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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도 포기했다’ 서울 한복판 20년째 버려진 금싸라기 땅은?

“말 그대로 계륵(鷄肋)”

계륵(鷄肋)은 닭의 갈비로 ‘큰 소용은 못 되나 그냥 버리기도 아까운 상황이나 물건’을 말한다. 그런데 최근 한진그룹이 계륵 같은 땅 때문에 계륵 같은 상황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은 최근 대한항공, 진에어를 거느린 재계 서열 14위의 운송기업 집단이다.

한진그룹은 해당 부지를 무려 10년 넘도록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매입 의도와 달리 서울 핵심지에 부동산을 운용하지 못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한진그룹의 고 조양호 회장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땅”이라고 해당 부지를 설명했다.


조양호 회장 별세 전인 2019년 2월, 한진그룹은 해당 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9월 현재까지 부동산 업계는 해당 부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진그룹의 토지 운용을 번번이 막아섰던 서울시조차 외면하는 모양새다. 개발할 수도, 팔수도 없는 계륵 같은 이 부지는 대체 어디이고 왜 그런 걸까? 조금 더 알아보자.

1. 경복궁 옆 금싸라기 땅. 송현동 부지

한진그룹이 매각 의사를 밝힌 땅은 종로에 위치한 송현동 부지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과 청와대 그리고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면적 3만 6642㎡의 공터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번지가 부지에 포함되며 경복궁 사거리와 안국동 사거리 사이의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3호선 안국역과 5호선 광화문, 1호선 종각역이 인접해 있다.

해당 부지는 경복궁 옛 주미대사관의 숙소로 사용되고 일제강점기 식산은행이 소유했다는 점 그리고 조선 순종의 장인 윤덕영의 사저였다는 이력이 있다. 한진그룹은 해당 부지를 2대 주주인 사모펀드 KCGI의 요구에 따라 2019년 2월 매각 의사를 발혔다. KCGI는 해당 부지의 가치를 500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2. 삼성도 개발을 포기한 땅

한진그룹이 사모펀드 KCGI의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는 과도한 개발 제한도 한몫했다. 그간 한진그룹은 해당 부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부지 200m 이내에 덕성여자 중고등학교 그리고 풍문여자고등학교가 있어 학교보건법에 의해 중단되었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50m 이내는 절대정화 구역으로 호텔 건립이 불가하며, 50~200m 이내의 상대정화 구역은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후 한진그룹은 7성급 한옥형 특급호텔과 갤러리, 다목적 공연장으로 구성한 복합문화 단지라며 서울 중부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해당 부지의 역사성과 카지노를 우려한 시민사회, 주민들의 반발이 잇따랐다. 2012년 대법원은 “해당 부지는 학교보건법에 따라 관광호텔을 금지하는 게 타당하다”라며 한진그룹에 패소 판결을 냈다.

부동산 업계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팍스넷 뉴스에 따르면 삼성생명 역시 해당 부지를 2000년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1400억 원에 매입했으나 8년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자산운용사들도 해당 부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송현동 부지는 현금흐름뿐만 아니라 규제 탓에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 투자 대상으로는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대체 어떤 규제가 작용하고 있기에 종로 한가운데 있는 땅이 외면받고 있는 걸까. 해당 부지는 제1종 일반거주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전체 대지면적 중 건축물이 차지하는 비율인 건폐율이 60%에 불과함을 나타낸다. 전체 대지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 비율을 뜻하는 용적률도 100~200%에 불과하고 층수도 4층으로 제한된다. 굳이 한진그룹이 고층 호텔이 아닌 저층의 한옥호텔을 추진한 이유다.

송현동이라는 입지도 규제를 더했다. 송현동은 특별계획 구역으로 묶인 지역이다. 때문에 건축 높이가 16m 이하로 제한된다. 문제는 위의 규제를 만족하더라도 서울시의 도시계획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부동산 업계는 전부터 해당 부지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전해야 한다 주장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있는 한 어떤 계획과 기업이 오더라도 심의 통과가 요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3. 송현동 부지의 미래

종로구는 송현동 부지 매각 소직을 밝힌 2월부터 토론회 등을 통해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김영종 구청장은 6월 11일 ‘송현 숲 문화공원 조성 토론회’를 개최해 해당 부지를 소나무 숲, 공원으로 복원해야 한다 주장했다. 종로구는 부지에 지하주차장을 건설하고 위를 공원으로 꾸밀 계획이다.

그러나 송현동 부지는 매매가는 5000억 원에서 최대 1조 원까지 평가받고 있어 연 총예산이 4000억 원대에 불과한 종로구로서는 매입 여건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종로구는 서울시에 공동매입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종로와 달리 국립민속박물관 등의 송현동 부지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종시로 이전될 계획이라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시설 유치에 나서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서울의 문화시설 중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시설이다. 박원순 시장은 송현동 부지를 매입해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전하는 등 해당 부지를 전통문화시설로 조정하자는 방침이다. 종로구는 9월 3일 2차 시민토론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구매력이 없어 난항이 예상된다.


글 임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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