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의 생애와 골드베르크 변주곡

클래식 음악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작곡가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연주도 새로운 창작 활동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제대로 된 연주자를 만나지 못하면 역사 속에 묻히게 된다. 때로는 역사 속에 사라질 뻔한 작품을 다시 빛 보게 만드는 역할도 연주자의 몫이다. “파블로 카잘스”가 없었다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세상에 영원히 알려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글렌 굴드”가 카잘스처럼 새로운 악보를 발견하고 연구해서 초연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글렌 굴드”가 없었다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현재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오죽하면 이 곡을 '굴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부르겠는가. 현대 음악사에서 “글렌 굴드”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 평가가 양극으로 나뉜다는 점에서 기존의 창조적인 연주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1982)”는 다른 음악 천재들처럼 세 살 때 이미 악보를 읽을 수 있었고 다섯 살 때 작곡을 시작했다. 당시의 음악 엘리트처럼 다양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좋은 학교와 좋은 스승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1955년 그가 처음으로 녹음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없었다면 세상은 그의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1955년 그의 데뷔앨범 커버는 30개의 변주를 상징하는 글렌 굴드의 30개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자.

알다시피 굴드는 괴짜를 넘어서 기괴하다. 낮은 피아노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머리를 건반에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한 상태에서 이상한 소리까지(허밍) 내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제정신을 가진 연주자로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음반을 녹음했던 콜롬비아 음향 기술자들은 굴드의 허밍을 제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다. 이 음반은 70년째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이 되었다.

 

굴드는 콘서트를 선호하지 않는 연주자다. 청중의 존재가 연주를 왜곡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인데 사실은 다른 연주자들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에 긴장감을 싫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마지막 콘서트는 1964년이다. 이후 1982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콘서트에 등장하지 않았다.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당시 낭만주의적 음악 조류에 역행하는 파격적인 연주였다. 많은 평론가들이 “미친놈의 연주”라고 혹평을 했다.

 

그동안 당연하게 알려진 바흐의 음악을 굴드는 자신만의 음악으로 바꾸었다. 당시 일반적인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시간이 60~70분대였는데 굴드의 연주는 35분 만에 이 곡을 완주하였다. 어쩌면 바흐 음악의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당시 연주자들을 조롱하는 수준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평론가와 클래식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는 기존의 관습과 평판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1981년 굴드는 두 번째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출시하고 다음 해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데뷔 음반이자 마지막 음반이 되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글렌 굴드”의 자전적인 영화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에 삽입되어 많은 인상을 남겼다. 1991년 조디 포스터,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공포영화인 <양들의 침묵>에서 끔찍한 살인 장면에 이 음악이 삽입되어 공포심을 증폭시켰다면, 1995년 에단호크 주연의 저예산 로맨스 영화인 <비포 선라이즈>에서는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새벽 로맨스에 이 음악이 감미로움을 더해준다.

그 외에도 많은 영화에 삽입되었지만 “호소다 마모루”의 장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이 과학 실험실에서 타임리프 능력을 갖게 되는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이 필자에겐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화 속 초반에 보여주는 주인공의 반복적인 일상 그리고 영원히 지속할 것 같은 반복의 시간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바뀌어간다. 마치 주제에 의한 변주곡처럼. 극 중에서 주인공이 무의미하게 사용해버린 시간과 능력은 마지막 변주곡이 연주될 때 안타까움으로 남게 된다.

변주곡은 기본 주제(Theme)를 기반으로 장식음을 활용하거나 화성과 리듬의 변화를 가미하여 유사한 새로운 음악들을 계속 만들어 내는 곡이다. 사회에서 보는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들도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주제 선율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상의 변주곡들만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는 일상의 변주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변화를 주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습과 평판의 저항도 받을 것이다. 

 

세상의 비난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굴드처럼 새로운 음악사를 개척하지는 못할지라도 일상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무의미하게 사용해버린 시간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처럼 타임리프 재능을 갖게 되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후회와 안타까움만 남게 된다.

"Time waits for no one"

아무리 일상이 변주곡처럼 반복되더라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추천 음반

1. 글렌 굴드(Glenn Gould) - 1955년, Columbia / Sony

역사적인 명반이자 굴드베르그의 시작. 하지만 기존 다른 연주에 익숙했던 사람들이라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2. 로잘린 투렉(Rosalyn Tureck) - 1988년, VAI Audio

1947년 최초의 골드베르크 연주자인 투렉의 5번째 녹음. 그녀의 6개 음반 중에서 최고의 연주이자, 골드베르크 음반사에서도 불멸의 명반이다.

3. 글렌 굴드(Glenn Gould) - 1981년, Columbia / Sony

1955년 연주에 비해서 무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컬트적 요소는 살아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수작.

4. Dmitry Sitkovetsky /Mischa Maisky/Gerard Causse[현악 삼중주 편곡] - 1985년, ORFEO 

바흐 스페셜리스트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와 “미샤 마이스키”가 함께 한 흔하지 않은 현악 삼중주 편곡반. 현악의 대가들이 만들어내는 피아노 연주와 또 다른 분위기의 골드베르크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