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다리 잃은 내게 위로 대신 … “징징대지 마, 엎질러진 물이잖아”
[씨네프레소-63] 영화 ‘플래닛 테러’
우리는 먼곳에서 마음을 다치고 가까운 곳에서 위로를 찾는다. 취업에 실패하고, 공모전에서 떨어지는 등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서 외면받고 친구에게 하소연한다. 직장 상사나 거래처 사장처럼 자신의 공적인 모습만 아는 이에게 폭언을 듣고, 연인에게 투정을 부린다. 가까울수록 나를 모른 체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힘든 순간에 적절한 공감을 해주지 않는 지인에겐 급격히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 주인공(오른쪽)은 좀비에게 습격당해 다리를 잃는다. 기관총을 의족 삼아 인간병기로 거듭난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플래닛 테러’(2007)는 너무 여러 곳에서 상처를 받아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나약해진 여성의 이야기다. 의사를 직업으로 삼으려다 실패한 그녀는 고고댄서(디스코텍에서 흥을 돋우는 댄서)가 됐지만, 인격 모독에 지쳐 직장을 떠난다. 이에 더해 신체 일부가 절단되며 누가 봐도 다독임이 필요한 상황이 됐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징징대지말라”는 냉정한 말을 건넬 뿐이다. 왜 그는 위로 대신 송곳 같은 직언을 던졌을까.
기관총 의족을 착용하기 전의 주인공 모습. 누구라도 이런 사고를 당한다면 위로를 받고 싶을 것이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흥을 돋우라 세워뒀더니 울면서 춤추는 댄서
이야기는 고고댄서로 일하는 체리 달링(로즈 맥거완)의 춤으로 출발한다. 흥을 돋우는 것이 자신의 일이지만 체리는 울고 있다. 그녀의 춤은 애처롭기도 하고 다소 궁상맞아 보이기도 한다. “징징댄스가 아닌 고고댄스를 춰달라”는 관리자의 요청을 뒤로 하고 그녀는 직장을 떠난다. “180도 다른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될 작정이다.
출연진이 화려하다. 멀둔 중위로 출연하는 브루스 윌리스. 분량이 많은 배역은 아니지만 존재감이 확실하다.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짧게 등장한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체리는 자신이 허송세월했다고 여긴다. 의사가 되겠단 목표는 한때의 꿈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브릿지 자세(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상태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리는 자세), 고고댄스, 오토바이 운전 등 스스로 ‘잉여 재능’이라고 칭하는 잡기만 늘었다. 아마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겠단 희망도 훗날 곱씹을 추억으로 남게 될 것 같다. 남들이 체리를 향해 ‘웃기고 있다’고 놀린 말을 ‘웃기다’는 칭찬으로 오해해서 품은 꿈이기 때문이다.
병원에 출몰한 좀비 떼가 인간 뇌를 노린다. 잔인한 장면을 꺼리는 관객이라면 편안한 시청이 어려울 수 있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밤거리를 방황하는 그녀에겐 얼마 전만 해도 남자친구 엘 레이(프레디 로드리게스)가 있었다. 체리는 레이가 두 사람 관계에 확신이 없다고 여겨 몇 주 전 그를 떠났다. 새롭게 살기로 결심한 날 바베큐 식당에서 그를 만난 건 우연일까. 한참 동안 서로 서운한 감정을 담은 말만 주고받던 두 사람은 레이가 체리를 행선지까지 태워주기로 하며 잠시 동행하게 된다.
체리(왼쪽)는 레이를 몇 주 전 떠났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인간이 상처를 어루만지는 동안에도 죽음은 계속 다가온다
이처럼 영화는 체리의 사랑과 자아 실현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동시에 조금 다른 차원의 위기를 비춘다. 체리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인 양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사이 지구 전체를 파멸로 이끌 만한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좀비가 돼 남의 뇌를 먹고, 그렇게 뇌가 없어진 시체는 다시 좀비가 돼 다른 사람 뇌를 노린다. 좀비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를 등장시켰지만, 이것은 현실의 은유다. 대다수가 자신의 일상과 기분만 걱정하는 동안에도 지구 어느 편에선 행성을 파멸시킬 수 있을 만한 위기가 커지고 있는 법이다.
타코타 부인은 남편에게 정서적 학대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좀비에게서 도망침과 동시에 남편의 학대를 애써 넘기던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려 한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두 사람이 탄 차가 바이러스 창궐 지역을 지나며 걱정의 우선순위가 뒤집힌다. 체리가 좀비 떼에 습격당해 한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남의 큰 병이 자기 감기만 못하다고 하지만, 본인이 큰 병에 걸리게 되면 감기 같은 건 우습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평소엔 전지구적 위기가 나의 취업과 연애보다 사소하게 느껴지지만, 본인이 전지구적 위기의 중심에 놓이면 이전의 고민 모두가 대수롭지 않은 것이 돼버린다. 못 이룬 꿈을 되새기던 체리는 세계의 위기를 자신의 생존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체리는 오토바이 운전을 자신의 ‘잉여 재능’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그런 잉여 재능들이 그녀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한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특징적인 것은 체리의 슬픔을 마주하는 전 남자친구 레이의 태도다. 병원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우는 그녀에게 레이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그만 울라”고 한다. 아직 감정이 남아 있는 옛 연인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말을 건네는 대신 현실을 직면하게 한 것이다. 그의 직언엔 이유가 있다. 그녀가 다리 잃은 슬픔에 젖어 있는 동안에도 병원의 나머지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릎 밑이 절단된 다리만 쳐다보고 있다간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레이는 강인한 남자다. 체리 역시 강한 여성이었지만 자기 상처를 곱씹는 동안 그 사실을 잊었다. 레이는 체리가 삶을 개척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고 고고(go go)”
영화는 이후 마음을 다잡은 체리가 레이와 함께 생존자 무리를 이끌며 안전 지대로 도망치는 과정을 박진감 있고 코믹하게 다룬다. 톡톡 튀는 B급 감성으로 사랑 받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씬 시티’, ‘알리타:배틀 엔젤’ 등 연출)은 이 작품에서도 ‘싼티’를 자기 의도대로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신공을 보여준다. 좀비에 의한 살육 장면이 그렇다. 실감나게 표현하는 대신 ‘이거 다 분장이야’라고 외치는 듯한 뻔뻔함이 느껴진다. 후반부엔 체리가 절단된 다리에 기관총을 장착해 인간 병기로 거듭난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구조이지만, 앞쪽에 B급 감성을 충분히 깔아둔 덕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효과가 있다.
다리 일부가 잘려 삶의 의지를 상실했던 그녀가 그 다리로 적을 물리치는 이 장면에서 영화의 쾌감이 극대화된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작품 전체가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지는 영화이지만 메시지가 없지 않다. 자기연민은 인생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단 것이다. 레이는 다리를 잃고 실의에 빠진 체리를 위로하지 않았다. 자기연민에 잠겨 있기엔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리가 자기 상처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져 있는 순간에도 그녀의 뇌를 탐하는 좀비들은 계속해서 반경을 좁혀온다. 레이가 자기 슬픔을 완전히 딛고 일어설 때까지 좀비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좀비도 악당도 체리가 충분히 슬퍼하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우리는 먼곳에서 상처 받고 가까운 데서 위안을 찾는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단 생각에 친구와 연인, 가족에게 기대지만, 그들에게마저 다독여지지 못했을 때는 결국 스스로에게 위로를 찾기 마련이다. 내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가장 확실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연민으로 상처만 어루만지는 건 스스로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은 인간이 스스로를 충분히 연민할 만큼 기다려주지 않는다.
각자 가진 재능으로 공동체에 기여한다.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
영화 속 대사와 삽입 음악을 통해 반복되는 ‘징징대지 말고 고고’(Go Go Not Cry Cry)라는 메시지는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주제의 변주다. 인생을 180도 바꾸는 건 자기연민이 아니라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체리가 ‘잉여 재능’이라고 여겼던 브릿지 자세와 오토바이 운전은 그녀가 좀비의 공격을 피해갈 때 결정적 역할을 한다. 뭐라도 해내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결국 그녀에게 보상한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위로는 무용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얼마 안 되는 생존자들은 살아남을 길을 찾아 분투하는 동안 서로의 상실에 위로와 공감의 말을 건넨다. 위로는 삶을 이어나가려는 의지와 함께 갈 때 상대와 나를 일으켜세울 수 있는 것이다.
‘플래닛 테러’ 포스터. /사진 제공=디멘션필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