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맞은 1기 신도시들, 실거주민이 말한 현실은 이렇습니다.
3기 수도권 신도시로 선정된 창릉 지구 신도시 조성 브리핑 현장 |
3기 신도시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2018년 9월, 정부는 주택 공급 대책의 일환으로 3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신도시는 서울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것은 물론, GTX-A 착공으로 교통 환경까지 갖출 전망이다. 앞선 기수와 달리 주거 환경이 크게 개선되자 일각에서는 1·2기 신도시의 집값 걱정이 한창이다. 특히 이제 30주년을 맞이한 1기 신도시 주민들의 한숨이 거세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1기 신도시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그 현실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서울 집값 상승의 대안
분당의 개발 전후 모습 |
1980년대 국내에 주택난이 일었다. 1987년 12월 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택 보급률은 69.2%를 기록했다. 서울의 경우 50.6%로 보급률이 더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당시 국내 경기 호조로 부동산 시장이 활황기를 맞이하면서 집값이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무주택자의 설움이 늘어나자, 1988년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 가구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과 25km 이내 범위에 수십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를 건립해, 집값 폭등을 막겠다는 의지였다. 이 계획으로 인해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은 ‘1기 신도시’로서 변신을 꾀하게 된다.
신도시 건설 이후 고양시 인구 증가율 추이 |
신도시 계획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분당에는 39만 명, 일산 27만 6,000명 나머지 세 곳에 4만 명을 넘는 가구를 수용하게 되면서, 서울에 쏠린 인구를 분산시킬 수가 있었다. 실제로 지난 1990년~2010년 사이 서울시 인구는 81만 명이 감소한 데 비해, 경기도 인구는 520만 명이 증가했다.
신도시 입주가 한창이던 1990년 1월부터 4년간 서울의 주택매매가격지수 역시 9.6%로 낮은 상승률을 보이며, 신도시 효과를 증명해낸다. 이처럼 1기 신도시는 주택 시장 안정과 지역 개발이라는 목적을 모두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과거 명성 사라진 1기 신도시
신도시의 인기는 집값으로 증명되었다. 2006년 1기 신도시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3억 8,726만 원에서 2007년 4억 4,172만 원으로 크게 상승했다. 2008년에는 4억 8,897만 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하며, 서울 못지않은 집값을 자랑한다. 특히 분당은 중대형 평수의 아파트 단지와 고가주택이 밀집되어 있어, 2008년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7억 원대를 웃돌았다.
아쉽게도 이러한 명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신도시 아파트의 거품이 빠르게 빠지게 된 것이다. 1기 신도시는 서울보다 쾌적한 주거 환경으로 주목받았지만, 이외의 기능은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문제가 된 건 교통이다. 신도시 주민들은 광역 교통망 확충을 꾸준히 논의했지만 투자가 계속 지연되어 서울과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결국 투자자들은 신도시에 쏠려있던 관심을 서울 도심 재개발 예정지나 하남, 광명과 같은 다른 서울 접경 지역으로 돌리고 만다.
참고 사진 |
난개발 문제도 신도시의 인기를 떨어뜨린 요인 중 하나다. 신도시 효과에 무임승차하기 위해 도시 일대에는 소규모 주택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섰다. 이는 신도시 공공편익시설의 과부하를 불러왔을뿐더러, 차량 증가를 불러와 서울로의 이동 시간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아가 자족 기능을 갖추는 데도 실패하면서 1시 신도시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고 만다. 현재 분당을 제외한 나머지 1기 신도시들은 과거만큼의 아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노후화로 골치인데··· 3기 신도시라는 복병까지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 비율은 2017년 이미 90% 이상을 넘어갔다. / fnnews |
1기 신도시 계획이 추진된 지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신도시’라 불리고 있지만 사실상 노후화된 단지들이 밀집된 지역인 셈이다. 새 아파트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경쟁력 때문일까, 일산과 산본, 평촌은 지난 2018년 말부터 9개월간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기도 했다.
노후화 해결책으로 곳곳에서 재건축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1기 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은 198%로, 재건축해도 수익성을 보장받기가 어렵다. 거주 인구도 점차 감소하는 추세라 재건축 단지가 수요자를 사로잡을지도 미지수다.
리모델링 시범 단지로 선정된 분당 무지개마을 4단지 |
부동산 업계에서는 리모델링을 신도시 노후화의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기연구원 조사 결과, 5곳의 신도시 거주민 405세대 중 60% 이상이 리모델링 사업 추진을 찬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1기 신도시 중 비교적 집값이 높은 분당과 평촌에서는 이미 리모델링으로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하지만 3기 신도시 발표로 1기 신도시 집값의 하락 폭이 다시금 커졌다. 3기는 서울과의 거리가 불과 2km밖에 떨어지지 않아, 이전 신도시 입지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1기 신도시의 문제점인 교통과 자족 기능, 노후화 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는 한, 3기 신도시와의 가격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들 또한 기존 신도시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좌) 분당 신도시 전경, (우) ‘분당 더샵 파크리버’ 견본 주택에 몰려든 사람들 |
1기 신도시는 인구 유출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대규모로 거주하는 지역이다. 각종 문제를 둘러싼 적극적인 대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들이 서울로 이주하는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신도시 건설 계획의 목적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다. 물론 세월의 풍파로 건설 초반의 매력이 사라진 건 맞지만, 1기 신도시 역시 ‘살기 좋은 지역’임은 분명하다. 부디 이 장점을 그대로 살려 1기 신도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