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모태’ 우리나라 최초 시범아파트 자리에 들어선 것
[MONEYGROUND 디지털뉴스팀] ‘10층 이상의 건물에 여러 집이 성냥갑처럼 판상형으로 모여있는 대단지’ 우리가 아파트를 떠올렸을 때 전통적으로 연상되는 외관이다. 이런 모습의 모태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하고 1971년에 준공된 ‘시범아파트’다. 시범아파트는 아파트의 모범을 보여주겠다는 모습에서 시범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당시 가장 높은 층인 13층으로 지어졌다. 시범아파트가 보여준 다양한 구조물과 외형은 훗날 한국 아파트들의 근본이 된다.
대규모 공사로 빠르게 완성해
시범아파트는 여의도에서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다. 현재의 여의도는 초고층 건물이 빼곡하고 엄청난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지만, 과거에는 모래로 덮인 땅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목축장으로 쓰이고 일제강점기에는 비행장으로 쓰이던 곳이라, 허허벌판에 낙후된 지역에 불과했다. 이곳을 택지지구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1967년에 시작됐고, 역사에 남을 예술적 도시이자 서울 주택난의 해결책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선 여의도 둘레를 따라서 제방을 놓는 공사를 시초로 대규모 공사가 이뤄졌다. 여의도 개발은 1년을 목표로 잡았지만, 장마 이전에 끝내기 위해 약 100일 만에 완공했다. 24시간 내내 교대로 이뤄지며 하루 평균 5000명의 인부와 150대의 트럭, 120대의 중장비, 모래 200만㎥, 시멘트 5494톤, 철근 110톤 등이 동원됐다. 잡석을 충당하기 위해 밤섬을 폭파할 정도였으니, 당시 기사에는 한국 토목시공 사상 새로운 기록이라고 보도됐다.
설계를 맡았던 김수근 건축가는 도심 역할을 하던 종로의 기능을 여의도로 옮겨버리겠다는 각오로 ‘제2의 서울’을 구상했다. 여의도 서쪽 끝에는 외국공관과 국회의사당을 계획했고, 동쪽 끝에는 서울시청, 대법원, 종합병원 등을 계획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서울시청, 대법원 자리에는 민간 매각이 필요해져 시범아파트가 지어지게 됐다.
대부분 전국 최초로 도입해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13개의 층, 24개의 동으로 총 1584가구로 완성됐다. 판상형, 복도식 구조를 가졌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아파트기도 하다. 당시 시민들은 엘리베이터에 매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걸’ 98명을 배치하여 주민들을 돕기도 했다.
최초로 지하에 전기, 전화선, 난방 등의 도시기반시설을 공동으로 설치했고, 중앙난방을 도입하기도 했다. 각 가구의 현관문 앞에는 두 칸의 계단을 설치하고 옆쪽에 공간을 마련하여 단독주택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대부분 분야에서 최초로 도입하는 시스템이 많았기 때문에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양택식 전 서울시장이 준공식에 참석하기까지 했다.
서울시는 시범아파트를 홍보할 때 ‘갖는 자랑, 사는 즐거움, 꿈이 있는 마이 홈’이라고 일컬었다. 전용면적은 60㎡, 79㎡, 118㎡, 156㎡가 있었고 분양가는 최저 212만 원에서 571만 원이었다. 당시 공무원의 평균적인 월급이 17,300원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서울시가 이전과 다르게 고가 아파트를 내놓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에는 로열층의 기준이 지금과 달랐는데,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들은 4, 5층을 가장 선호했고 고층 생활에 익숙치 않아서 10층 이상은 꺼려했다.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 내
현재 시범아파트에 사는 거주민들은 2008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해오고 있다. 시범아파트는 2017년에 안전진단 D등급으로 판정받았고, 재건축 사업시행자로 한국자산신탁을 선정했다. 하지만 2018년에 지구단위계획이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수립 절차가 보류되면서, 몇 년간 시범아파트의 재건축은 진전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범아파트 주민들은 2020년 3월에 ‘여의도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조속한 수립’ 청원을 서울시의회에 제기했다. 재건축이 무기한 연장되고 있으므로 아파트의 안전 문제와 시설 낙후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2021년 1월에는 자발적으로 ‘안전사고백서’를 출간하여 ‘붕괴될 위험에서 고통받고 있는 시범아파트 6000여 명 시민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목소리를 냈다. 시범아파트 지하에는 6600V 전기가 흐르는 낡은 지구변전실이 있고, 탈루 현상이 일어나 부식된 철근이 시멘트를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