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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매일경제

건물 밖 자연을 끌어들이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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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섭지코지에 위치한 유민미술관의 `뷰 파인더`를 통해 안개 낀 제주 앞바다의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화산섬인 제주도를 이루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자연 풍광과 마치 하나인 듯 조화롭다. /사진=송경은 기자

지난해 봄 제주도 섭지코지의 유민미술관을 찾았을 때다. 입구의 매표소를 지나 들어선 안마당엔 전시관 대신 현무암으로 꾸며진 정원이 있었다. 중앙의 길게 뻗은 내리막길은 지하 공간에 숨어 있는 미술관 쪽으로 사람들의 동선을 이끌었다. 그 길 끝에서 '뷰 파인더'로 불리는 건축물을 마주했다. 멀리서 볼 때 뷰 파인더는 그저 가운데에 건물 너머를 볼 수 있는 긴 직사각형의 구멍을 가진 벽이었다. 그런데 그 벽 앞에 가까이 다가서자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눈에 들어왔다. 직사각형 프레임에 담긴 그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유민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를 대중화한 세계적인 건축가인 일본의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노출 콘크리트는 건축물의 구조체인 콘크리트의 색상과 질감을 그대로 살려 건축 마감재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안도 다다오는 기하학적으로 단순하면서도 특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섭지코지의 자연 모습을 형상화한 유민미술관 역시 제주도의 햇빛과 물, 바람, 소리 등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건축물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곳엔 1894년부터 약 20년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던 공예 디자인 운동인 아르누보의 유리공예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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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미술관의 지하 전시관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왼쪽)과 그 길 끝에 있는 `뷰 파인더`. /사진=송경은 기자

건축 설계에서는 건축물의 외형적 디자인은 물론 기능, 동선, 채광, 자원의 순환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고려된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건축 사이트(입지)의 콘텍스트다. 건축에서 콘텍스트는 특정 입지의 지리적·문화적 배경을 뜻한다. 그 지역의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주변의 다른 건물이나 자연환경이 될 수도 있다. 같은 건축가가 똑같은 목적의 건물을 설계한다 하더라도 그 건물이 어느 곳에 지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이유도 콘텍스트 때문이다.


만약 텅 빈 허허벌판에 건물을 짓는다면 고려해야 할 것들도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건물이든 주변과는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가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골목 한가운데나 유동인구가 많은 시청 앞, 해변의 경사 진 언덕 같은 곳이라면 상황이 다를 것이다. 건축가들은 주변 콘텍스트에 잘 스며들 수 있는 건축물을 추구한다. 그래서 콘텍스트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제약이 되기도 하지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바다 건너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섭지코지의 콘텍스트가 안도 다다오로 하여금 뷰 파인더를 만들도록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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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또 다른 건축 작품인 강원 원주의 `뮤지엄 산` 내부로 건물 밖 햇빛이 드리워진 모습(왼쪽). 시간에 따라 태양의 위치가 바뀌면서 이곳의 모습도 달라진다. 오른쪽 사진은 미술관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건물 어느 곳에서든 주변을 둘러싼 산을 볼 수 있다. 건물 벽은 자연석인 파주석으로 채워져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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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의 산상(山上) 미술관인 '뮤지엄 산(SAN)' 역시 안도 다다오가 주변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건축물이다. '산(SAN)'이라는 이름은 공간(Space)과 예술(Art), 자연(Nature)을 뜻하는 영문 앞글자를 딴 것으로, 산(山)을 의미하는 동시에 '예술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원주 지정면 구룡산 중턱에 자리 잡은 뮤지엄 산은 웰컴센터에서 플라워가든과 워터가든, 본관, 명상관, 스톤가든, 제임스터렐관까지 이어지는 700m 길이의 건축물이 마치 산 위의 호수에 내려앉은 것 같은 형태다. 종이 공예품과 회화 작품 등 연중 다양한 전시회가 열린다.


미술관 본관은 외관을 이루는 파주석 박스 안에 실내 전시 공간인 노출 콘크리트 박스가 놓여 있는 '박스 인 박스(Box in Box)' 콘셉트로 구성돼 있었다. 건물 가장자리의 두 박스 사이 공간이 내부 복도를 이루는 구조다. 곳곳에 건물 밖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하늘, 돌, 물을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창이 나 있어 복도를 따라 전시 공간을 옮겨 다니는 동안은 산속을 걷는 것 같은 청량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된 미술관이 주변 자연 풍경을 즐기는 전망대 기능까지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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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275m의 뮤지엄 산 본관 내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인공 연못과 그 뒤로 펼쳐진 구룡산 자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이렇게 건물 밖 자연을 끌어들이는 건축은 한옥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다. 산이 많아 굴곡진 한국의 자연적인 지형을 깎는 대신 생긴 그대로의 환경에 순응해 집을 지었다. 한옥은 흙과 돌, 나무, 종이 등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집의 구조와 형태 자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덕분에 한옥은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한옥에 사는 사람은 집 안에서 자연 속에 사는 풍류를 만끽할 수 있다.


특히 한옥의 자연친화성은 기능적인 이점까지 갖고 있어 현대건축에서도 재조명받고 있다. 풍수지리에 입각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남향 구조로 지어진 한옥은 겨울엔 뒷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햇빛이 집 안 구석구석까지 들어와 따뜻하다. 여름엔 집 앞을 흐르는 하천이 뜨거운 기온을 낮춰주고 통풍이 잘 되는 마루 덕분에 더위를 피할 수 있다. 공기가 아닌 바닥을 데우는 온돌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주택의 기본 틀이 되고 있고 최근에는 미국 독일 등 외국에서도 온돌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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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 내 한옥 내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왼쪽). 처마 끝이 올라간 한옥의 곡선은 자연의 곡선을 닮았다. 오른쪽 사진은 한옥 앞마당에 핀 꽃과 돌담을 함께 담은 모습이다. 꽃잎은 살짝 반투명하기 때문에 햇빛을 받을 때 이렇게 밑에서 위로 찍으면 색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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