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볼만한곳 :: 날 데리고 삼청동에 가줘요
누군가를 데려가고 싶게 만드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나를 데리고 가줬으면 하는 동네도 있다. 이곳에서는 꼭 나를 떠올려줬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드는 동네, 삼청동이다. 햇살이 파랗게 부서지는 겨울,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삼청동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1. 북촌마을서재
나에게도 열심히 도서관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시절'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만큼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렸지만. 한때는 2층 열람실의 맨 뒤 구석자리가 내 방 책상보다 더 익숙하고 편안했다. 그곳에서 나는 다가오는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고, 책 한 권과 함께 희망찬 미래를 소망해 보기도 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동네 열람실이었지만, 무어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흥분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의 공간을 나는 분명 사랑했다.
마을 서재는 그런 따뜻하고도 싱그러웠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곳이다. 소란한 카페거리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서면 조금은 차분한 세상 속의 한옥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얗게 눈이 쌓인 기와, 노랗게 햇살이 물든 마루까지, 도서관보다는 포근한 할머니 댁을 떠오르게 한다.
내부에는 대여섯 명 정도가 모일 수 있을 만큼의 의자들과 기다란 책상이 놓여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은 모두 기증된 것으로, 대여는 불가능하지만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소박한 공간이지만 누구든 편하게 머무르다 갈 수 있도록 따뜻하고 깔끔하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풍경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눈길이 가는 시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술술 잘도 읽힌다. 그 시절 집처럼 오갔던 열람실과 닮은 구석이라곤 없지만 어쩐지 그곳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꼭 독서가 아니더라도 일기를 쓰거나 홀로 앉아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와 집중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사람은 모두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밤을 새가며 다이어리를 꾸민다거나 매일매일 영어 단어를 외우는 행위들 말이다. 하지만 서재는 말한다. 그런 시간은 그냥 툭 선물하면 되는 거라고. 그만큼 조용하면서도 확실한 위로가 있는 곳.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시간이 있다면 마을 서재에 가자.
- 이용시간 : 매일 09:00-18:00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2길 11-9
- 문의 : 02-765-1373
2. 와이엔
북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한옥이다. 마치 동네의 아이덴티티처럼. 산책하는 내내 청명한 하늘에 걸린 기와지붕들을 보며 북촌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한옥도, 전통차도 없이 북촌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와이엔이다.
카페 와이엔은 마치 갤러리 같다. 커다란 유리 문을 밀고 들어가면 온통 까맣고 하얗게 물든 공간이 펼쳐진다. 그에 반해 새하얀 도화지를 닮은 이 공간의 디저트는 생소하면서도 다채롭다. 아이보리, 매그놀리아 등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어 궁금증을 자극한다.
나는 따뜻한 라테와 아이보리를 주문했다. 이름처럼 포근함이 느껴지는 아이보리의 크림 베이스는 페타치즈로 만들었다. 그 위에 바삭한 식감이 매력적인 카다이프를 얹고, 무화과 꿀 시럽을 뿌려 마무리했다. 맛은 물론 특별한 식감까지 챙겼다. 커피의 원두는 그 계절에 가장 신선한 생두를 선별하는 ACOFFEE의 시즈널 에스프레소를 사용한다. 적당한 산미와 고소한 초콜릿 향이 매력적이다.
매장 곳곳에는 향수, 컵, 캔들 등 공간에 어울리는 상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것이지만, 그마저도 와이엔을 완성하는 하나의 오브제처럼 자연스럽다. 모든 상품들은 이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
최고의 찬사는 특별한 미사여구 없이 '그냥 너 같다'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와이엔스럽다. 이곳은 그런 문장이 잘 어울린다. 신경 써서 내놓은 디저트와 고즈넉한 멋이 알맞게 조화로운 곳, 북촌의 와이엔이다.
- 이용시간 : 매일 11:00-21:00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윤보선길 71 1층
- 문의 : 02-735-6701
3. 국립현대미술관(MMCA)
생각을 비우고 싶은 날엔 주변을 소란하게 만드는 편이다. 쉴 새 없이 전환되는 장면과 소음에 정신을 빼앗겨버릴 때 비로소 평화는 찾아온다. 뜻밖의 외출, 목적지는 없고 적막만이 감도는 집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면 미술관으로 가자.
서울, 과천, 청주 등 다양한 지역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그중에서도 서울관에선 주로 동시대 미술을 만나볼 수 있다. 이름을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국내 작가들부터 쉽게 볼 수 없는 소장전까지. 매일이 새로워질 일상 속 예술을 제공한다. 모든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지만 현재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니 방문 전 참고하자.
전시와 관련한 부대시설 역시 든든하게 갖춰진 편이다. 전시작과 관련한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아트존은 물론, 카페테리아와 다목적홀까지 꼼꼼하게 마련되어 있다. 특히 입구에 위치한 미술 책방에서는 전시 도록을 포함한 미술관의 출판물과 예술 서적을 만나볼 수 있다. 미술을 사랑하는 이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펼쳐보고 싶은 책들이 이곳에 한가득이다.
목적 없는 여행이 좋은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장면이 매 순간 펼쳐지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여행하는 길 역시 동일했다. 복도에서 찬바람이 부는 독일의 공원을 발견하고, 설명글을 읽는 동안 해가 지는 시간의 무지개를 밟아보는 일은 분명 계획에 없던 일이다. 이처럼 미술관은 전시관과 전시관을 오가는 순간에도 여행의 순간을 제공한다.
일상에서 얻은 소소한 자극이 모여 하나의 영감이 된다. 그렇게 얻은 영감으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문장들이 우수수 담기는 시간이었다. 전시뿐 아니라 미술관을 둘러싼 나무와 공터, 그런 풍경들까지 꼼꼼하게 뜯어볼수록 다채로워지는 곳. 국립현대미술관이다.
- 이용시간 :
월, 화, 목, 금, 일요일 10:00-18:00
수, 토요일 10:00-21:00 (야간개장 18:00-21:00)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0
- 문의 : 02-3701-9500
삼청동에 가는 날이면 유난히 해가 쨍쨍하다. 우연이겠지만 운명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여러모로 그런 착각이 즐거운 동네, 혹여나 기다리는 전화가 없더라도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 무료한 일상에 감칠맛을 더해줄 서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