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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리고 교향곡 1번

Brahms Symphony No.1 C-minor Op.69

F.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coise Sagan, 1935-2004)>이 24살에 발표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아마도 작가의 책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한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것이다. 

 

마약 혐의로 기소된 작가가 주장하였던 “나를 파괴할 권리”는 제임스 딘의 영화 <이유 없는 방항>처럼 청춘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그의 자유분방함 만큼이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파격적이다. 49살의 주인공 ‘폴’에게 찾아온 25살의 젊은 변호사 ‘시몽’과의 사랑은 그 설정만큼이나 흥미롭고 신선하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국내에선 <이수(離愁)>라는 애매한(?) 제목으로 상영된 영화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당대 최고의 상숑 가수인 ‘이브 몽땅’과 영화 <사이코>의 명배우 ‘앤소니 퍼킨스’의 등장은 덤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스승인 슈만의 부인을 사랑한 열네살 연하의 브람스 러브스토리를 모티브로 했음은 분명하다.

청년 ‘시몽’은 주인공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이 담긴 편지로 그녀를 콘서트에 초대한다. 두 주인공에게 브람스는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브람스 교향곡 1번(Symphony No.1 C minor Op.68)>은 이 영화의 주제곡이라고 할만큼 근사하다. 이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 교향곡 4악장이 아직도 뇌리 속에 맴돌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영화에 같이 삽입되었던 교향곡 3번 3악장이 더 자주 인용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그동안 브람스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을 ‘클라라 슈만’의 입장에서 재해석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브람스 만큼이나 고뇌하고 그리워했을 클라라의 마음을...

클라라 슈만과의 로맨스

브람스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그의 스승인 <로베르트 슈만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 (Clara Josephine Schumann, 1819-1896)>과의 러브스토리다. 

브람스가 65세까지 독신으로 생애를 마감한 이유가 클라라와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브람스의 짝사랑” 신화는 필요이상으로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다. 

20대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자살 직전의 절망으로 몰고갈 만큼 중요한 존재였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고 음악적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클라라와는 이성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슈만이 젊은 나이에 죽고 난 뒤에 자유롭게 클라라의 사랑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1896년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브람스는 그의 주위를 지켰을 뿐 남녀간의 사람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클라라가 죽고 1년 뒤에 브람스도 세상을 떠나면서 애틋한 러브스토리는 더 이야기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브람스를 대변하는 이미지는 “고독”과 “고집”이다. <오토 뷜러 (Otto Bohler)>가 그린 브람스 풍자화에는 빨간 고슴도치가 등장한다. 어쩌면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이미지가 아닐 까 생각한다. (실제 사진은 너무 귀엽고 코믹하다)

F.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의 반사회적 성향은 그의 성장과정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삼류 악단의 단원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7살 연상으로 41살에 브람스를 낳았다. 어릴 때부터 조숙하고 진지한 성격은 성장기에 가족이 처한 환경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후에 14살 연상인 클라라를 사랑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의 역사적 가치

다시 브람스 음악 얘기로 돌아와보자.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을 때, 고집스럽게 고전주의 형식을 버리지 않았던 그가 베토벤 이후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교향곡에 대한 도전을 완성시켰다.

브람스가 교향곡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1855년 22살때 그의 스승인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을 듣고 나서였다. 하지만 그의 <교향곡 1번> 은 21년이 지난 1876년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교향곡 1번>이 발표된 이후 당대 최고의 지휘자인 <한스 폰 뷜러 (Hans Guido Freiherr von Bülow, 1830-1894)>는 “이제서야 베토벤 교향곡 10번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라고 극찬 하였다. 이 표현때문에 마치 브람스가 베토벤의 추종자나 후계자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브람스의 업적은 베토벤의 뒤를 이은 교향곡의 완성이 아니라, “절대음악의 추구”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 <브람스 교향곡 1번>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지 일단 4악장 하이라이트 부분을 베를린필 카라연의 연주로 들어보자. 

당시 유럽 음악계는 <리하르트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추종 시대였다. 바그너의 오페라들로 인해서 “절대음악의 붕괴”가 가속화 되어가는 시점에 <브람스 교향곡 1번>의 등장으로 19세기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가 공존하는 시대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단순히 그의 첫번째 교향곡이자 걸작으로 가치 뿐만 아니라 19세기 음악사에 획을 긋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자칫 “구시대의 유물”도 도외시 되었던 교향곡이 브람스 이후 세대에도 많은 지휘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는 역할을 하였고, 음악사에서는 이 시기를 <신 고전주의>라고 구분 짓기도 한다.

 

불우한 성장환경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극복하고 그가 걸어온 길은 세기의 로맨스보다 더 가치 있는 인류의 업적을 남겼다.

모차르트, 베토벤과는 달리 타고난 천재성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집념으로 살아온 브람스의 고뇌가 그의 음악을 통해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비가 오는 우울한 어느 날, 

3호선 안국역에 위치한 클래식 카페 “브람스”에서 고독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끝>

브람스 교향곡 1번 추천음반

F.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 샤를 뮌시(Charles Munch) - 파리 오케스트라, 1968년 EMI

1967년에 창단된 파리 오케스트라의 초대 지휘자로 활동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최후의 명곡

이듬해에 미국 여행 중 급서하면서 파리 오케스트라와의 짧은 만남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F.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BPO), 1987년 도이치그라모폰

브람스 교향곡 1번만 7번 레코딩할 만큼 카라얀의 브람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그의 열정이 집약된 마지막 7번째 음반은 뛰어난 디지털 음질로 현대적 명연으로 기록된다.

F.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3.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56년 EMI

베토벤과 브람스를 동일선상에서 해석하는 클렘페러의 연주는 매우 학구적이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전성기 때의 사운드를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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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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