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첫 옥중 인터뷰 “대법원도 실체없다 한 ‘RO’는 국정원 작명…황교안은 역사 두려워해야”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이석기 첫 옥중 인터뷰
[경향신문]
2013년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돼 대법원에서 내란음모 무죄,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수원구치소 접견실에서 지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전 의원은 6년째 이 구치소의 1평 남짓 독방에서 생활해왔다. 촬영 시기가 불분명한 이 접견 사진은 익명의 한 시민이 제공했다. |
2013년 ‘내란음모 사건’ 투옥 후
1평짜리 독방서 6년째 수감 생활
“하지도 않은 숱한 말, 내 말로 둔갑
이달 안에 조작사건 재심 청구”
새벽부터 함박눈이 내리던 지난 15일, 수원구치소로 향했다. 1평 남짓 독방에 6년째 수감되어 있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57·사진)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 전 의원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접견실에 나타났다. 건강이 나빠졌는지 얼굴과 몸은 다소 부어 보였다. 재소자와 접견인 사이를 차단하는 투명 가림판 탓에 목소리는 작게 들렸지만 그는 손동작을 크게 하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전 의원이 2013년 8월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긴급체포된 후 옥중에서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은 2015년 1월22일 이 전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무죄,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유죄 확정판결을 하며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보다 한 달 앞선 2014년 12월19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 6명은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결정했다.
지난해 5월 반전이 일어났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 ‘박근혜 청와대’에 협조한 사례 중 내란음모 사건이 첫 번째 줄에 적시됐고, 통합진보당 사건의 재판부 배당을 조작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 전 의원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이달 안에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도 않은 수많은 말들이 나의 발언으로 둔갑했고 ‘RO’라는 지하혁명조직도 언론에 보도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사실이 아님이 입증됐다”며 “내란음모 조작사건은 박근혜 정권, 양승태 사법부, 부역한 언론이 있어 가능했던 사건임에도 90분 강연으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고 했다.
그는 “재심은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바로잡는 것이고, 통진당 10만 당원의 명예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통합진보당 재건은 생각해본 적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게 평소 나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허락된 구치소 접견 시간은 단 10분. 못다 한 수많은 질문과 답은 서면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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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둔 이들이 더 80년대 이념에 갇혀…진실 밝혀져야 상처 아문다”
1평 독방에서 일과시간엔 절대 눕지 않고 명상과 운동
3·1절 특사 배제, 문 정부의 처지 이해하지만 아쉬워
통진당 해산은 우리 민주주의의 커다란 흉터로 남을 것
- 건강은 어떤가요.
“하하하… 제가 원래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감기약도 먹어본 적 없을 만큼 굉장히 건강했던 사람이거든요. 운동을, 특히 등산을 좋아했고요. 그런데 갇힌 지 만 4년 접어들면서부터 없던 병이 생겼어요. 고혈압약을 먹고 있습니다. 운동이 제한된 채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양 무릎도 상했어요. 요가를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자세를 취할 수가 없어요.”
- 그러면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나요.
“궁즉통(窮則通·궁하면 통함)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비록 아이들 놀이방 크기의 마름모꼴 공간이지만 하루 1시간 정도 뛰고, 푸시업도 한 번에 105번씩 2세트를 매일 합니다. 이곳은 아파트형 교정시설이라 실외 운동장이 없어요. 바닥과 사방이 콘크리트로만 돼 있어 흙을 밟을 기회조차 없죠.”
- 6년째 1평 남짓 독방에서 지내왔는데, 적응이 좀 됐나요.
“수처작주(隨處作主·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됨)라고, 비록 갇혀 있지만 생활 자체는 주인답게 만들어가겠다고 처음에 들어올 때 다짐했는데요. 실은 아직도 옥중생활하는 게 어렵습니다. 6년이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 같이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이, 하루를 어떻게 보냅니까.
“스스로 엄격하게 생활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예를 들면 ‘취침시간 이외에는 눕지 않는다’는 식이죠. 6년 동안 일과시간에는 한 번도 눕지 않았어요. 공식 일과는 오전 6시30분에 시작인데, 1시간 먼저 기상해 아침명상을 합니다. 아침 먹고 오전에는 주로 글을 쓰고, 운동시간에는 열심히 뛰어요. 점심식사 후 설거지하고, 오후에는 4개의 신문을 읽거나 독서를 해요. 접견 오신 분이 있으면 만나고요. TV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저녁 7시 뉴스는 꼭 챙겨 봅니다. 이후엔 편지 읽고 글을 쓰거나 책을 본 뒤 명상을 하고 자죠. 토론을 즐기던 사람인데 못해 아쉽습니다만, 이곳 나름의 소소한 행복도 있어요.”
- 어떤 행복을 말하는 건가요.
“신문지 절반 크기지만 감옥 창으로 들어오는 빛나는 아침햇살을 맞이하거나, 가끔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거나, 점심시간 지나서 스피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거나, 정성을 담은 손편지를 읽거나 할 때 온전히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 법무부의 3·1절 100주년 특별사면 검토 대상에서 이석기 의원이 배제됐다는 보도가 나와요.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는 취지는 적극 공감하지만 박근혜 정권과 맞서 싸우다가 부당하게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는 것은 사면권 존재 이유와 연결되는 문제예요.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국민이 부여해준 권한이라고 생각하죠. 이번 3·1절 특사에 정치인 배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직업을 이유로 배제한 사례가 과거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문재인 정부의 첫 특별사면 때도 빠졌습니다. 문 정부가 왜 이 의원을 석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촛불혁명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박근혜 정부로부터 탄압받았던 이들에게 자유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저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물론 우리 사회에는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야당이나 반대세력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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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에 깊숙이 연루된 의혹이 제기돼왔다. 김 전 실장이 2013년 8월5일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취임한 뒤 한 달 만에 이른바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iganizaion) 사건’, 즉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다. 당시는 경찰이 은폐하려 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이 터져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확산되던 때였다. 정권은 위기에 처했다.
- 구속된 김 전 실장과 양 전 대법원장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요.
“사필귀정이죠. 김기춘씨는 ‘법비’(법을 악용해 이익을 취하는 무리들)이면서도 국정농단 연출자, 내란조작과 통진당 강제해산의 기획자니까요.”
- 양승태 대법원 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 청와대에 협조한 사례 중 ‘자유민주주의 수호 판결’로 이석기 사건을 첫번째로 적시했어요. 통합진보당 의원 소송에서 재판부 배당을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고요. 짐작했던 일인가요.
“아니요. 솔직히 저는 사건이 터진 후 금방 진실이 밝혀질 줄 알았어요. 당시만 해도 제가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와 ‘독립적 법원에 의해 지켜지는 인간의 기본권’이 합쳐진 개념이라면, 대법원이 청와대와 협조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거예요.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걸 보면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 하지만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 행정처가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행정소송에는 개입했다고 봤지만, 이 전 의원 형사재판에는 개입했다고 판단하지 않았어요. 문건 외에는 이렇다 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죠.
“내란음모 사건의 항소심 재판장이 이민걸 판사였어요. ‘양승태의 복심’으로 불리고 이미 대법원 징계처분을 받은 후 법관 탄핵 1순위에 올라 있지요. 양 전 대법원장은 행정처 사법정책실장으로 근무하던 그를 서울고법으로 인사이동시켰고, 그가 맡은 첫 번째 사건이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입니다. 이 판사는 이듬해 행정처 기조실장으로 복귀해 통합진보당 사건의 재판부 배당조작을 지시한 당사자로 지목돼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지요. 이게 우연일까요?”
이 전 의원 구속 후 김기춘 전 실장이 청와대 회의에서 이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관련 지시를 지속적으로 했음이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고인이 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 수첩에서 드러났다. 이 전 의원은 “내란음모 사건 ‘배당조작’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고 들었다”며 말을 이었다.
“양승태의 국정운영 협조사례 첫 번째도, 박근혜와 황교안이 최고 치적으로 꼽는 첫 번째도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이에요. 두 사건은 사실상 하나예요. 통진당 강제해산 청구의 근거가 ‘RO’였습니다. 실체도 없다고 판명난 ‘RO가 내란음모를 했다’는 것인데, 청와대와 대법원 간 상호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 황교안 전 총리와도 악연입니다. 2013년 말 박근혜 정부를 대리해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고 직접 변론에 나선 이가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니까요. 지금 자유한국당 대표로 출마해 범보수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입니다.
“황교안씨는 전형적인 1980년대 공안검사로서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흑백논리에 갇혀 있는 이념형 인간이에요. 그런 분이 장관과 총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죠.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이 탄핵됐으면 자신도 당연히 정치적으로 탄핵된 것이니, 정치적 책임을 지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지요. 어떤 면에선 의리를 다하는 모습이 보수의 가치일 테니까요. 그런데도 지금과 같이 반성도 없이 나오는 것 자체가 희극입니다.”
황 전 총리는 2013년 당시 변론에서 통합진보당이 “현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주장은 헌법재판소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황 전 총리는 정치 입문 후에도 이 생각이 변함없음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 황 전 총리가 통합진보당을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정당’이라고 한 데 대해 반론이 있습니까.
“반론할 가치도 없는 억지 주장입니다. 광주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분들을 최근 신문에서 접했는데, 이들의 사고와 황교안씨 사고는 사실 같아요. 무슨 일이건 북한과 연결해야 편해지는 것이겠죠. 이런 주장은 가짜뉴스가 아니라 미신이거나 피해망상에 가까워요. 더 큰 문제는 이걸 칼로 바꿔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압하려는 겁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우리 민주주의의 커다란 흉터로 남을 거예요. 황교안씨에게 역사를 두려워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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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검찰·양승태 사법부·부역언론이 내란음모 조작
90분 강연 녹취록 하나로 9년 선고 받아…10분에 1년인 셈
분단이 남긴 그늘은 남에도 북에도 있어…중요한 건 평화
더 많이 소통 못한 것 후회…재심 통해 진실 꼭 밝힐 것
적지 않은 시민들은 이 사건 초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지하혁명조직 RO’ 관련 선정적 내용만 기억할 뿐, 이후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판단되고 결론났는지 모른다. 국정원은 2013년 5월12일 130여명이 참석한 RO회합에서 이 전 의원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조직적으로 통신·유류·철도·가스 등 주요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는 행위와 선전전, 정보전 등을 벌이자” 등의 발언을 했다며 내란음모 혐의로 고발했다. 언론은 국정원과 검찰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검증 없이 실시간으로 옮겨썼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RO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5월12일 모임도 정당의 통상적인 강연회로 봤다.
- 국정원과 검찰이 ‘RO회합’이라고 한 5월12일 모임은 어떻게 이뤄진 겁니까.
“한반도 정세 변화와 관련해 경기도당 관계자들이 저를 초청하여 정세 강연을 듣는 자리였습니다. 2013년 3월은 북·미 간 전쟁 가능성이 거론되며 한반도 정세가 최고조로 긴장되던 때였고, 4월부터 정세는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요. 4월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저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제안했는데, 그 취지에 입각해서 5월 강연을 한 겁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유사시 혜화전화국 습격” 발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때 소환, 잔인함 느꼈다
- 그날 이 의원이 “주요 국가기간시설 파괴” “총기 준비 지시” “KT 혜화전화국 습격” 등을 발언하고 논의했나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고 대법원도 그런 사실을 인정한 바 없습니다.”
이 전 의원이 총기 준비를 지시했다는 것은 법정에서 녹음파일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기간시설 타격 사전 준비’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역시 큰 논란을 빚은 KT 혜화지사 습격 목표 발언은 남부권역 분반토론에 참여한 한 당원의 돌출적인 발언이고, 분반토론 녹음파일 전체를 들어보면 참석자들이 분명하게 이견을 표시한 대목도 법정에서 확인됐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이 전쟁 발발에 대비해 “물질·기술적 준비”를 하라며 기간시설 파괴를 선동한 것은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한 내란선동”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어떤 발언이 9년형을 받을 만한 범죄행위인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 대법원에서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RO’는 그럼 어디에서 나온 이름인가요.
“저도 사건이 일어나고 처음 들었어요. 국정원의 작명입니다. 1970~80년대 공안사건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국정원 수사관들이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의 자택·의원실 등 18곳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인 것은 2013년 8월28일이다. 이튿날 국정원은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 전 의원 등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았다. 9월4일 국회는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 처리했다.
- 국정원의 압수수색 소식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놀랐습니다. ‘내란’이라는 단어 자체가 머릿속에 없었으니까요. 내란이라니 도대체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국정원은 5·12 강연 참석자 중 한 명인 ㄱ씨에 대한 내사를 2010년부터 벌였다고 하던데요.
“당시 발부된 각종 감청영장에 의하면 국정원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어요. 김기춘 비서실장이 취임한 8월이 돼서야 제게로 표적이 맞춰졌음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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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 체포동의안에 대해 재석의원 289명 중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으로 찬성이 압도적이었어요. 당시 야당 의원들도 찬성표를 많이 던졌습니다.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수는 6명이었는데, 그때의 얼어붙은 분위기로 보면 의외로 많은 의원들이 반대·무효·기권표를 행사했다고 생각합니다. 표결하고 불과 몇 시간 후 국회에서 구인장이 집행됐는데,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죠. 내란음모가 조작이라고 확신하는 저로서는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거짓이 엄청난 물리적 힘을 갖고 있어서 강해 보이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역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건 초기, 수사당국을 출처로 하여 일부 언론에는 ‘밀입국’ ‘북한 공작원과 해외 접촉’ ‘북한 공작원과 통화와 e메일’ ‘북한 잠수함 지원 방안 논의’ 등 보도가 잇따랐다. 그러다 이 전 의원 긴급체포동의안이 가결된 후에는 더 이상 북한 연계설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RO 조직원 PC에 폭탄제조법이 있었다’거나 ‘RO 조직원들은 가입 선서를 하면서 우리의 우두머리가 누구냐는 질문에 비서 동지(김정일)라고 답했다’는 식의 보도들이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폭탄제조법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의학(230권)이라는 제목의 ‘건강상식’ 파일 중 ‘니트로글리세린’(심장병 치료 약물)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것이라고 공판 과정에서 소명됐고, 나머지 보도들은 재판에서 사실임이 입증되지 않았다.
- 사건 초기 왜 언론에 출처가 불분명한 북한과의 연계설이 나왔다고 생각하나요.
“당시 내란음모 사건은 국정원과 검찰이 조직적으로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포하면서 재판도 시작되기 전 이미 마녀사냥식 여론 재판이 끝나 있었어요. 북한과의 연계설 역시 국정원과 검찰이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렸을 걸로 확신합니다. 검찰은 수사 발표 때까지만 해도 ‘북한과의 연계를 계속 수사 중’이라고 하더니 정작 재판정에 와서는 ‘북한과의 연계가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궤변을 쏟아냈습니다. 수사당국이 낡은 칼을 쓰는 것은 여전했어요. 80년대 같았으면 고문이나 증거조작으로 뭔가 만들어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니,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가 슬그머니 뒤로 치웠으리라 생각합니다.”
- 당시 조선일보는 공안당국 관계자의 말을 빌려 “RO 조직원들은 이 의원을 ‘수(首·수령)’라고 불렀는데, ‘수께서 말씀하셨다’ ‘수는 어디 계시느냐’는 식으로 깍듯이 모셨다”며 “이 의원을 ‘남한의 수령’이라고 여겼고 보위팀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어요.
“프락치 혹은 국정원 정보원이라고 하는 사람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고 의도적인 이미지 조작 프레임이죠. 그마저도 검찰에서 한 진술도, 심지어 법정에 나와서 한 진술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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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강연 녹취록 하나가 증거가 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검찰 녹취록은 원래 강연에서 한 발언과 상당수 다르게 왜곡됐다. “전면전은 안된다”가 “전면전이야 전면전!”으로, “선전 수행”이 “성전 수행”으로, “구체적으로 준비하자”가 “전쟁을 준비하자”로 바뀌었다. 언론은 검찰의 왜곡된 녹취록을 그대로 받아썼다. 결국 검찰 녹취록은 1심에서 450여곳, 2심에서 400여곳이 수정됐다.
- 왜곡된 녹취록이 보도되는 걸 보며 어떤 심경이었습니까.
“국정원, 검찰뿐 아니라 그 녹취록을 게재한 언론사의 의도적 왜곡이라고 생각했어요. 심지어 보도한 기자는 그해 기자상을 받기도 했지요.”
- 지난해 11월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가 났을 때 일부 언론과 자유한국당은 이 의원을 다시 소환했습니다.
“잔인하다고 느꼈어요. 한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6년 동안 감옥에 가두고도 그걸로 부족한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내란음모는 무죄를 받았지만,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를 받아 징역 9년이 선고됐어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인데 견해가 다르다고 입을 막고 신체를 가두는 야만적 일이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참담했습니다. ‘90분 강연에 9년 선고받아서, 10분에 1년씩 받았다’는 웃픈 얘기도 있었지요. 세 사람이 주장하면 호랑이도 만들어낸다고 하잖아요.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권, 양승태 사법부, 부역한 언론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은 종북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종북이라는 말은 도깨비 같은 것”이라며 “누군가가 실체 없는 도깨비 형상을 만들어서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 북한을 추종하지 않는다는 얘기인가요.
“운동권 사람들은 자주를 생명으로 생각해요. 종북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욕을 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대단한 침해입니다.”
- 사상의 자유는 논외로 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는 아닙니까.
“사람이 어떤 사상을 ‘절대화’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도 그렇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여러 이념체계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현실이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창조적 노력이에요. 어떤 특정 이념만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제가 가장 중시해온 것은 실사구시적 태도이지, 어떤 이념이 아닙니다.”
- 이 의원이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주체사상을 철저히 공부하라”고 했다는 2013년 9월 보도는 어떻게 나온 얘기인가요.
“저는 아들에게 주체사상을 공부하라고 한 적 없어요. 언론과 공안기관이 만든 소설입니다”
- 하지만 이 의원은 조선일보와 TV조선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해 10월 패소했어요. 재판부는 이들 매체의 보도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이 의원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어요.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니 최종적인 결과를 지켜보고 있어요. 명백한 허위보도들이 많았던 만큼 응당한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 1999년 민혁당 사건으로 2년6월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품었던 사상을 2013년에도 그대로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대학을 다녔던 80년대는 온갖 이념과 주의들이 거침없이 토론되던 때였어요. 그런 분위기가 저는 무척 좋았고, 지금도 아름답게 생각합니다. 저는 절대화된 이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실이 바뀌면 사람의 생각은 바뀌기 마련이고 생각이 바뀌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도 바뀌죠. 오히려 저를 감옥에 가둔 자들, 박근혜 정부나 당시의 공안검찰이야말로 8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봐야 해요. 진부한 인용일 수 있지만 ‘모든 이론은 회색일 뿐,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아직도 장노년층에 많이 남아 있는 ‘레드콤플렉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분단체제가 남긴 그늘은 남에도 있고, 북에도 있습니다. 공포의 정치와 혐오의 정치. 저들이 작동시킨 건 이 두 가지였어요. 이제 민족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지만 낡은 것과 새것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지요.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법·제도적 개선도 필수적입니다만 마음속의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과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또한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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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후 국제앰네스티는 연례 인권 보고서에서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 사건으로 규정했다. 미국 국무부도 연례 인권 보고서를 통해 세계 인권선언이나 주요 인권협약을 위반하는 ‘자의적 체포, 구금’이라고 했다. 6대 종교 지도자부터 인권운동가, 법조인, 해외 정치인들도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해왔다.
- 해외 유명 인사들의 접견 신청도 꽤 있었다고요.
“미셸 초수도프스키 교수(<빈곤의 세계화> 저자)는 두 차례나 저를 접견했습니다. 최근 저서에서 저를 ‘옥중에 있는 동지’로 소개하며 헌정사를 실으셨죠. 노동자 출신으로 독일 연방 3선 의원(좌파당)인 잉에 회거와의 2차례에 걸친 접견도 기억납니다. 가장 최근에는 미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격인 제시 잭슨 목사와도 뜻깊은 만남을 가졌고요. 탄원서를 써준 촘스키 교수에게는 감사 인사를 나중에 꼭 전하고 싶습니다.”
- 그러나 국민들은 여전히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해 체제를 전복하려 했던 자, 체제전복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촛불 이후를 돌아보면 더디지만 과거의 매듭이 하나씩 풀려가고 있어요. 저 개인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이란 매듭도 올해에는 풀려야 하지 않을까 소망하죠. 더디지만 진실이 드러난 순간 허위의 장벽은 물먹은 담벼락처럼 허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통진당 재건 생각해본 적 없다”
- 이달 안에 이 의원 등이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다고요.
“감춰진 것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에요. 정치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사면복권이라면 법리적으로 바로잡는 과정으로서 재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만약 재심 개시가 이뤄지면 이를 근거로 헌법재판소 위헌정당해산 결정에 대한 재심도 가능할 텐데요. 다시 통진당을 재건할 생각도 있는 건가요.
“재심은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바로잡는 거예요. 통진당 10만 당원의 명예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통합진보당은 당시 진보정당의 본류였어요. 다른 한편에서는 진실규명을 통한 명예회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재건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게 평소 저의 생각이니까요.”
-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났습니다.
“내란음모 조작사건과 정당해산이 시작될 때 박 전 대통령이 임기를 채울 수 없으리라 생각했어요. 유신회귀 전조로 보았거든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었다고 할까요?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낡은 생각을 지키려다 보니 국민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것이겠지요.”
- 2013년 4월 국회에서 평화협정과 종전선언을 주장했는데, 남북 정상의 판문점 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개벽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반도를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었던 냉전과 갈등의 구조가 무너지는 장면이었죠. TV를 보면서 제가 어디에서 그 화면을 보고 있는지 잊을 정도였으니까요.”
- 북한 핵의 완전한 제거와 상응조치를 두고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어요.
“미국이 원하는 것과 북한이 원하는 걸 바꾸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어요. 북·미 모두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지렛대를 사용하겠지만 결국 해법은 쌍방의 우려와 이익을 바꾸는 겁니다. 확실한 건 김정은 위원장이 변화를 선택했고 그것이 남북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점이죠.”
- 트럼프는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까.
“역사를 보면 좋은 사람이 늘 좋은 결과를 만들고, 나쁜 사람이 늘 나쁜 결과를 만드는 건 아닙니다. 최소한 한반도 문제에서 트럼프는 아주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마음에 썩 들지 않더라도 현실을 존중하는 게 더 낫죠.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보수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끌려다닌다는 공격도 자주 합니다.
“남측이 북측에 비해 갖고 있는 지렛대가 훨씬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도 끌려다닐 이유가 없죠. 그런 우려는 이 사회의 보수층이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피해망상 같은 것이 아닐까요?”
-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3월 말, 4월 초에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북·미 2차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시기는 유동적일 수 있겠으나 김 위원장 방남은 실현될 것으로 봅니다. 분단의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민족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의 대전환기가 될 거예요.”
-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은 뭔가요.
“궁즉통, 통즉변이라는 말도 있는데, 더 많이 더 잘 소통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어요.”
이 전 의원은 오래전부터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암 블레이크의 시 ‘지옥의 격언 초’를 즐겨 암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리석은 자가 그의 어리석음을 고집하면 지혜로워진다’ 등의 격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유를 묻자 “이 시는 ‘미치광이가 세상을 바꾼다’는 애플 광고의 원조격이자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과도 겹친다”며 “진보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주연 오피니언팀장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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