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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P] 국회의원 배지, 누구에겐 소명, 누구에겐 저항의 뜻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유명하다. 짐바르도 교수는 평범한 남성들을 섭외해 교도관과 죄수로 무작위로 나눴다. 일종의 '역할놀이'였다.


실험은 6일 만에 실패했다. 교도관 역할은 폭력적으로 무자비해졌다. 죄수 역할은 비참하게 순종적으로 변했다. '시스템(자리)이 사람을 만든다', 소위 '완장'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소개된다.


'배지'는 권위의 상징이다. 국회의원 배지는 특히 그렇다. 국회의원을 소위 '금배지'라 칭한다. 한 초선 의원은 당선자 신분 당시 국회의원 '배지 언박싱' 영상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배지의 의미와 무게를 모른다"는 비판이었다. 당시 그는 "국회의원의 권위가 배지라는 상징에서 나오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배지를 '완장'으로 여겨 꺼리는 시선도 많다. 이런 인식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지를 차지 않는 의원도 더러 있다. 김무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국회의원 배지를 초선 때 말곤 달고 다닌 적이 없다. 김 전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기 싫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민병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다. 민 전 의원은 과거 SNS에 "배지를 권위와 과시의 산물, 겸손하지 않게 보아서 안 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지는 일종의 출입증 비표로서 의미 이외에는 없다"며 '배지 무용론'을 펼쳤다.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배지 유용론'이다. 양복 옷깃에 달린 배지 개수만 8개다. 국회의원 배지, 나비 브로치, 제주 4·3항쟁 희생자의 아픔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 등이다. 팔목에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만든 고무 팔찌,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팔찌, 스텔라데이지호 희생자 추모 팔찌, 소녀상 지킴이들이 준 팔찌 등이 있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배지를 '소명의식'으로 생각한다. 그는 지난해 청소년 참정권 배지를 뗐다. 만 18세 선거권이 실현됐기 때문이다. 박 최고위원은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자 "제 양복 깃의 배지 하나가 줄어든다"고 밝혔다. 배지가 '완장'이 아닌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소명의식을 부여하는 '족쇄'인 셈이다.


배지를 '저항'의 상징으로 착용하는 의원도 있다. 김웅 통합당 의원은 금배지를 거꾸로 달았다. '국회'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뒷면만 보인다. 국회를 출입할 때만 살짝 재킷 깃을 돌려 보여준다. '작금의 국회가 부끄럽다'는 나름의 표현 방식이다.


저항의 상징으로 착용한 사례는 해외도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브로치 외교'로 유명하다. 1994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뱀 같은 여자"라고 비판하자, 당시 유엔대사였던 매들린은 금색 뱀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0년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 면담 당시에는 커다란 성조기 브로치를 달기도 했다.


300개의 금배지에 어떤 의미가 부여될지는 저마다의 역량에 달렸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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