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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봉화 닭불고기 안동은 닭조림 닮은 듯 다른 ‘불맛’

(115) 청송 오일장

경향신문

같은 ‘닭불고기’라도 조리 방식이 각기 다르다. 청송 신촌약수터 인근의 닭불고기는 닭살을 다져서 양념한 뒤 구운 떡갈비 형태다. 영천식당에서는 이웃한 안동식으로 닭고기에 통마늘을 넣고 간장양념에 조린다. 봉화의 닭불고기는 양념한 닭살을 숯불에 굽는다(위 사진부터).

경상북도 청송, 태백산맥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평평한 땅보다는 운동 열심히 한 이의 알통처럼 울퉁불퉁 우뚝 솟은 산이 더 많다. 평지에서 자라는 농산물은 적어도 깊고 높은 산 덕에 나는 것들이 유달리 더 맛있다. 그래서 사과나 자두가 그렇게 맛있다. 청송은 가끔 가던 곳이다. 아주 가끔은 영덕에서 오던 길에 잠시 동청송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거나 간단한 식사를 하곤 했다. 약수터 근처에는 닭불고기 파는 식당이 꽤 있다. 식당 입구에 있는 약수터와 주변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다.


약수에 있는 미네랄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 적당한 탄산까지 있어 한잔 마시며 운전의 피곤을 풀곤 했다. 약수 받아가는 것은 공짜, 얼음 담긴 텀블러에 담아 운전하며 마시다 보면 금세 280㎞를 지나 집이었다.


청송과 영덕의 경계에도 약수터가 있다. 읍내까지 몇 군데 자연스레 땅을 뚫고 약수가 솟는다. 식당 주변은 관리가 잘되어 있다. 근처에 몇 개의 약수터가 있는데 물맛이 다 다르다. 탄산의 맛, 미네랄의 맛이 다르기에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여기 이름은 달기, 아까 약수터는 신촌이다. 두 곳을 굳이 비교하자면 나는 신촌 쪽에 손이 간다. 약간 더 탄산이 세다.


출장으로 인해 전국을 다니면서 온천은 거의 다 가본 듯싶다. 처음으로 청송에 있는 온천을 이용해봤다. 내 기준으로 온천의 물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비누가 필요한가’에 따라 갈린다. 좋은 물은 비누가 굳이 필요 없다. 샴푸나 린스도 마찬가지다. 청송은 필요 없는 곳이다. 알칼리 온천이라 물에 담그면 피부가 금세 매끈해진다. 머리를 물로만 감아도 린스 한 것처럼 부드럽다. 다녀본 온천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 개인적으로 꼽는 세 군데는 충주 앙성온천, 영주 풍기온천 그리고 여기다. 수영장이나 사우나 등의 부대 시설은 없으나 온천물만큼은 좋은 곳이다. 온천이 있는 곳은 새벽녘을 달려 서울에서 일찍 내려간다. 온천욕하고 나서 개운한 몸으로 시장 구경을 나서면 좋다.


청송장은 달력에 4와 9가 든 날에 열리는 4·9장이다. 읍내를 흐르는 용전천 위에 놓인 월막교 입구에 있는 시장에서 열린다. 경북 내륙이 그렇듯 여기 또한 사람이 적기에 시장이 크지 않다. 다녀본 내륙의 시장 중에서 영양 다음이 여기지 싶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열십자(十) 모양의 시장은 긴 쪽이 대략 60m, 짧은 쪽이 30m 정도였다. 근래에 만든 듯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아케이드 안에 있는 장터 구경은 물건을 사지 않는다면 금세 끝난다.


며칠 비가 오더니 장이 서는 날 또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 오면 장터는 한적하다. 사는 이나 파는 이나 굳이 빗속을 나오려 하지 않기에 그렇다. 내륙의 장터는 봄이면 나물, 가을이면 버섯이 핵심. 지난 상주장을 보니 싸리를 비롯해 야생 버섯이 나오기에 산 깊은 청송은 얼추 송이와 여러 버섯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비가 오는 탓인지 생각했던 버섯은 구경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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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배의 중간 식감을 품은 황금 배. 땅을 뚫고 솟아나는 신촌약수터의 약수. 들깨와 땅콩을 삶아 만든 국수(왼쪽 사진부터).

시장의 신기한 점은 크든 작든 필요한 것은 다 있다는 것이다. 고를 수 있는 것이 적을 뿐이지 있을 건 있다. 시장에 배가 보였다. 신고 배라 크게 쓰여 있거니와 알도 크고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이런 배는 보기에만 좋다. 신고가 맛이 드는 시기는 10월 말 정도다. 9월 중순인 지금보다 한 달 뒤에나 제맛이 든다. 착색제와 성장호르몬 등으로 색을 들이고 크기를 키운 것이기에 맛이 맹하다. 좌판을 벌인 할머니가 가져 나온 배를 보니 황금 배가 섞여 있다. 황금 배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배 품종으로 사과, 배의 중간 식감이다. 배의 서걱거림, 사과의 아삭함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여느 사과처럼 껍질째 먹을 수 있어 배의 향도 음미할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에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있다. ‘살 거라면 보기 좋은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의미로 먹거리나 음식에 흔히 사용한다. 기왕이면 이쁜 것을 찾다 보니 앞서 이야기한 신고처럼 착색제와 호르몬을 사용해 모양만을 보는 ‘다홍치마’가 주변에 많아졌다. 음식은 보는 것보다 입으로 음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는 경우가 많다. 다홍치마는 치마 살 때나 적용해야 한다. 음식에는 기왕이면 ‘제철’이나 ‘제맛’을 찾아야 한다. 속담도 ‘기왕이면 제철’로 바꾸어야 한다. 차례상에 보기 좋은 것을 올려도 결국은 산 사람이 먹어야 하는 법, 맛있는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매콤한 양념 조물조물…센 불로 확

청송은 떡갈비 형태에 닭죽 곁들여

봉화는 닭 한마리 살 발라 구워내

안동은 찌거나 조리는 닭요리 많아


약수터 주변에 몰려 있는 식당들

요리법·손맛 달라 ‘고르는 재미’


인구 적어 아담한 규모의 오일장

신고배·황금배, 보기만 해도 군침


잠시 들른 영주장에서 산 생땅콩

들깨와 함께 갈아 깨냉국수 ‘뚝딱’

시장에는 여름것은 다 들어가고 가을것이 대세였다. 오면가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토란대 가격. 흥정이 끝나면 작두로 토란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자른 토란대는 며칠 말린 다음 껍질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해 보관했다가 나물이나 육개장에 넣으면 아주 그만이다. 말리지 않은 토란 나물을 팔기도 하는데 필자처럼 귀찮은 게 싫은 사람한테는 정말 좋다. 생토란대는 아린 맛이 있다. 소금물로 삶아 아린 맛을 빼내야 맛있는 나물이 된다. 그 과정을 다 거친 생나물은 마냥 부드럽지 않고 씹는 맛이 나는 나물볶음 재료가 된다. 이미 지난 의령장에서 말린 토란대를 샀기에 지나쳤다. 시장을 나서다가 피땅콩을 한 되 샀다. 가격은 지난 상주장과 마찬가지로 1만원.


오다가 잠시 영주장에 들렀는데 거기도 1만원이었다. 땅콩을 산 이유는 하나. 지난 단양장에서 맛본 깨국수를 할 때 생땅콩을 갈아넣어도 맛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깨냉국수는 맛있다. 집에서 몇 번 해봤는데 너무 매력 넘치는 맛이었다. 여기에 생땅콩을 삶아 넣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땅콩의 은은한 고소함이 깨의 강렬한 고소함을 단단하게 받쳐줄 듯싶었다.


들깨와 땅콩을 삶아 국수를 만들었다. 요리하면서 가장 즐거울 때는 그렸던 맛이 실제로 완성됐을 때가 아닌가 싶다. 깨국수 만들기는 쉽다. 콩처럼 불릴 필요도 없다. 30분이면 뚝딱 만든다. 들깻가루가 아닌 들깨를 준비하고 삶는다. 물은 들깨 양의 열 배 정도. 소금을 아주 조금 넣고는 20분 정도 삶는다. 삶고 나서 믹서에 갈면 완성이다. 국수는 메밀면도 좋고 소면도 괜찮았다. 들깨 간 물은 한 번 걸러도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 거르고 남은 깨는 버리지 말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넣고 비빔장을 만들면 또 다른 맛이 난다. 전에 먹은 적이 없는 맛있는 비빔국수를 맛볼 수 있다. 땅콩을 넣은 국수는 예상대로 깨만 넣은 국수와는 또 다른 고소함이 가득했다. 10월 지나 햇들깨가 나오면 그때 또다시 해볼 생각이다. 가을은 쌀과 들깨가 가장 맛있는 제철이다.


청송, 봉화 두 지역은 닭불고기 파는 곳이 많다. 이웃한 안동은 찜닭이 유명하다. 안동 찜닭보다는 조림닭이 입에 더 맞는다. 봉화와 청송 모두 닭불고기라는 이름은 같으나 하는 방식은 다르다. 조리 방식은 다르나 두 곳 모두 약수터 주변에 닭불고기 식당이 몰려 있는 점은 또 같다. 청송은 달기·신촌 약수터, 봉화는 다덕 약수터 주변이다.


봉화는 닭살을 양념해서 숯불에 구워서 나온다. 청송은 다져서 떡갈비 형태로 나온다. 청송은 그 외에도 닭다리 하나가 올려져 나오는 닭죽과 구워서 나오는 닭날개와 봉이 있다. 닭 한 마리 살을 구워주는 곳은 봉화, 부위별로 다르게 요리해주는 곳은 청송이다. 두 곳을 다니면서 토종닭으로 조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은 안동에서 찜닭 먹을 때도 했었다. 여전히 토종닭으로 닭불고기 하는 곳을 찾지 못했으나, 토종닭으로 백숙과 닭볶음탕이 아닌 간장조림을 해주는 곳을 찾았다. 한 마리 단위였고 간장과 통마늘을 넣고 조려서 나온다. 안동처럼 고구마, 당면 등은 들어 있지 않고 닭만 있다. 메뉴에는 없다. 사전에 주문하고 가면 된다. 토종닭의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다. 영천식당 (054)873-2387

경향신문

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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