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라이프]by 경향신문

“정명석은 성범죄 머신…죗값 받게 하고 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JMS ‘저승사자’ 김도형 단국대 교수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와 첫 만남 후 사이비 확신…여성 수기 보고 다윗과 골리앗 싸움

여성 피해자들, 이성교제 꺼리고 자기파괴적 행동에 극단선택도

아버지는 피습…아내는 JMS와 가정 바꿨다며 이혼까지 생각

다큐로 여론 기울어…수사는 시작됐고 결말 멋있게 났으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공개된 후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씨(78)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뜨겁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상습적인 신도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씨 사건에 대해 “엄정한 형벌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메시아를 자처하는 정씨는 2018~2021년 2명의 여신도(홍콩 국적의 메이플, 호주 국적의 A씨)에 대한 성폭력(준강간, 강제추행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에 앞서 2009년에도 신도 성폭행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8년 2월 만기 출소했다.


종교의 가면을 쓰고 자행한 정씨의 성범죄가 세상에 폭로된 것은 한 사람의 집요하고 끈질긴 분투가 있어 가능했다. 김도형 단국대 수학과 교수(51)가 그 주인공이다. 카이스트에 재학 중이던 1995년부터 28년째 정씨를 추적하고 고발하고 언론에 제보했다. 반JMS 단체인 ‘엑소더스’ 회장으로 활동하며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메이플(28)을 비롯해 피해자들의 소송에도 발벗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학업이 지체되고, JMS 측의 쇠파이프 테러로 아버지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김 교수를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날 정씨를 상대로 새로 고소를 진행할 4명의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나는 신이다>는 메이플의 인터뷰로 시작해요. 메이플도 김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인가요.


“기독교 이단·사이비를 연구해온 바른미디어 조믿음 목사를 통해 2021년 늦가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메이플에게 ‘(정명석이 죗값을 받게 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돕겠지만 어설프게 할 것이면 하지 말라’고 말했어요. 메이플은 정명석을 고소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변호사를 선임해주고 지난해 3월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줬죠. 그리고 앞서 제게 도움을 요청한 조성현 PD(<나는 신이다> 연출)에게 메이플을 연결해줬습니다. 그러면서 당초 2편으로 제작하려던 JMS 편이 3편으로 늘었습니다.”


- JMS는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됐나요.


“1995년 3월이었어요. 당시 저는 카이스트 물리학과 4학년이었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던 저는 교회를 물색 중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교회에 다녔는데 대학이 대전에 있다 보니 예배에 가지 못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친구의 권유로 한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게 JMS였던 거죠. 그런데 교리가 이상했어요. 영상으로 틀어주는 정명석의 설교는 더 이상했고요. 정명석은 상스러운 말을 수시로 내뱉었어요. 그해 7월경 대전을 방문한 정명석을 직접 만나본 후 저는 JMS가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확신했어요.”


- 그러면 발을 떼면 되는 것 아닌가요.


“JMS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마음에 걸렸어요. JMS 전도사인 여자친구는 교리에 철저히 세뇌돼 설득이 잘 안 됐습니다. 그러던 중 정명석에게 성추행당한 여성의 폭로수기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여자친구 역시 아버지뻘 되는 정명석에게 수기에 나온 내용과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어요. 재림예수라고 사칭하며 수많은 여성을 유린하고 전국 대학을 순회하며 젊은 영혼들을 갉아먹는 정명석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 어떻게 했습니까.


“JMS 자료를 모아 언론에 제보하고 무작정 서울지검 특수부를 찾아가기도 했어요. 정명석을 상대로 상습 성추행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진정도 했고요. 1996년 4월경에는 JMS 부총재를 만나 정명석의 성범죄를 인정하는 발언을 녹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JMS 신도에게 속아 테이프를 빼앗겼죠. 그런데 저한테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던 피해자들이 경찰과 검찰, 언론에 직접 피해 사례를 말하는 것은 두려워했습니다. 언론 보도는 무산되고, 여자친구는 이별 통보를 했죠. 그 와중에 난생처음 C학점을 받았습니다.”


좌절한 그는 이때부터 JMS 교단 본부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밝히고 정명석을 대놓고 욕했다. 1998년 2월 정명석의 경호원은 그의 얼굴을 유리컵으로 가격했고, 그는 봉합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시 투지가 불붙었다.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JMS 측의 미행과 협박, 테러가 이어졌는데 두렵지 않았습니까.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두렵다고 그만둘 거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정씨의 성범죄가 지상파 3사 저녁뉴스에 대대적으로 처음 보도된 것은 1999년 1월 발생한 ‘황양 납치사건’이 계기였다. 정씨에게 성착취를 당하다 탈퇴한 황양을 JMS로 돌아오게 하려고 납치한 사건이다. 사건 직후 정씨는 홍콩으로 도주했고, 2007년 5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이듬해 2월 국내에 송환될 때까지 해외 도피생활을 하며 여러 건의 성범죄를 이어갔다.


- 정씨는 9년 가까이 해외 도피생활을 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보나요.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불성실했다고 봐야죠. (정명석을) 추적할 마음도 안 가졌고요.”


- 심지어 정씨 검거를 방해한 검사도 있었다고요.


“정명석은 황양 납치 사건이 잠잠해지자 2001년 2월 몰래 귀국했다가 자신이 출국금지된 사실을 알고 대만으로 도망쳤어요. 대전지검 특수부의 박모 검사가 JMS 대표로부터 신원보증을 받고 출국금지를 해제해준 겁니다. 정명석은 이후 대만, 말레이시아, 중국, 일본, 홍콩 등에서 호화생활을 하며 외국인 신도들을 상대로도 수많은 성범죄를 저질렀어요. 이는 대만과 일본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됐죠. 대전지검 박 검사가 출국금지 해제만 안 해줬어도 그가 해외에서 저지른 수많은 성범죄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 박 검사도 JMS 신도였나요.


“아닙니다. JMS가 대리인으로 내세운 변호인이 1999년 대전법조비리 사건을 수사하다 옷을 벗은 대전지검 차장검사 출신 이모 변호사였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의 요구로 정명석 관련 사건은 계속 대전지검으로 이송됐습니다. 박 검사가 당연히 지명수배 A 및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져야 할 정명석에게 고작 ‘지명통보’ 처분을 내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생각해요.”


- 2006년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에서 김 교수는 현직 서울북부지검 이모 검사와 국정원 윤모 직원의 실명을 폭로해 옷을 벗게 했어요. 수사기록 등 기밀자료를 빼내고 김 교수의 출입국기록을 불법 조회해 정명석을 도운 JMS 신도들이지요.


“해당 직원의 범죄 사실을 확인한 국정원은 채 4개월도 되지 않아 그를 해임했어요. 하지만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대단했습니다. 결국 이 검사도 면직처분됐지만, 그것은 당시 대검찰청 감찰부 감찰위원회가 사상 최초로 검찰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검사의 실명과 범죄 사실을 폭로한 후 JMS 측이 제게 건 고발 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이 난 사건에 대해서도 몇번이나 윗선으로부터 재기수사 명령이 내려졌으니까요. 이 검사는 검찰을 그만둔 후 JMS 변호사로 활동 중이에요.”


- JMS로부터 십수년간 여러 죄명으로, 여러 건의 형사고발을 당했지요. 결국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특수강도 혐의로도 재판을 받았고요. 변호사도 없이 이과생이 어떻게 법적 소송에 대처했습니까.


“법률책을 사서 혼자 공부했습니다. 저들은 정명석과 관련해 허구한날 저를 허위사실 적시로 고소했어요. 그러면 저는 그게 사실이고 공익을 위한 것이라며 증거를 대고 대응했죠. 그러면 대부분 무혐의 처분이 났어요.”


천신만고 끝에 2003년 그와 엑소더스 회원들은 홍콩에 머물던 정씨를 홍콩 이민국 직원들과 함께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씨는 10만홍콩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나온 후 중국으로 밀항했다. 직후 JMS 신도들은 보복 테러를 감행했다. 엑소더스 사무실에 난입해 김 교수를 무차별 폭행했다. 보름 후에는 홍콩 체포 과정에서 정씨에게 발길질을 한 엑소더스 회원 김형진씨를 쇠파이프로 가격했다. 사흘 뒤에는 김 교수의 아버지를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로 공격했다. 아버지는 왼쪽 얼굴뼈가 함몰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내가 안 맞았다면 아들이 맞지 않았겠느냐”며 “오히려 다행”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버지는 2022년 8월 투병 끝에 소천했다.


- 서울대 등 주로 명문대 졸업생들로 구성된 JMS 지도부는 왜 정씨의 성범죄에 눈감았을까요.


“그들도 공범이에요. 일부는 하나님이 정명석의 몸을 빌려 사랑을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을 테고, 일부는 자신이 속한 단체에 나쁜 이미지가 생기면 안 되니까 덮고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정명석이 추악한 성범죄를 저지르며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신도들이 많은가요.


“‘메시아가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정명석과 성관계를 한 영광을 가진 여성을 아내로 맞고 싶다고 말하는 남성 신도도 있고요. 자기 딸이 정명석에게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엄마도 있습니다. 딸이 보는 그 자리에서 정명석은 그 엄마도 성추행했어요. 엄마는 고교 시절부터 JMS에 다니며 정명석과 관계했고, 정명석이 출소한 후 피해를 입은 딸은 현재 JMS를 탈퇴한 상태예요.”


- 현재 JMS 신도 수는 얼마나 되나요.


“JMS가 1년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날이 316(정명석의 생일인 3월16일)이에요. 이날 신도들이 모여 충남 금산 월명동에서 큰 행사를 하는데 그걸 보면 최소 2만~3만명은 돼요. JMS는 공식적으로 10만명이라고 주장하죠. 과거에는 15만명이라고 주장했고요.”(김 교수는 배우 강지섭씨는 JMS를 탈퇴한 게 맞으니 더 이상 마녀사냥을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을 꼭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 해외 신도도 많습니까.


“현재 일본과 대만에 굉장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정명석이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해외에서는 계속 증가한 거죠. 2001년 대만, 2002년·2006년 일본 언론에서 정명석의 성범죄를 대서특필했음에도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생들이 십수년이 흐른 후 메이플처럼 피해자가 된 거예요.”


- 2018년 2월 정명석이 출소하면 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거라고 예상했나요.


“2018년 1월 저는 연구년을 맞아 가족을 동반해 미국에서 머물다가 1년 만에 귀국했어요. 그러고 바로 두세 달 만에 정명석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났습니다. 놀라지 않았어요. 정명석은 감옥에 갇혀 있던 시간 빼고는 단 하루도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날이 없을 테니까요. 그 자는 성범죄 머신이에요.”


- 트라우마 등 후유증을 겪는 피해자들이 많습니까.


“재림예수라고 믿었던 자가 성범죄자일 뿐임을 알게 됐으니,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경우가 많아요. 이성 교제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기파괴적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대 졸업생인데 어차피 망가진 인생이라며 술집 접대부로 일한 여성도 있으니까요. 정명석은 신도들 앞에서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했다가 정작 수사와 재판을 받을 때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했어요. 이에 충격을 받은 JMS의 한 여성 목사는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 그가 뛰어내린 방에는 정명석 사진이 담긴 액자가 산산조각 나 있었죠.”


그는 1990년 경기과학고를 2년 만에 수료한 수재다. 같은 해 카이스트 물리학과에 입학했고 복수전공으로 수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정명석을 쫓느라 대학 4학년 때 필수 물리과목을 수강하지 못했다. 대학원에서 전공을 수학으로 바꿨다. 박사학위 취득도 지연됐다. 7년 만인 2005년에야 이학 박사학위(로렌츠 기하학 전공)를 땄다. 목원대, 카이스트 강사를 거쳐 2007년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 2008년 서울대, 2009년 경희대 연구교수를 거쳐 2011년 단국대 수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정씨가 체포돼 한국으로 이송된 2008년 결혼해 슬하에 남매가 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해 1월 JMS 총재 정명석씨와 전쟁을 치른 기록인 <잊혀진 계절: 어느 교수의 전쟁> I, II를 출간했지요. 출간 목적이 뭔가요.


“JMS 실체를 알리려는 목적이 커요. 그리고 책이 잘 팔리면 피해자들의 소송비 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마이너스입니다(웃음).”


- 피해자들의 소송비용이나 교통비 등도 김 교수의 사비로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부인은 흔쾌히 동의한 건가요.


“메이플과 호주 피해자를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한 후 마이너스통장을 만드는 것은 아내가 용인해줬어요. 책 출간도 제 과거니까 양보한다고 했고요. 하지만 가족을 생각해 기자회견장에는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위험하다고요. 약속했지만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제가 가정과 JMS를 바꿨다며 이혼까지 생각했어요. 저는 이후 한 달간 여관방을 전전했고요. 다행히 저를 용서해줬고 지금은 몸조심하라는 얘기만 합니다.”


- JMS와 정씨를 상대로 싸운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아버지가 저로 인해 테러를 당하시고 한동안 후회했습니다. 박사학위 취득도 늦어지는 등 제 인생도 너무 꼬였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단계가 됐습니다. 정명석 네가 감옥에 가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는 끝장을 내야 끝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언제까지 싸울 생각인가요.


“정명석이 다시는 철창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공범들도 다 처벌받게 하는 게 꿈이었어요. 감히 엄두를 못 냈는데 이번에 넷플릭스 다큐로 여론이 급격히 기울면서 수사기관이 의지를 갖고 수사하고 있어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제 시작은 됐고 결말도 멋지게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JMS 정명석 문제가 하루속히 마무리되고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생은 (JMS 정명석 총재로 인해) 망했지만 그래도 죽는 날까지는 열심히 살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학자로서 학문적 성취도 이루고 싶다”고 했다.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khan
채널명
경향신문
소개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다,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