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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본질과 스마트워치의 진화

Apple Watch Series2를 통해 본

시계의 본질과 스마트워치의 진화

2014년 애플워치가 출시된 지 16개월 만에 ‘애플워치2’가 아니라 ‘애플워치 시리즈2’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 달리 기존 애플워치와 외형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기능적으로는 수심 50m 인증을 통해서 수영이 가능한 수준(Swim-Proof)의 방수 기능이 된다는 점과 내장 GPS가 탑재되어 속도, 거리, 경로 등에 대한 기록이 가능해져 건강관리 기능이 강화된 점을 꼽을 수 있다. 

 

CPU와 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적인 강화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성능이 올라가는 것이 상식이니 크게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애플워치 시리즈1 (애플이 기존 애플워치를 이제 시리즈1이라고 부른다)’과 차별화된 기능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시리즈1만큼 시장의 반응도 뜨겁지는 않을 것 같다.

애플이 1년 반 만에 내놓은 신제품이 그들이 자랑하던 "One more thing"도 없이 출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애플워치에 대한 애플의 전략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애플워치 시리즈2’에서 애플은 타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를 강조하고 있다. 나이키 플러스(Nike+)와 에르메스(Hermes) 스트랩이 그것이다. 과거부터 애플은 나이키와 다양한 협업을 진행해왔다. 아이팟에 나이키 앱이 기본 앱으로 탑재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이번에 추가된 ‘Nike+ Run Club’은 소셜 기능이 강화된 건강관리 월니스(Wellness) 서비스다. 애플이 추구하는 방향도 과거 하드웨어적인 완성보다 서비스와의 결합이 더 중요해졌고, 오래된 파트너인 나이키와 그 목적을 같이하고 있다.

시계의 본질과 스마트워치의 진화

2014년 애플워치가 처음 소개될 당시에 애플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은 “애플워치가 스위스 시계 산업을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들과 경쟁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2가 출시되면서 17,000달러에 달하던 골드 에디션은 단종되었다. 더 이상 하이앤드 브랜드 시장 공략을 하지 않겠다고 전략을 바꿨다.

 

2015년 애플워치는 전 세계 시계 브랜드 중 매출 2위를 차지하였다. 비록 1위인 롤렉스를 넘지는 못했지만 놀라운 성적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에서 경쟁이 아니라, 시계라는 산업군에 애플워치가 당당하게 포지셔닝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애플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더불어 브랜딩에도 성공했다. 그래서 더 이상 골드 에디션도 필요 없어졌다. 처음부터 애플은 자신들의 수준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스위스 명품 시계들과 경쟁하기에는 시계의 본질적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애플워치가 어떻게 시계 시장에서 단기간에 브랜딩을 하고 높은 판매율을 올릴 수 있었을까? 그들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라는 디지털 기기가 아닌 시계의 본질에 대해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시계의 본질과 시계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새로운 기술로 오래된 기존 시계 시장에 진입할 때 중요한 인사이트가 된다. 

시계의 본질과 역사

손목시계의 역사는 파텍필립(Patek Philippe)이 처음 제품을 내놓은 이후 약 14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근대화가 된 사회에서 시계의 역할은 ‘시간’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었다. 근대 산업화의 핵심가치는 노동에 있었고, 노동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 과정에서 시간 관리는 노동의 생산성 관리와 동일시되어 시계 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위스에서 수많은 시계 회사가 탄생하였고, 한때 스위스 수출의 12%를 차지할 만큼 스위스 시계 제조사들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보유하였다.

 

시계의 본질과 스마트워치의 진화

하지만 1969년 일본의 ‘세이코(Seiko)’가 개발한 쿼츠(Quartz) 방식의 시계는 200년 전통의 스위스 시계 제조사들을 몰락시켰다. 시계 산업의 역사 중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며, 스위스 시계 기업들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쿼츠 시계란 태엽 구동 대신 수정 진동자를 이용하여 전지로 작동하는 시계다. (요즘은 몇 천원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수정의 압전 현상을 이용하여 일정한 전압을 가하면 안정된 진동을 얻을 수 있는데, 기계식 시계보다 정확도는 300배, 가격은 1/10이었다. 이후 세계 시장을 지배했던 스위스 시계 회사들은 파산에 직면하게 되었고, 1985년 스위스 시계 점유율은 13%로 역대 최악의 한해가 되었다.

 

이 혼란의 시기에 스위스 시계 산업을 구한 영웅은 1983년에 창업한 스와치(Swatch)였다. 스와치는 기존 스위스 시계 제조 방식을 탈피하여 쿼츠 방식의 플라스틱 재질을 활용한 저가형 시계를 개발하였다. 이때 스와치가 선택한 전략은 “패션”이었다. 스위스 시계 산업을 파괴했던 그 쿼츠 방식을 도입한 스와치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스와치는 쓰러져가던 명품 시계 브랜드들을 인수하였고, 현재 17개 시계 브랜드를 가친 세계 최고의 시계 왕국을 완성하게 되었다. 

시계의 본질과 스마트워치의 진화

스와치 그룹 브랜드들 : 초고가 브랜드인 Breguet, Blancpain, Glashutte, Harry Winston 등을 보유하고 있다

디자인으로 재무장한 스위스 시계 제조사들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였고,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다시 세계 시장 점유율 50%를 회복하게 되었다. 한때 세계를 평정할 것 같았던 일본의 쿼츠 시계들이 밀려나게 된 이유는 시계의 가치가 시간에서 패션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등장한 이후 쿼츠 시계만큼이나 정확한 시계를 사람들은 소유하게 되었고, 쿼츠의 존재는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되었다. 이후 시계는 시간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한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몇천만 원대 명품 브랜드의 기계식 시계들이 사실은 하루에도 몇 초씩 시간의 오차가 발생할 만큼 정확한 시간을 제공하지 않지만, 특히 남자들에게는 수입 스포츠카만큼이나 로망의 대상이다. 이제 시계의 본질은 시간의 가치가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가치가 더 높아진 셈이다. 애플워치가 시리즈2에서 나이키, 에르메스와 콜라보를 하게 된 목적은 그들이 가진 디자인 역량을 결합하기 위함이다.

시계의 본질과 스마트워치의 진화

수억원대 Grand Complication Watch인 바쉐론 콘스탄틴 제품

애플은 중저가 시계 시장에서 패션과 기능이 결합한 디지털 기기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과거 쿼츠라는 보편화된 기술이 시장에서 오래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스마트워치 기술만 가지고는 성공을 유지하기에 부족하다. 애플워치가 일본 세이코 같이 반짝 성공했다가 언제 시장에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애플, 파괴의 미학과 새로운 시장으로 진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애플은 수많은 중국 제조사들과 가성비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 하지만 애플의 경쟁력은 기술의 파괴(또는 소멸)에서 시작된다. 플로피디스크, CD롬, 분리형 휴대폰 배터리, USB, 이어폰잭 등 애플은 기존의 디지털 기기의 기능들을 끊임없이 파괴했다. 애플워치의 도약은 시계의 본질을 파괴하면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대상이 크라운, 스트랩, 디스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 

 

애플의 두 번째 경쟁력은 “플랫폼”이다. 애플은 웰니스 시장보다 의료 헬스케어 시장으로 진입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 애플의 헬스킷(HealthKit) 기능과 Medical Research 기능은 의료계와 본격적인 협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애플페이(Apple Pay)는 아이튠즈가 보유한 5억명의 카드정보와 연결되어 있다. 헬스케어, 핀테크 기술이 모여있는 플랫폼이 애플워치다. 미래 스마트워치의 진화의 종착지는 의료기관과 금융기관이 연결된 네트워크 플랫폼이 될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시계 산업에 진입한 애플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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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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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트랜드와 기술, 인사이트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틈틈이 클래식 음악 이야기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