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가액 1조원…요절한 천재 `바스키아` 유작 150점
장 미쉘 바스키아의 생전 모습. [사진 제공 = Dmitri Kasterine] |
얼굴에 반창고를 붙인 유색인종이 난타당한 채 바닥에 뻗어 있다. 솟구치는 듯한 붉은 피 주변에 쓰여진 단어 'IDEAL(이상적인)'과 상반된 상황이다. 게다가 작품 제목은 승리를 뜻하는 'Victor 25448'이다.
28세에 요절한 미국 천재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1960~1988)가 1987년 완성한 이 마지막 그림은 죽음을 예견한 것 같다.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작품으로 생의 최후까지 짓누른 트라우마가 흑인이라는 게 안타깝다.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검은 피카소'라는 수식어에 굉장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비록 피카소 그림 '게르니카'를 가장 좋아했지만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다. 단지 아티스트일 뿐이다"라고 역설하면서.
하지만 그의 열등감이 작품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공한 흑인 야구 선수 행크 아론, 노예를 풀어준 이집트 신 등을 영웅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린 왕관이 그의 작품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 또한 스타가 되고 싶어 자신을 투영한 검은 얼굴에 왕관을 씌운 그림을 그렸다. "나는 열일곱 살 때부터 늘 스타가 되기를 꿈꿨다. 찰리 파커, 지미 헨드릭스 같은 우상들을 떠올리며, 이들이 스타가 된 과정을 동경했다"고 고백하면서.
1981년작 _New York, New York_(128.3×226.1cm) |
그의 작품 150여 점을 펼친 이번 전시는 '거리에 낙서와 욕설을 휘갈기는 반항아' '팝 스타 마돈나의 연인' 등 표피적인 이미지에서 한발 더 깊게 작품 세계로 들어갈 '비싼' 기회다. 뉴욕 사업가이자 컬렉터 호세 무그라비 소장품들로 보험가액만 1조원에 달한다. 2000억원으로 추정되는 그림 '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는 1981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인정을 받은 그림이다. 해부된 신체만 그리던 그가 처음으로 온전한 인간을 표현하고, 동물이 처음 등장한 작품이다. 뼈와 내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가 사람에 끌려가는 모습으로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비판했다. 여덟 살 때 교통사고로 팔이 부러지고 비장을 떼어내는 수술로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선물한 해부학 입문서를 탐독한 후 해체된 인체를 주로 그렸다. 뼈와 해골 등으로 삶과 죽음, 폭력과 공포를 표출했다. 이번 전시는 '거리' '영웅' '예술'이라는 세 가지 열쇳말로 바스키아의 예술세계를 읽는다. 먼저 뉴욕 브루클린의 부유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가부장적인 회계사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17세 때 가출한 그의 거리 스프레이 낙서들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장 벽을 채운다. 1977년부터 친구 알 디아즈와 함께 '흔해 빠진 낡은 것(SAMe Old shit)'이라는 뜻을 담은 'SAMO(세이모)'를 만들어 브루클린과 소호 곳곳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시작한다. 파격적이고 신선한 예술 행위였지만 이듬해 의견충돌로 알 디아즈와 결별했다.
노숙하면서 그림을 그린 우편엽서와 티셔츠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그의 재능을 발견해 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81년 아니나 노세이 갤러리 지원으로 작업실을 얻고 이듬해 뉴욕 개인전을 연후 2년 만에 스타 작가로 부상한다. 1981년작 'New York, New York'이 거리에서 캔버스로 옮겨간 작품이다. 번잡한 뉴욕 거리를 휘갈긴 낙서 같은 그림이지만 화단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1987년 아버지 같던 앤디 워홀의 사망 후 절망에 빠져 그린 마지막 작품 `Victor 25448`. [사진 제공 = 롯데뮤지엄] |
그의 영웅이었던 팝 아트 거장 앤디 워홀(1928~1987)과 공동 작업을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나는 한낱 인간이 아니다. 나는 전설이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10대에 시작한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해 1988년 8월 12일 약물 과다로 세상을 떠났다. 8년 동안 작업한 드로잉, 회화, 조각작품 3000여 점을 남긴 채.
전시장에는 앤디 워홀과 공동 작업한 작품들, 창틀과 문짝에 그린 그림, 백남준 이름과 TV 작품을 그린 접시,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광고 전단지를 활용한 작품 등 짧은 예술 생애 전반에 걸친 작품들이 골고루 펼쳐진다.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A'는 고통을 표현하지만 대부분 단어들이 노래 가사나 상표에 쓰인 문구로 큰 의미가 없다. 20대 흑인 청년의 예술 열정과 사회를 향한 분노가 점철된 작품들은 파격적이지만 거칠어 정제된 예술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1981년작 _Old Cars_(121.9×120.3cm) |
1982년작 _Untitled (Yellow Tar and Feathers)_( 245.1×229.2cm) |
전시를 기획한 구혜진 롯데뮤지엄 큐레이터는 "즉흥적인데도 감각적 스케치, 난해한 구도, 촌스럽지 않은 색채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림 속 트럼펫 등 악기는 음악적 열정의 표현이다. 맨해튼 클럽 DJ로 활동하며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김태형), 엑소 멤버인 찬열과 세훈 등 바스키아 팬을 자청하는 아이돌이 많다. 찬열과 세훈은 이번 전시 오디오 도슨트로도 참여했다. 전시는 내년 2월 7일까지.
1983년작 _Untitled (Bracco di Ferro)_(182.9×182.9cm) |
바스키아 전시 전경 |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