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흉물로 손 꼽힌 집창촌이 사라지자 1년만에 달라진 땅값 수준
khan |
낮보다 화려한 밤, 퇴폐업소. 뒷골목을 빨갛게 물들이는 조명은 지역 주민들은 물론 지나가는 이마저 부정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지자체도 이 점을 잘 알아 직접 나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성매매 업소와의 분쟁으로 인해 쉽사리 철거는 진행되지 않아 왔다.
그런데 최근 이런 퇴폐업소 거리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국에 머물던 퇴폐업소들은 현재 대부분 철거가 완료되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 지역은 무려 100년 만에 퇴폐업소가 사라지는 꼴이다. 모두가 싫어하던 거리는 과연 어떻게 변신을 꾀하고 있을까? 그 과정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서울 3대 집창촌의 환골탈태
미아리 텍사스촌
성북구에 위치한 퇴폐업소 밀집 지역의 입구 / orbi |
미아리 텍사스촌은 국내 퇴폐업소 중 단연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이미 여러 차례 개발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과 업소 관계자들 사이의 의견 충돌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었다. 긴 시행착오 끝에 미아리 텍사스촌 일대는 복합주거단지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해당 재개발 구역에는 2,0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비롯해 오피스텔과 상가, 학원가가 조성된다.
길음 뉴타운 9단지 전경 / wishbeen |
일대는 이미 재개발이 끝나 신축 아파트들이 대거 밀집해있다. 4호선 길음역·미아사거리와 가까울뿐더러, 미아사거리 인근에 백화점과 시장이 위치해 생활편의시설이 풍부하다. 미아리 텍사스촌은 이러한 인프라를 그대로 이어받아, 개발이 완료되면 주변 단지들과의 시너지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기대감이 커지자 사업장 인근 단지들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길음 서희스타힐스 전용 85㎡는 재개발 소식과 함께 1년 만에 2억 원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6억 4,000만 원 선이었던 롯데캐슬클라시아의 분양가는 현재 10억 원을 호가하는 중이다.
천호동 텍사스촌
(좌) 공가가 된 천호동 1구역, (우) 철거가 완료된 천호동 2구역의 모습 |
미아리와 함께 텍사스촌이라는 별명이 붙은 천호동 역시 재개발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집창촌이라는 약점만 지우면 천호동의 입지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천호동은 강동구 내에서 강남과 가장 가까운 곳이면서, 강북과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5·8호선이 지나는 천호역은 강동구 내 유일한 더블 역세권으로, 8호선의 경우 별내신도시와 연장하는 사업도 진행 중에 있다.
여기에 우수한 자연환경과 상업 시설을 갖췄다는 점까지 더해진다. 천호동은 한강과 거리가 가까워 개발이 완료되면 일부 단지에서 한강 조망이 가능하다. 천호역 바로 앞에 위치한 현대백화점과 이마트는 천호동이 주거지로서도 손색없다는 점을 더욱 부각해준다.
(좌) 래미안강동팰리스와 강동역 신동아파밀리에 / chosun |
사업 구역은 총 4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1구역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엄청나다. 1구역에는 2023년 말까지 지상 40층에 달하는 4개 동 주상복합아파트 999가구와 264가구의 오피스텔이 들어설 전망이다.
사실 천호동 재개발 사업은 전 구역이 강동구 집값을 견인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강동구에는 래미안강동팰리스와 강동역 신동아파밀리에를 빼고 신축 아파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재개발 단지 입주 시기가 되면, 기존 분양가에 3~5억 원의 차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청량리 588
(우) 청량리 4구역에 들어서는 롯데캐슬 단지 조감도 / fnnews |
청량리는 재개발 소식으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퇴폐업소 밀집 지역이다. 특히 4구역이 개발 사업에 속도가 붙고 있는데, 오는 2022년까지 65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 4개 동이 생겨날 예정이다. 여기에 백화점이 들어선 42층의 랜드마크까지 재개발 사업에 포함된 상태다. 주거와 상업 시설을 모두 갖췄다는 장점 덕에, 청량리 588 일대 3개 단지에만 2만 8,000여 개에 달하는 청약 통장이 모이기도 했다.
pmnews |
유독 청량리를 향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바로 ‘교통’ 때문이다. 현재 청량리역에는 지하철 1호선, 분당선, 경의·중앙선, 경춘선이 통과한다. 여기에 GTX 호재가 겹쳤다. 청량리역은 GTX B 라인과 C 라인이 모두 지나는 황금 역세권이다. 면목선과 강북횡단선까지 개통하면 무려 8개의 노선이 지나는 것이다. 이러한 교통망을 근거로, 청량리는 동북권 최고의 상업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관광특구의 약점, 해운대 609
고층 건물이 즐비한 해운대에도 퇴폐업소가 존재했다. 해운대 609는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집창촌으로, 해운대 주민들과 지자체의 약점이었다. ‘관광특구’라는 해운대의 장점을 무색시켰기 때문이다. 다행히 70년 만에 해운대 609 개발에 물꼬가 트였다. 해당 부지에는 지하 5층~지상 37층 규모의 고급 레지던스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철거 중인 해운대 609 뒤로 보이는 호텔의 모습 / kookje |
주거 시설이나 주민들을 위한 공원이 아닌 숙박 시설이 들어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해운대 609는 해운대 해수욕장 입구에서 500m 거리에 존재한다. 이런 이점으로 이미 부지 일대에는 해운대 그랜드 호텔, 앰버서더 호텔, 도쿄인 호텔 등과 같은 고급 비즈니스호텔이 즐비한 상황이다. 관광지라는 해운대의 특성에 맞춰 내린 결정으로, 아쉽게도 해운대 609 개발로 인한 집값 변화는 그리 뚜렷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100년 유곽도 역사 속으로
무려 100년의 역사의 퇴폐업소 밀집 지역도 있다. 대구 중구에 위치한 ‘자갈마당’은 일제에 의해 조성된 성매매 집결지로, 대구·경북지역 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으로 쇠퇴의 길에 올라선 뒤, 2019년 철거되었다. 퇴폐업소가 사라진 자리에는 49층에 달하는 주상복합단지 ‘힐스테이트 도원 센트럴’이 공사 중에 있다. 단지는 아파트 894가구와 주거용 오피스텔 256실로 구성될 전망이다.
힐스테이트 도원 센트럴의 인기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갈마당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의 주둔지로 활용될 만큼 입지가 뛰어나다. 실제로 대구 최고의 번화가 동성로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달성공원역 1번 출구를 부지 바로 앞에 두고 있다. 2021년에는 KTX·SRT 서대구역, 2022년은 대구권 광역철도 개통으로 교통 수혜도 기대된다.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인 대구 자갈마당 |
자갈마당 폐쇄는 ‘2019년 대구시정 베스트 1위’에 꼽힐 정도로 주민들의 반응도 굉장히 긍정적이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부동산으로도 이어졌다. 자갈마당 인근 단지인 ‘힐스테이트 대구역’은 2019년 말 분양 당시 1순위 청약경쟁률 평균 26.37 대 1을 기록했다.
청약 결과로 볼 때 비슷한 여건을 지닌 자갈마당 부지 ‘힐스테이트 도원 센트럴’의 가격도 쉽게 짐작 가능하다. 게다가 중구는 대구 비규제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우수한 입지를 자랑하는 자갈마당 부지에 투자 수요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길가에 버젓이 자리한 퇴폐업소들 |
대부분의 퇴폐업소는 교통이 발달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밀집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개발이 진행된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역 내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철거부터 개발에 이르기까지, 업소 관계자들과 주민들 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쉽게 개발이 진행되지는 않는 편이다. 부디 그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퇴폐업소 밀집 지역들이 보다 건강한 곳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