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더 잘나가는 '복면가왕'…원조 뛰어넘는 압도적 스케일 “의상비만 2억”
지난 2일(현지시간) 폭스TV에서 방영된 미국판 ‘복면가왕’ <더 마스크드 싱어> 에서 ‘몬스터’ 복면을 쓴 참가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폭스TV 제공 |
“누가 떠오르나요?” “크리스 브라운?” “솔직히 누군지 모르겠는 건 정말 처음이네요. 추측이 안 돼요. 목소리가 인상적이고 무대에서 놀 줄 아네요.” 연예인 판정단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무대 위에선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에 등장하는 캐릭터 복면을 쓴 참가자가 퀸의 명곡 ‘돈 스탑 미 나우’를 한창 열창 중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판정단 중 한 명이 ‘몬스터’에게 물었다. “당신은 전문적인 가수인가요?” 알쏭달쏭한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사람에겐 아니죠.”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판 ‘복면가왕’인 <더 마스크드 싱어>가 폭스TV에서 첫 선을 보였다. 몬스터 뿐만 아니라 공작·사자·하마·유니콘·사슴 등 화려한 가면과 의상으로 치장한 참가자 6명이 무대에 섰다. 이들은 휴 잭맨의 ‘더 그레이티스트 쇼’, 바비 브라운의 ‘마이 프리로가티브’, 레이첼 플랫튼의 ‘파이트 송’ 등을 열창했다.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가면 뒤 인물에 대한 추측을 내놓았다. 레이디 가가, 린제이 로한, 페리스 힐튼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인물들이 언급됐다.
첫 탈락자는 하마 복면을 쓴 미식축구 선수 안토니오 브라운이었다. 그는 탈락 직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경연에 참여하게 돼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국판 복면가왕 참가자들이 보유한 각종 기록을 모두 더하면 그래미상 65회·에미상 16회 노미네이트에, 스포츠행사인 슈퍼볼 우승 기록도 4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판 복면가왕 <더 마스크드 싱어> 의 첫 탈락자는 하마 복면을 쓴 미식축구 선수 안토니오 브라운이었다. 폭스TV 제공 |
방송 직후 미국 현지 언론은 이날 방송이 지난 7년 간 미국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총 시청자 수는 936만명으로 집계됐으며, 광고주가 가장 선호하는 18~49세 시청률은 3.0%에 이르렀다. 미국 인기 시트콤 <빅뱅이론>의 평균 시청률이 1.0%대인 것과 비교하면, <더 마스크드 싱어> 첫 방송은 말 그대로 ‘대성공’이었다. USA투데이는 “피와 폭력 없이 노래만으로 <왕좌의 게임>을 보는 듯한 스릴과 두근거림을 느끼게 했다”고 평했다.
1인 진행자·가창자의 정체를 추측하는 연예인 판정단·이를 지켜보는 방청객 등 기본적인 방송 포맷은 원작과 같았다. 복면을 쓴 12명의 참가자가 10주간 노래 경연을 통해 차례로 정체를 공개하며, 매주 탈락자가 등장하는 시스템이다. 마스크를 쓴 출연자를 보호하는 경호원들의 모습과 대기실에서 이뤄지는 인터뷰 역시 원작과 판박이었다.
그러나 ‘스케일’은 달랐다. 피부색조차 알 수 없게 전신을 가리도록 제작된 의상들은 한 벌 당 제작비가 2억원에 달했다. 팝가수 레이디 가가와 케이티 페리의 의상을 제작한 디자이너들이 1년 이상의 사전제작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판은 또 매 무대마다 백댄서와 각종 무대장치를 등장시켜 볼거리를 풍성하게 했다. 한 국내 시청자는 “가수 혼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원작과 달리 미국판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고 말했다.
미국판 복면가왕 <더 마스크드 싱어> 출연자들의 화려한 복면과 의상들. 의상 한 벌 당 제작비용이 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TV 제공 |
복면을 쓴 가수를 노래만 듣고 맞히는 음악쇼 MBC <복면가왕>이 해외에서 리메이크된 건 처음이 아니다. 시작은 중국판 복면가왕 <몽면가왕>이었다. 중국 강소위성TV가 MBC로부터 포맷 판권을 매입해 2015년 첫방송 됐다.
중국이 리메이크 신호탄을 쏘았다면, 현지화에 완벽히 성공한 건 태국판 복면가왕 <더 마스크 싱어>였다. 태국 케이블 방송사 워크포인트가 판권을 구입해 2016년 10월부터 방송했으며 현재 시즌6를 제작 중이다. 가장 인기를 끈 시즌 1의 복면가수 ‘두리안’의 경우엔 그의 무대를 담은 영상이 유튜브에서 1억뷰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태국에선 복면으로 정체를 감추는 컨셉은 원작과 같았으나, 시즌 별 왕중왕전을 통해 최종 우승자를 가린 후 정체를 밝히는 경연 방식이 한국판과 달랐다.
태국판 복면가왕 시즌1 우승자 ‘두리안’. 두리안의 무대를 담은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1억뷰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워크포인트 제공 |
미국 방송사가 판권을 사는 데 영향을 미친 것도 태국판 복면가왕이었다.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은 크레이그 플레스티스 스마트독미디어 대표는 미국판 복면가왕이 탄생하게 된 일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미국 LA의 태국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딸이 ‘아빠, TV 좀 봐봐’ 하더라. 고개를 들어보니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복면가왕>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그때 직감했다. 아, 이건 사야 돼. 틀림없이 미국 시청자들도 좋아할 거야.”
MBC는 <복면가왕>의 연이은 해외 성공에 고무된 모습이다. MBC 콘텐츠사업국 박현호 국장은 “미국 리메이크 방영 이전에 영국, 프랑스 등 총 20여 개국에 <복면가왕> 포맷이 선판매 됐다. 조만간 전 세계에서 리메이크 될 것”이라고 밝혔다. MBC 관계자는 “<굿닥터>, <꽃보다 할배>, <복면가왕> 등 미국에 진출한 한국 포맷 3편 중 방송사 간 직거래가 이뤄진 건 <복면가왕>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태국과 미국 외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도 <복면가왕> 포맷을 딴 프로그램 시즌4와 시즌2가 각각 방송된 상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복면가왕>은 목소리만으로 상대가 누구인지를 추론하고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다들 놀라는 드라마틱한 전개와 음악이라는 만국공통의 흥미요소가 모두 들어있다”며 “게다가 시나리오와 달리 프로그램 뼈대만 제공하는 포맷 수출의 경우엔 현지화가 더 쉬워 성공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