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만원 중고차, 2880만원에 협박판매”…사람도 죽인 ‘허위매물’
중고차 시장 못된 고질병
협박·감금에 대출피해까지
국토부, 5월31일까지 단속
허위매물 사기꾼들은 정상적으로 팔 수 없는 침수차나 사고차를 비싼 값에 강매하기도 한다. [사진출처=매경DB] |
#A씨는 중고차 사이트에서 470만원에 판다는 매물을 발견하고 딜러에게 연락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만난 딜러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원래 제시했던 가격보다 6배 비싼 2880만원을 요구했다.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 A씨가 구입을 거부했다. 돌변한 딜러는 폭언을 내뱉고 협박했다. 심지어 A씨를 차 안에 감금했다.
#60대 남성 B씨는 허위매물 사기꾼들에게 감금당하고 강제로 대출받아 200만원짜리 1t 트럭을 700만원에 구입했다. B씨는 “중고차 매매 사기단에 속아 자동차를 강매당했다”는 유서를 휴대전화에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유서를 발견한 충북경찰청은 집중수사에 나서 허위매물로 4개월 동안 50여명에게서 6억원 상당을 갈취한 26명을 검거했다.
경찰에 적발된 허위매물 피해 사례다. 유튜브에서도 허위매물 피해를 줄여주는 콘텐츠가 인기다. 인기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도 등장했다. 지난해 대선 때는 공약으로까지 나왔다. 그만큼 피해가 심각해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집중 단속에 나서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21년 올라온 허위매물 근절 청원과 피해 예방에 나선 시민단체 서명운동 [사진출처=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캡처, 엔카닷컴, 자동차시민연합] |
정부가 다시한번 허위매물 근절을 위해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5월31일까지 중고차 허위매물 특별단속기간을 운영한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특별단속은 중고차 매매업체 30% 이상이 소재한 서울·경기·인천 지역이 대상이다.
허위매물로 피해를 경험하였거나 불법 광고 또는 미끼매물이 의심되면 대국민 민원포털인 ‘국민신문고’에서 ‘민원신청’란을 통해 신고하면 된다. 국민신문고 이용이 어렵다면 지자체 콜센터(전화번호 120)로 신고할 수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서울 강서구 매매단지에서 열린 허위매물 근절방안 간담회에서 “자동차는 국민들의 재산 중 부동산 다음으로 고가의 재화인 만큼 허위매물 근절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허위매물은 다양한 경로로 유통돼 정부의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중고차 허위매물 피해·의심 사례의 신고가 필수”라고 말했다.
헐값·싼값에 유혹한 뒤 강매
허위매물 자료 [출처=현대캐피탈] |
허위매물은 한마디로 가짜 중고차다. 실제 있지도 않은 매물이다. 폐차 수준의 침수차나 사고차를 비싼 값에 강매할 때 미끼로 사용하는 중고차도 허위매물에 속한다. 허위매물 사기꾼들은 ‘헐값’이나 ‘싼값’을 미끼로 소비자를 유혹한 뒤 협박·강매, 감금·폭행을 일삼는다. 대출 사기로도 이어진다.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찰에 붙잡힌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보복이 두렵거나 증거가 부족해 신고하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많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소비자원은 2021년 10월20일부터 11월30일까지 수도권 소재 중고차 판매자 105명과 1년 이내 중고차를 구입한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으로 ‘허위·미끼매물’을 가장 많이 꼽았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2년전 발표한 ‘중고차시장 완성차 업체 진입 관련 소비자 설문 결과’에서도 허위매물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응답자 중 54.4%가 중고차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허위·미끼 매물’이라고 대답했다.
허위매물 규제 강화 등 중고차 거래 개선이 필요하다. [사진출처=소비자원] |
허위매물 실태가 밝혀진 적도 많다. 경기도는 지난 1월 허위매물을 올려놓은 것으로 의심되는 온라인 중고차 판매사이트 17개를 적발했다. 도는 지난해 3~12월 빅데이터 전문기관에서 구축한 중고차 판매사이트 비교 자료 분석과 국교부 협업, 손님을 가장한 ‘미스터리 쇼핑’ 등을 통해 해당 사이트들을 추렸다. 17개 사이트의 매물 570대를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주행거리를 4만1995㎞ 줄이고, 가격도 정상 시세의 36.3% 수준으로 낮춰 광고했다.
경기도가 지난 2020년 진행한 온라인 중고차 사이트 조사에서는 매물 95%가 허위매물로 밝혀졌다. 조사대상 매물 3096대 중 중고차 상사명의로 소유권 이전 뒤 매매상품용으로 정식 등록된 차량은 150대(4.8%)에 불과했다. 나머지 2946대(95.2%)는 허위매물인 셈이다.
판매가격과 주행거리를 확인한 결과, 중고차 판매자가 게시한 가격은 평균 748만3000원 수준이나 실제 취득가액은 평균 2129만6000원으로 2.8배 비쌌다.
“싸고 좋은 차 없다” 알면 피해예방
중고차 소비자 주의사항 [출처=소비자원] |
‘싼값’을 앞세워 치고 빠지는 방법으로 소비자를 속이는 허위매물은 중고차 시장 고질병이라 불릴 만큼 근절하기 어렵다. 원희룡 장관이 정부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들의 현대차, 기아 등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기는 것도 허위매물과 같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현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허위매물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번거롭지만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우선 헐값·싼값에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싸고 좋은 차’를 일반 소비자가 중고차 시장에서 살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다. 가격이 너무 싸다면 사고나 고장 등 딜러가 감춘 다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혼자서 수십 대의 매물을 올린 딜러도 의심해야 한다. 자금 문제 때문에 한 명이 매물 수십 대를 보유하기 어렵다.
게다가 딜러들이 중고차를 매입할 때 빌리는 ‘재고금융’ 금리도 올랐기 때문에 보유 매물은 더 적다. 대부분 혼자서 수십 대를 구입할 돈도 없고 주차해 둘 곳도 없다. 매물 사진이나 소개란에 적혀 있는 중고차 시장 정보와 판매자(딜러)의 지역 정보가 달라도 가짜 매물일 수 있다. 딜러들은 주로 해당 지역 매매시장에 소속돼 활동하기 때문이다.
허위매물 감별 포인트 [사진출처=엔카닷컴] |
딜러와 만났을 때 사려던 차가 방금 팔렸다며 다른 차를 권유한다면 그 자리를 바로 떠야 한다. 실제 통화한 딜러가 아닌 다른 딜러가 나와도 사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부득이한 상황으로 통화한 딜러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자리를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딜러가 종사원증을 패용하고 있지 않다면 상종하지 않는 게 좋다. 중고차 매매를 하려면 종사원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종사원증을 잃어버렸다거나 주머니에게 꺼내 잠시 보여준 뒤 다시 감추듯 넣으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있다. 국토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자동차 365’ 사이트로 실 매물 여부도 파악할 수 있다. 사이트에 접속해 차량 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정식 딜러 여부도 알 수 있다.
임기상 미래차타기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헐값·싼값 유혹에 흔들리지만 않아도 허위매물 피해를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다”며 “만약에 피해를 입었다면 직접 해결하려다 협박·강매로 더 큰 고통을 겪을 수 있으므로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임 대표는 “시민단체 차원에서 중고차 피해신고센터를 자율적으로 운영해 소비자 보호 운동과 캠페인도 전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