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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이명희 회장을 ‘리틀 이병철’이라고 부르는 이유들

신세계 이명희 회장을 ‘리틀 이병철’

오늘은 2009년 기준 대한민국 내의 여성 부호 중 가장 많은 재산을 가졌던 그녀, 이명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70대까지 경영 일선을 지키고 있는 이명희 회장이다. 그녀는 현재 이부진, 이서현 등으로 이어지는 삼성가 여성 경영인의 시초로서 빼어난 경영 감각을 가진 여성 CEO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나 그녀는 삼성 초대 회장인 고 이병철의 경영 스타일을 빼닮아 ‘리틀 이병철’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그녀에게 ‘리틀 이병철’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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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의 막내딸로 태어난 이명희는 유난히 아버지 이병철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조차 이명희를 ‘장미처럼 자랐다’라고 표현했을 만큼 아버지의 사랑이 남달랐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병철 회장이 이토록 이명희를 아꼈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녀의 뛰어난 경영 감각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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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은 “명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삼성그룹을 맡겼을 것이다”라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그만큼 자신을 빼닮은 이명희의 가치를 가장 먼저 발견했던 이병철 회장이다.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괜히 불린 것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 역시 이명희는 ‘평범하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열정이 유별나게 눈에 띄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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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 후, 현모양처의 꿈을 안고 12년간 전업주부로 살던 이명희는 아버지 이병철의 부름을 받고 1979년 영업담당 이사로 신세계에 입사하게 되었다. “내가 39세가 됐을 때 신세계에서 일을 해볼 것을 권유한 것은 아버지였다”라고 이명희 회장은 그 시절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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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경영에 자신이 없어했던 모습과 달리 그녀는 탁월한 능력을 뽐냈다. 신세계를 대한민국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그녀의 공이 아주 컸기 때문이다. 아버지 이병철이 죽고 언니 이인희와 이명희는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받았으나 언니 이인희의 한솔그룹은 쇠퇴하고 이명희가 이끄는 신세계그룹이 승승장구한 사실만 봐도 그녀의 능력은 분명히 확인된다. 


1997년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이명희 회장이 재계 13위의 그룹 총수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로 아버지 이병철을 빼닮은 탁월한 경영능력이 가장 먼저 손꼽힌다. 이명희는 이런 경영을 통해 신세계를 백화점 부문 2위로 올려놨고 대형마트 부문에서도 이마트를 1위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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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회장의 대인 관계 능력과 패션 감각을 가장 먼저 눈여겨본 사람이 바로 이병철 회장이었다. 때문에 이명희의 가능성을 높이 사, “나를 가장 닮은 자식이다”라고 공공연하게 칭찬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재계 인사들과 친목을 다지는 자리에는 빠지지 않고 막내딸, 이명희를 데리고 다녔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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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정재계 사람들이 함께하는 술자리나 골프 투어를 들 수 있다. 특히 골프장에는 항상 이명희를 대동하고 다녀 당시 현대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을 만나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명희 회장은 이때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신세계 그룹이 삼성가에서 분리된 후에도 승승장구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재계 10위로 신세계가 성장함에 있어 이명희 회장의 인맥의 영향도 컸다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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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메모하는 습관을 빼닮은 이명희 회장은 새로운 상품이나 의상을 보면 꼼꼼히 메모해 뒀다가 상품개발팀에 전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나 이명희의 메모 노트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안목이 뛰어났다고 한다. 아버지의 치밀하고 세밀한 경영 노하우를 닮아 제품 배치까지 이명희가 하나하나 신경 썼기 때문에 지금의 고급 백화점, 신세계가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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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nkyoreh

이명희 회장은 1993년, 국내 최초의 대형마트인 이마트를 세웠다. 그녀는 1987년 이병철 회장을 떠나보낸 후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 미국에 체류하면서 대형마트의 가능성을 포착했다고 한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찾은 미국에서 신규 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라고 이명희 회장은 회고하고 있다. 당시 그녀는 미국의 프라이스클럽과 월마트 등 창고형 점포를 둘러보다 사업 아이템으로 가능성을 확인하고 한국에 돌아와 “대형마트 사업을 서둘러 준비하세요”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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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감각은 지금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에 그녀가 사업적 기지를 발휘한 분야는 스타필드 하남으로 아이디어의 원천은 이명희 회장이었다고 한다. ‘지친 도시인들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녀의 뜻에 따라 스타필드 하남 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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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람을 믿고 맡기는 대범한 경영 스타일이 이병철 회장을 빼닮았다고 정평이 자자하다. 전문경영인이 주로 회사를 챙기고 본인은 큰 흐름만 제시하는 스타일이다. 이명희 회장이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사업본부 이사로 첫 출근하기 전날 이병철 회장은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지 마라"라는 경영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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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세계를 지금까지 운영해왔으며 여전히 신세계그룹 결재서류에는 회장 서명란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신세계는 1997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매출이 40% 이상 급성장했는데 전문가들은 전문경영인에게 책임 경영을 맡겨 핵심 역량을 유통분야에 집중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성장이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명희의 과감하고도 대범한 경영 능력 덕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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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조인스

이명희 회장은 2006년 5월 월마트코리아를 인수했다. 세계 최대 유통기업인 월마트는 1998년 7월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이마트에 밀려 한국 시장 철수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때, 이명희 회장은 월마트코리아 지분 전량을 8250억 원에 인수했고 월마트가 국내에 보유한 16개 매장을 모두 이마트로 바꾸는 통 큰 결정을 내린다. 이로 인해 이마트는 매장 수가 100개가 넘어서며 업계에서 독주 기반을 확고히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마트는 2016년 매출 16조 8517억 원을 기록하며 여전히 국내 1등 마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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