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위기’ 대한항공이 현금 확보 위해 매각한 부동산 가격
요즘 같은 경제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기업체가 있다. 항공업체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항공 길이 막히면서 끄떡없을 거 같은 대기업도 위기에 몰렸다. 우리나라 대표 국적기 대한항공도 그중 하나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로 모든 임원들의 급여를 30~50%씩 반납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재무구조 개선 의지를 밝히며 부동산 매각에 나섰다. 대한항공이 매각하려는 부동산은 어떤 게 있을까?
다사다난한 몇 년
대한항공은 이번 경제 위기 이전에도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땅콩 회항 사건’부터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 논란, 가족 경영권 분쟁 등 몇 년간 다사다난했다. 연이은 위기에 고 조양호 회장은 작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대한항공은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는 여러 사건에 이어 올해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맞았다. 위기에 맞서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최근 부동산 매각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대한항공 측의 부동산 매각은 서울 종로구 한복판에 있는 송현동 토지(3만 6,642㎡)와 건물(605㎡)로 시작했다.
역사를 품은 종로 중심 땅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4m 높이 돌담으로 둘러싸인 채 오랫동안 공터로 남아 있는 자리가 있다. 그 공터가 대한항공이 이번에 내놓은 송현동 부지다. 서울 중심부에 있는 만큼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장인 윤택영의 사저로 쓰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의 사택이 그곳에 들어섰다. 조선식산은행은 지금의 산업은행으로, 당시 산업금융을 담당하던 특수은행이었다. 조선식산은행의 사택은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미국 대사관 직원의 숙소로 활용됐다.
이 부지가 민간으로 넘어온 시기는 1997년이다. 삼성생명이 국방부로부터 해당 부지를 1,900억 원에 매입했다. 이후 2002년 대한항공이 삼성생명에 2,900억 원을 주고 사들였다. 그러나 송현동 부지는 그동안 각종 규제로 인해 개발이 제대로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고도지구에 속해 건축물 높이는 16m 이하로 제한된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라 건폐율은 60% 이하, 용적률은 100~200%로 묶인다. 또 인근에 학교가 많아 공사를 계획하면 교육청과의 행정소송까지 이어졌다. 경복궁 옆에 있어 문화재 보존영향 검토대상 구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각종 이유로 22년째 불모지로 남아 있는 땅이다.
금싸라기 땅의 가치
송현동 땅의 가치는 5,000억 원대(3.3㎡당 4,500만 원)로 추정된다. 광화문과 인사동, 안국동 등이 인접한 ‘금싸라기 땅’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현재 이 땅은 서울시와 종로구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종로구의 한 해 예산이 4,000억 원 규모라 5,000억 가치를 지닌 송현동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종로구는 최근 송현동 땅 매입에 정부와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공원일몰제’로 불리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실효제’가 진행됨에 따라 작년부터 올해까지 2.33km 규모의 도시공원 사유지를 사들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송현동 땅에 대해서는 정부와 서울시가 7 대 3 비율로 매입하면 공동 매입을 고려해보겠다고 밝혔다.
서울 다음은 제주도
대한항공이 매각하려고 내놓은 부동산은 제주도에도 있다.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파라다이스 호텔 토지(5만 3,670㎡)와 건물(1만 2,246㎡) 등이다. 이곳은 대한항공이 100% 보유한 해양레저시설 ‘왕산마리나’의 운영사인 ㈜왕산레저개발 지분, 칼호텔네트워크 소유의 땅이다.
이미 계약을 체결한 땅도 있다. 대한항공은 4월 21일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대한항공 사원 주택 부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이곳은 1979년 호텔 사업 확장으로 직원이 늘면서 9450.9㎡ 규모의 부지에 2층 빌라 형태의 사원 주택 22동을 지어 직원 복지 차원에서 운영해 왔다. 현재 대한항공과 일부 계열사 직원 등 100여 가구가 입주해 있다. 이들 모두에게 연내에 퇴거할 것을 통보한 상태다. 이후 제주 근무자에게는 체류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제주 사원 주택 부지는 주변 시세를 고려해 300~400억 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매각을 결정한 부지 외에도 다른 지역에 위치한 사원 주택도 추가 매각 여부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끝나지 않은 부동산 매각
한진그룹 측은 송현동 부지와 제주파라다이스호텔 부지 등의 매각을 빠르게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시에 한진그룹에서는 재무 구조 및 지배 구조 개선을 위한 추가적인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취하기로 했다. 이 모든 사항을 차질 없이 이행함으로써 주주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또한 한진그룹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윌셔그랜드센터와 인천에 있는 그랜드하얏트 인천 등도 매각할 예정이다. 이 시설들의 상업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지속적으로 개발·육성할지, 구조를 개편할지 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