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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경향신문

진미, 별미, 일미… 대구 현풍장 흑염소 숯불구이부터 묵은지 김치찌개까지

(95) 대구 현풍장 겨울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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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서리 맞아 비로소 제맛 시금치

30대 초반이던 2000년, 첫 대구 출장길에 동천 다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어릴 적 엄마나 이모들이 만나면 빠지지 않았던 농담. “점마 동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는디…”가 생각이 나서다. 도대체 말로만 듣던 동천 다리 밑이 어딘가 싶었다. 형과 누나와 달리 대구에서 태어났어도 기억은 없다. 돌이 되기 전 평택으로 왔기 때문이다. 


태어난 곳은 대구, 자란 곳은 인천이기에 둘 다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구 오일장을 찾아가는 길에 30대의 추억이 잠시 스쳤다. 대구는 넓은 도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그 때문에 여름이면 ‘대프리카’ 소리를 듣는 곳이다. 모든 광역시가 그러하듯 대구 또한 주변의 군을 통합해 광역시가 되었다. 그로 인해 시골과 도시 풍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오일장이 선다. 시내 중심의 반야월시장(1, 6장), 불로시장(5, 0장)이 있다. 달성군에도 두 개의 장, 현풍시장(5, 0장)과 화원시장(1, 6장)이 선다. 네 개 시장 중에서 5일과 0일이 든 날에 장이 서는 현풍시장에 다녀왔다.


현풍시장은 비슬산에서 시작해 낙동강으로 흐르는 현풍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천변 쪽은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몰이 있다. 유행처럼 번진 청년몰은 예산을 쥔 어른들의 상상 속에서만 번영한 듯싶다.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모양새다. 외관은 그럴듯하지만 속사정은 좋지 않다. 시장은 사람과 돈과 물건이 흐르는 곳이다. 막힘이 없어야 하는데 흘러서 넘쳐야 하는 사람이 없는 시장은 시장이 시장답지 못하다. 이런 기본적인 원리를 파악하지 않고 겉보기에 좋아 보이고, 저쪽이 했으니 이번엔 이곳으로 예산을 배정하는 ‘나눠먹기식’이다. 어른들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지방소멸 상황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등 떠밀기식 정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풍뿐만 아니라 광역시에 있는 청년몰을 보면 현실은 비슷하다. 사람 많은 광역시가 이렇다면 지방의 작은 도시는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나마 폐점을 최소화하려면 외관 치장에 쓰는 예산보다는 지속적인 지원이 청년몰을 살리는 방안이 아닐까 한다. 한때의 유행은 정치인과 주변 인물만 좋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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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장의 중심에는 상설시장이 있다. 수구레국밥을 비롯해 다양한 먹거리를 팔고 있는 상점이 시장 내 있다. 그 주변으로 오일장이 선다. 사람이 있으니 시장 구경 맛이 난다. 오가며 어깨를 부딪치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야 시장이다. 구경 삼아 돌아보니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조금 더 겨울로 치우쳤다. 밝은 초록의 시금치가 이제는 제법 진해졌다.


시금치는 겨울 작물, 서리를 몇 번 맞고 눈도 맞아야 제맛이 나는 작물이다. 보기 예쁜 시금치는 눈에만 만족스러울 뿐 입에는 만족스럽지 않다. 설탕이나 MSG가 흉내 낼 수 없는 맛을 추위가 아니면 주지 않는다. 


조금 더 걸어보니 모과가 보인다. 모과만 전문으로 키우는 곳은 드물다. 대부분 동네 어귀나 농장에 몇 그루 서 있는 나무에서 딴 것들이 대부분이다. 모과는 떫은맛이 강해 생과로는 먹지 못한다. 설탕과 버무려 청으로 만들어 먹는다. 집에서 청을 만들면 모과가 위로 둥둥 떠 올라 있다. 모과뿐만 아니라 매실, 청귤, 유자도 마찬가지다. 시판하는 모과차나 유자차를 보면 병 안에 골고루 섞여 있다. 마법인가 싶겠지만 식품첨가물 때문이다. 해초에서 추출한 카라기난이 모과가 위로 뜨는 것을 막고 골고루 퍼지게 한다. 수제라면 위로 동동 뜨는 것이 맞다. 


모과는 찾는 이가 적어 가격이 저렴하다. 차량이나 실내 방향제로도 좋다. 몇 개만 사서 청을 담그면 겨울철 건강음료로도 손색이 없다. 가격이 저렴한 모과차는 당절임 모과를 사용한 것에 다시 설탕을 더한 것이 많다. 가격에 속지 말고 모과 함량을 봐야 한다. 대형할인점이나 인터넷에서 파는 청은 색이 밝다. 따로 색소 등을 넣지 않는다. 다만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든 즙을 넣는다. 비타민C가 변색을 막아준다. 집에서 청을 담그면 색이 바래는 것은 비타민C가 부족해서 그렇다. 11월 말 대구는 얼추 김장철이 끝난 듯싶었다. 장터에는 김장 배추나 무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또 한 계절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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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전골 말고 입맛 당기는 흑염소 숯불구이

주변 군지역 통합해 광역시 된 대구, 도시·시골에 골고루 오일장…달성군 현풍장, 사람 많아 복작복작

무·배추는 거의 없고 색이 진해진 시금치와 샛노란 모과가 보인다…가을은 갔고 겨울이 훨씬 가까워졌다

새알 넣은 구수한 수제비, 씹는 듯 마는 듯 부드러운 흑염소 숯불구이…1년 숙성 김치로 끓인 찌개 진국

시장을 돌아보고 시내를 다니면서 보니 다른 곳과 달리 수제비 하는 곳이 많았다. 상설시장 내 먹거리에서도 수제비는 빠지지 않았다. 시내는 국수 파는 곳이라면 여지없이 메뉴에 수제비가 있었고 전문점도 심심치 않았다. 수제비는 보통 밀가루 반죽에 해물, 김치, 감자 등을 넣고 끓인다. 얼큰한 것보다는 구수한 감자와 끓이는 것과 다슬기 넣고 끓인 것을 좋아한다. 대구는 조금 달랐다. 수제비가 두 종류였다. 매운 것과 안 매운 것이 아니라 밀가루와 찹쌀 수제비 두 종이었다. 


시장통에 앉아 수제비를 주문했다. 아주머니가 되물었다. “밀가루요?” “아뇨, 찹쌀요.” “찹쌀인지, 밀가루인지 확실하게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메뉴에 수제비와 찹쌀 새알 수제비 두 가지가 있었다. 다니면서 찹쌀 수제비를 보고는 반죽할 때 찹쌀을 조금 넣는가 싶었다. 밀가루의 전유물인 수제비와 찹쌀이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앞에 놓인 수제비를 봤다. 새알이 들어 있다. 비로소 찹쌀과 수제비가 연결되었다. 


국물에 들깻가루를 넣었다. 황태와 미역이 있어 맛이 시원하면서 구수했다. 해장용으로 알맞게 편안함이 있다. 다른 지역에 가면 찹쌀로 만든 새알은 팥죽이랑 궁합을 맞춘다. 대구는 특이하게 새알이 주인공이다. 수제비라는 메뉴지만 맛을 보면 찹쌀 새알탕 혹은 국이다. 한 끼 편하게 혹은 해장용으로 알맞은 음식이다. 현풍시장 안 간이음식점에서 낸다. 여기가 아니더라도 대구에 있는 시장이라면 있다.


지면을 통해 지역에 있는 음식을 소개한다. 그러나 소개하지 않는 음식으로는 한정식이 있고, 재료로는 흑염소가 있다. 한정식은 겉멋만 잔뜩 들어가 있어 소개하지 않는다. 흑염소는 대부분 탕이나 전골인지라 한 번 소개하고는 다루지 않았다. 대구 달성을 가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때 한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흑염소 숯불구이’가 주메뉴다. 구미가 바로 당겼다. 숯불구이로 쓰는 고기는 빤하다. 가장 많은 것이 돼지고기, 그다음이 소고기다. 닭고기도 있지만 다른 것보다 더 찾아서 먹어야 한다. 


흑염소 고기를 숯불구이하는 곳이라 하니 맛이 궁금해 찾아갔다. 주문하고 앉으니 잠시 후 고기가 나왔다. 한 번 봐서는 소고기를 구워 놓은 듯싶었다. 맛을 봤다. 부드러운 식감에 간장 향과 단맛이 있다. 목구멍으로 넘길 때 살짝 흑염소 특유의 맛이 혀에 비추고는 사라졌다. 별미였다. 씹는 듯 마는 듯한 식감이 재밌다. 간장으로 하는 양념이기에 소나 돼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고기가 부드럽고 씹는 맛에 차이가 있어 선호가 갈린다. 돼지와 소가 양분하는 숯불구이 판에서 지분을 요청해도 무방할 정도의 맛이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미리 양념에 재워둔다. 흑염소는 바로 무쳐서 굽는다고 한다. 미리 재워놓으면 잡내가 난다고 한다. 수록장 (053)767-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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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딱 하나, 묵은지 김치찌개

어느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치찌개 잘 끓이는 비법을 알려줄까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싫어하는 이가 드문 찌개의 비법이니 언제 끝나나 하던 사람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들린 소리는 “에이~”였다. 비법은 딱 하나다. 다 필요 없고 맛있는 김치로 끓이면 된다고 했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 김치보다는 다른 재료, 즉 조연에 더 신경을 쓴다. 돼지고기, 참치, 꽁치 등등 말이다. 부대찌개 또한 가만히 생각해보면 김치찌개에 햄을 넣은 것뿐이다. 육수나 부재료 자랑은 많이 해도 김치 자랑은 안 한다. 먹는 이 또한 신경 쓰지 않는다. 김치찌개에서 주인공은 김치다. 8개월에서 1년 숙성한 김치로 끓인 찌개를 먹어보면 바로 고개를 끄떡인다. 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도, 껍질 있는 오겹살이 들어 있어도 젓가락은 김치를 집는다. 맛있는 것에 대한 본능이다. 김치가 주연인 찌개에서 돼지고기는 조연일 뿐이다. 맛을 조금 더할 뿐이다. 여기에 어떤 것을 넣어도 변함이 없다. 김치가 맛있는 김치찌개다. 토속정 (053)614-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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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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