w컨셉’ 등 인터넷 쇼핑몰에 연이어 입점하며 판로를 늘렸다. 비용이 줄고 매출이 늘면서 사업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김 대표는 최근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퍼스널 브랜드(personal pand)’를 만드는 것. 대중적인 느낌이 강한 현재 디자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강화한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제 평범한 제품을 내놓으면 인테리어 소품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예요. 남들과 비슷하면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상품 종류를 줄이더라도 나만의 색깔이 강한 제품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계획입니다.”
양효진 | 베베템 데이터운영팀장
육아용품 추천 서비스로 엑시트 성공
양효진 대표는 힘들었던 출산·육아의 경험을 바탕으로 육아용품 추천 서비스 ‘베베템’을 창업했다. 이후 매각에 성공하며 회사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는 ‘베베템’의 팀장으로 다시 고용돼 일하고 있다. |
양효진 베베템(Bebetem) 데이터운영팀장(30)은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매각하고 그 회사에 다시 팀장으로 고용됐다.
베베템은 고객 리뷰를 수집, 분석해 부모가 가장 많이 찾는 육아용품을 아이 개월 수에 맞게 추천해주는 서비스. 네이버 검색량과 주요 커머스의 판매량을 기반으로 인기 제품 순위를 매기는 등 육아용품 리뷰 데이터를 제공해 제품 구매에 도움을 준다.
양 팀장은 일찍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 창업 동아리 활동을 했고 배달의민족, 잡플래닛, 빙글 등 스타트업도 두루 거쳤다. 창업 아이템으로 선택한 것은 데이터 기반 육아용품 추천 서비스. 아토피성 피부를 타고난 딸의 육아용품을 고민하던 경험이 동기가 됐다.
“출산·육아용품 사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더라고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리뷰를 한 번에 모아서 보여주고 추천도 해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개발자인 남편에게 사업계획서를 들이밀며 홈페이지를 만들어달라고 했죠.”
정부 지원금 8000만원을 받아 2017년 4월 ‘베베템’을 창업했다. 주부들이 육아용품 리뷰 10개를 달면 기프티콘을 주는 식으로 리뷰를 그러모았다. 인기 용품은 랭킹 시스템을 통해 순위도 매겨 공개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MAU(월간순이용자수) 약 5000명, 리뷰 약 7000개를 모을 수 있었다. 문제는 수익 모델(BM). 막연히 광고를 유치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육아’라는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면, 자극적인 문구를 써서 광고를 하기도 조심스러웠다.
“돌아보면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욕심에 타기팅을 잘못했던 것 같아요. 가령 북유럽 제품을 소싱해 프리미엄 제품으로 특화하는 식으로 고객층을 세분화해야 했죠. 이를 뒤늦게 깨닫고 나중에는 ‘유아용 전집에 월 10만원 이상 쓸 수 있는, 24개월 이상 된 아이를 기르는 부모’로 고객층을 좁혀 전집 리뷰 3000여건을 모았어요. 그러자 고객 대상 메시지가 명확해지고 도달도 수월해져 고객 만족도도 높아지더군요.”
베베템은 창업 2년 만인 지난해 3월, 데이터 전문 스타트업 ‘히든트랙’에 인수됐다. 베베템이 모은 고객 데이터와 직원 노하우까지 함께 사들인, 일종의 ‘인재합병’이다. “창업할 때 모든 것을 다 하려 하지 말고 정말 ‘뾰족한’ 하나를 찾으세요. 한 명의 고객을 100%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음에는 100명의 고객을 80%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노승욱·반진욱·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