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책은 `유튜버셀러`뿐이네
김미경TV가 나태주의 `마음이 살짝 기운다`를 소개하고 있다. |
2015년 출간된 '묵은 책'인 뇌과학자 대니얼 J 레비틴의 '정리하는 뇌'는 최근 깜짝 베스트셀러가 됐다.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의 과부하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복잡한 뇌와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이 두꺼운 책이 '역주행'을 한 건 유튜버 덕분이었다. 자기계발 콘텐츠를 올리는 라이프해커자청이 '연봉 10억을 만들어준 심리학책'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영상이 히트하면서 이 책은 한 달 새 2만부가 팔렸다.
최근 서점가에 '유튜버셀러'(유튜브가 만든 베스트셀러)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7월 4주 예스24 베스트셀러 20위권을 기준으로 라이프해커자청이 소개한 '정리하는 뇌'(15위)와 '클루지'(10위) 외에도 유튜브에 소개된 책은 총 7권에 달했다. 1위를 독주하던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누르고 1위에 오른 정재영의 '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도 유튜브 '책그림'에 소개되면서 정상에 올랐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은 유튜브 '김미경TV'에 소개되며 11위에 올랐고, 유튜브에서 강연이 화제가 된 '역사의 쓸모'는 14위에 올랐다. 다이어트 유튜브 '맛불리 TV'의 다이어트 비법을 담은 책 '맛불리 다이어트 연구소'는 예약판매만으로 16위로 진입했고, '바른독학영어'가 소개한 김아영의 '미국 영어 회화 문법 1'도 17위에 올랐다. 그야말로 유튜브라는 '꼬리'가 서점이라는 '몸통'을 흔드는 수준이다.
라이프해커자청이 소개한 `정리하는 뇌`는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 |
요즘 출판계에서 최고의 화제는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불리는 김미경TV다. 매주 금요일 10~20분 분량으로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코너 '김미경의 북드라마'를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34권의 책을 소개해 대부분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책이 교보문고 상반기 종합 2위에 오른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와 종합 13위에 오른 '아주 작은 습관의 힘', 22위에 오른 '말센스' 등이다. 상반기 100위권에 오른 책 중 무려 6권이 김미경TV에 소개됐다.
신간과 구간을 가리지 않고 '역주행'을 시키는 가공할 파괴력에 출판계는 넙죽 엎드리고 있다. 이 방송의 광고료는 800만~1000만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광고를 서로 하려고 줄을 서고 있을 정도다. 한 출판사 대표는 "어떤 광고도 김미경TV만큼 광고 효과가 확실한 게 없는 게 사실이지만, 출판사들이 유튜브에 매달리는 현실은 씁쓸하다"라고 말했다.
최근 출판시장을 장악한 유튜버들은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나, 구독자 100만명이 넘는 슈퍼스타는 아닌 경우가 많다. 지식, 심리, 과학, 자기계발 콘텐츠를 올리는 크리에이터 책그림은 29만여 명, 김미경TV는 74만여 명, 라이프해커자청은 6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했다. 자기계발과 외국어, 먹방 등에 특화된 유튜버들이 책을 소개하면, 골수팬들이 단기간에 수백 부를 주문하며, 베스트셀러가 되는 공식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형서점에서 주간 판매량 2000여 권 안팎이면 1위를 넘볼 수 있으니, 유튜버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유튜브 성공공식'이 만들어지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베스트셀러 '일취월장'의 저자인 신영준과 고영성은 구독자가 60여 만명인 유튜브 '뼈있는 아무말 대잔치'와 '체인지그라운드'를 운영하며, 베스트셀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로크미디어에서 기획한 책을 인위적으로 히트작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이들은 저자를 섭외하거나 외서의 판권을 산 책을 출간하고, 유튜브로 직접 홍보한 뒤, 이들이 멘토링을 하는 '대학생 멘티 군단'이 의무적으로 서평을 쓰도록 해 SNS에 노출시키는 '공식'을 사용하고 있다. 홍춘욱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등이 이들이 만들어낸 베스트셀러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이들은 판권을 사거나 저자를 섭외하면서 '우리는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알고리즘을 알고 있다'며 자신만만해 한다"고 전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 김현정 씨는 "인기 강사 김미경의 유튜브 채널이 상반기에 큰 인기몰이를 하면서 유튜버셀러의 판도가 바뀌었다. 다만 유튜버셀러들이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책 추천의 신뢰성도 지속적으로 담보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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