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의 15분”
변종모의 마음 속의 길 #11
브린다반, 인도/ Vrindavan, India
춤추고 노래하라.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라. 단 하루라도 그렇게 하라. 삶이란 의도적인 행위에 길들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지면 너 또한 아름다워 보이리니.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나. 계절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내가 부르는 것이어야 한다.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창문을 열고 바깥의 모든 것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내 안에 쌓인 것들 또한 바깥으로 보내자. 단절하고 살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봄맞이하자. 춤추고 노래하라.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도 오늘만큼은 춤추고 노래하자. 그렇게 하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노래하였으니 우리는 그만큼 행복했으리. 그 정도. 그 정도면 된 거라 했다. 삶이여. 내가 기다리지 않고 너를 마중하여 손잡아 보겠노라. 그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 춤을 추고 노래한다.
그러니까 결국 나를 위한 일
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에나 한 번씩 얼굴을 내비치는 일마저 피곤의 변명으로 건너뛸 때가 많았다. 무슨 특별한 날에나 겨우 가족의 의무를 하고자 잠시 얼굴을 보이고 살갑지 못한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러지 말자고 조금만 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로 마음을 전하자 생각했던 것이 이리도 무심하고 까칠한 일이 되어버린 건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나만의 문제일 것이다. 자주 여유를 찾아 여행을 떠났지만 돌아온 자리에서는 여전히 여유 없이 팍팍한 일들을 고민하며 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주 여행을 떠올렸지만 삶을, 생활을 회피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스스로 다독이길 여러 번.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봄이 되면 마음속 가까운 곳에서부터 술렁거리기 시작한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홀리축제 때문이었다. 잠시 가족들에게 얼굴을 내밀고 돌아가는 귀경길의 많은 무리 속에서 홀리축제를 떠올렸다. 붉은 모자를 쓴 여자에게서였는지, 알록달록한 점퍼를 입은 어린아이 때문인지는 모른다. 문득 많은 사람이 몰려 올라가는 계단을 보면서 그런 광경을 떠올렸을 거로 추측하지만,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서 봄만 되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생각은 나도 나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번은 가게 될 것을 알았다. 그런 식의 분명하지도 않은 어떤 현상들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총천연색의 물감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인도를 자주 가긴 했지만 축제 때맞춰 도착한 적은 없었으니, 단 한 번도 정식적인 홀리축제를 지내 적이 없었다.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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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음력 마지막 보름날 계절이 바뀐다. 겨울이 가고 다음 해의 봄을 알리는 날. 물감을 던지며 서로의 안녕을 빈다. 더운 인도의 겨울이 더욱 뜨거워지는 봄인 것이다. 그처럼 그날의 모든 것이 뜨겁게 열광하리라 생각만 해도 자꾸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땀이 났다. 다시 인도로 갈 거라는 말에 또 인도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열광의 축제 현장을 찾고 싶었다. 그 이유가 전부가 되어 티켓을 끊고 말았다. 내가 가야 한다. 그곳이 거기 있으니까. 그리고 누구도 시킨 적 없는 자발적 선택이므로 화려한 배웅 없이도 자축하며 걷겠다 생각하고 공항을 서성이던 때는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3월 초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인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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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붉은 가루를 덮어쓰고 그래도 좋다고 그래서 좋았다고 웃으며 툭툭 털어내는 내가 있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물감을 뿌려대고 꽃가루를 날리는 골목 어귀에서 그들을 바라보거나 그들을 바라보는 나를 생각하면 그저 좋은 그런 날들을 보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총천연색 가루를 뿌려대며 서로의 안녕과 이 찬란한 봄을 알리는 일. 그냥 홀로 앉아서 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다 함께 축하하는 일이 이곳의 일이다. 홀로 가더라도 혼자가 될 수 없는 곳. 그렇게 잠시나마 모두가 친구가 되어 서로의 1년을 또 기원한다.
혹자는 인도가 불편하고 싫다고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시스템의 이 환경을 못 잊어 하는 이유가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혼자가 아닌. 무엇을 하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계획을 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함께 슬퍼하는 일. 아침부터 노래와 춤과 덕담이 온통 물감에 섞여, 어딜 가더라도 누가 오더라도 찬란한 나날들. 인도에는 매년 200개가 넘는 축제가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이처럼 강렬한 축제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여섯 번째 인도에서 비로소 홀리를 만났다. 같은 곳을 늘 가고 비슷한 불편함을 참아내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위한 일이라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아니 살아가는 동안 조금 더 자주 인도와 조우하게 될 것을 안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일이 이 불편하고 열악한 곳에서 자주 발견되므로. 산다는 것이 결코 홀로 살 수 없는 일이 자명한 사실이듯,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살갑지 못한 삶을 살아온 터라 자주 이곳에서 나를 반성한다. 돌아가는 자리에서 또 내가 어떤 이유로 변명할지 몰라도 내게 그리웠던 모든 이들의 안녕을 빌며 붉은 가루를 하늘 높이 뿌렸다. 그대들도 그곳에서 나와 같이 안녕하시라. 그리고 이들처럼 타인의 안녕을 위해 “안녕”하고 인사하시라. 결국, 좋은 마음으로 행하는 그 모든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이니까.
꽃비가 내리던 15분의 오후
사실 나는 홀리의 세 번째 도시 브린다반(Vrindavan)에 도착하기 위해 홀리축제를 선택했다. 브린다반의 벵키 비하리 사원(Banke Bihari Temple)에서 잠시 이루어지는 꽃의 향연 그것을 보러 먼 길을 달려왔다. 이틀간 종일토록 천연색의 물감에 휩싸여 지내던 시간에도 이곳을 자주 떠올렸다. 드디어 그리고 겨우 브린다반에 도착했다. 스스로 위대하고 대견해서 점심시간에는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치도 하고 구걸하는 노인에게 좋은 마음으로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기도 했다.
오후 4시. 천연색의 가루를 맞으며 춤을 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이 사원의 문 앞으로 빼곡히 몰려들었다. 숨 쉴 공간조차 없었다. 공간을 허용한다면 오로지 허공뿐이다. 그 허공마저 오색의 가루는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모든 것이 채워지고 있다. 사원을 향해 바라보는 시선은 종교와 관계없이 모두가 같은 방향이었고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그것들로 가득 채워진 사원은 사람들의 열광과 환호로 공중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동안의 삶들은 어떠했을까? 이리도 간절하고 뜨거워지려면 얼마나 인내하고 자숙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이 축제의 끝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채워지기만 하는 이 시간에 끝을 말한다는 것은 부정하다. 사람들이 사원 문이 열리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물감을 뿌려대거나 조악한 장단에 맞춰 춤을 멈추지 않았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가루는 어찌할 수 없는 축복처럼 주저 없다. 그리고 드디어 사원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행복한 홀리”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거의 필사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통과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점심시간부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저절로 이동이 될 만큼 위험하고 공격적이지만 끝내 나도 사원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대학입시에 합격했을 때가 이처럼 기뻤을까?
꽃이 내린다. 쏟아진다. 퍼붓는다. 사태가 난다. 작은 강당 같은 사원 안은 어두컴컴했지만, 꽃비가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이 환해져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입을 열게 한다.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 그리고 후두둑 떨어지는 꽃의 소리. 조용하던 꽃도 뭉쳐지면 소리를 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 생에 그리 많은 꽃송이는 처음이니까. 2층 난간에서 퍼붓기 시작하는 꽃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쏟아지는 꽃잎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꽃향기가 진동하고 열기가 후끈거리는 사원의 내부는 향수를 제조하는 곳이라 착각하기엔 너무 세속적이라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을 감동의 시간이었다. 꽃송이가 아니라 꽃잎 하나하나를 뜯어 모아서 빛의 가루처럼 던지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처럼 경건하기까지 하다. 누구도 이 혼란 속의 어지러움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늘 이 시간, 여기서 죽는다 해도 무리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꽃 속에서 죽으니 지금보다야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처럼 보지도 못하고 이야기로만 사진으로만 봤던 작은 공간으로 이끌게 한 무엇인가가 짧은 순간에 퍼붓고 있었다. 이 광경 속에서 깨어나거나 돌아오거나 헤어날 길은 없다. 한 번 봤으나 잊히지 않고 사라지는 소중한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내 삶의 모든 안 좋았던 기억들과 이 순간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이 순간을 팔지 않겠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절대로 되지 않을 순간. 함께한 누구라도 이 시간을 잊을 수 있을까? 꽃을 이고 꽃을 밟고 꽃 속에서 함께 노래하는 순간의 15분. 나는 이것을 15년을 기다린 셈이다. 고통의 15분은 인생의 절반보다 길겠지만, 꽃 천지의 작은 공간에서는 15분은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쉬운 시간이다. 이것을 위해 9시간의 비행과 5시간의 버스와 그 보다 긴설렘의 시간을 기다려 왔다. 여섯 번째의 인도 그리고 처음의 홀리. 말하자면 처음 인도를 왔을 때로부터 15년이 흐른 후에야 15분 동안 인도의 모든 열광을 본 듯하다. 그들과 상관없이 모두가 나를 위한 것이니 다행이었고 다시 앞으로의 15년의 또 다른 15분을 기대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인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홀리축제 중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이다. 어디나 축제는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 꽃 천지는 잊을 수가 없다. 그대도 그곳으로 가시라. 이유 없이 그냥 가더라도 좋아지는 이유가 생기는 곳. 모든 고단함이 한순간에 사라지던 그 날의 축제. 인생의 단 한 번 아주 짧은 15분의 순간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곳으로 가시라. 가서 조금이라도 작은 변화가 당신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뭐가 문제될 것이 있겠는가? 그러니까 지금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당신과 어느 날 꽃비를 맞는 날까지 모두가 당신을 위한 일이다. 내년 봄, 당신이 그곳에서 꽃을 맞으며 신중하게 걷고 있는 자신에게서 꽃향기를 맡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Tip : 축제의 가장자리, 꽃비를 맞으러 마투라로.
홀리축제는 인도 어디에서나 이루어지지만 메인 발상지는 바르사나(Barsana)와 난드가온(Nandgaon) 그리고 브린다반(Vrindavan)과 마투라(Mathura)이다. 일주일 동안 이 네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은 델리로부터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2017년 홀리축제는 3월 13일. 인도 전역에서 축제가 이루어지기 일주일 전부터 바르사나를 시작으로 마투라에서 절정을 이룬다고 보면 된다. 바르사나와 난드가온에서 격정적인 홀리를 지낸 다음 브린다반의 홀리를 보고 마지막으로 마투라의 메인홀리를 끝으로 모든 홀리는 끝내면 된다.
브린다반의 벵키비하리사원에서 잠깐 아주 잠깐 펼쳐지는 홀리 의식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무차별 꽃의 공격이다. 일찌감치 사원에 도착해서 사원 문이 열리기 전에 물감을 뿌리며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는 것 또한 볼만하다. 그리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는 쉽지가 않다. 네 지역 모든 사원이 그렇지만 인도전역에서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일찌감치 숙소를 나서서 분위기 파악을 하는 것이 좋겠다. 인도의 음력으로 거행되는 이유로 매년 날짜가 달라지므로 인도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내년에는 그대도 이곳에서 홀리를 지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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