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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죽을래?" "몸매가 적나라하네"…인권침해 만연한 전국체전

경향신문

지난 6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남자일반부 110M 허들 결승 경기에서 김병준(경남, 가운데)이 역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 이 XX야, 죽을래, 그 따위로 할 거야?”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네, 좀 더 벗으면 좋으련만”…. 위상이 높은 국내 스포츠 대회 중 하나인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고교 학생 운동선수를 상대로 언어·신체·성폭력 등 인권침해가 만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지난 3~10일 서울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전에서 육상을 비롯한 14개 주요 종목 고교 학생 선수를 대상으로 각종 인권침해 실태를 살펴봤다.


인권위 조사 결과, 학생 선수들은 경기에 패배했거나 경기를 잘 하지 못한다는 등 이유로 일부 지도자들로부터 심한 욕설·고성·폭언·인격 모욕 등을 들었다. 한 남자 지도자는 여자 선수들에게 “야, 이 XX야, 죽을래, 그 따위로 할 거야? 미쳤어? 나가! 너 뭐 하는 거야? 장난해” 등 폭언을 했다. 또 다른 지도자는 학생 선수들을 전체 집합한 상태로 “XX놈들, 나가 뒤져야 된다”고 했다.


학생 선수들에 대한 성추행 등 성폭력 피해도 목격됐다. 한 심판은 경기장 안내 여성 직원에게 “야, 딱 내가 좋아하는 몸매야, 저런 스타일은 내가 들고 업을 수 있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일부 종목에서 작전 타임에 남자 코치가 여자 선수의 목덜미를 주무르고 만지는 모습도 있었다.


학생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종목단체 임원 등 고위직들의 훈화를 들어야 했다. 일부 여성 선수나 자원봉사자들이 단상에 마련된 좌석의 종목단체 임원 등에게 다과 수발을 하는 성차별적인 의전 장면도 목격됐다.


학생 선수들은 간접흡연 피해도 입었다. 대부분의 종목에서 학생 선수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경기장 입구 등에서 무분별하게 흡연이 이뤄졌다. 경기장 내부까지 담배 냄새가 유입돼 학생 선수들이 간접흡연을 하게 됐다.


관중들 또한 언어 폭력에 가세하기도 했다. 일부 관중이 선수들에게 지역 감정에 기반한 비난을 하거나 여성 선수를 향해 성희롱 발언을 했다. 한 관중은 “시골 애들이 거세”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남자 관중은 한 여자 선수에게 “나한테 시집와라, 시집와”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네, 좀 더 벗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말했다.


편의 시설 또한 부실 운영됐다. 대부분의 경기장에서 탈의실·대기실·훈련실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복도에서, 본인들이 가지고 온 간이 매트 위에서 관중들과 섞인 채로 쉬고 훈련하고 몸을 풀었다.


인권위는 “스포츠 과정에서의 신체 접촉은 훈련, 교육, 격려 행위와 혼동될 수 있어 이를 빙자한 성폭력 사례가 많다”며 “스포츠분야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인권위는 “앞으로 대규모 스포츠 경기가 인권친화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지속할 것”이라며 “스포츠 경기에서 인권침해와 권위주의적 문화가 완전히 근절될 수 있도록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각 이해당사자들에게 개선을 촉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등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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