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코로나 이후…과거 이루지 못한 개혁을 감행할 시간"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7인의 석학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 에필로그
‘코로나19의 시대’를 다각도로 조망하는 ‘7인의 석학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인터뷰가 막을 내린다. 마지막 회인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의 ‘에필로그’는 코로나19가 만든 세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에 들어간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의 고언을 담았다. 하라리 교수는 현재 모든 인터뷰를 중단하고 연구에 들어갔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 대한 짧은 답글에서 “우리가 역사적인 웜홀에 들어섰다”면서 “불의한 (세계의)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유발 하라리 홈페이지 |
21세기 역병의 창궐을 맞으며
7인의 석학과 함께 생각해봤다
생태계 파괴가 부른 문명의 위기와
개발·이윤 중심의 경제 위기에서
그린뉴딜과 지역 중심 세계화를
‘7인의 석학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때는 3월 하순이다. 세계 곳곳에서 번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의 불길을 차단하고자 거의 모든 대륙에서 봉쇄를 선언했다. 바이러스 위기는 경제위기로 치닫고, 혐오는 윤리위기로까지 번져갔으며 정치 지도력은 시험대에 올려졌다. 허둥거리는 정책, 갈팡거리는 방역 속에서 ‘왜 우리는 21세기에 역병의 창궐을 맞이했는가’ 하는 질문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원인 규명과 동시에 떠오른 인물이 제러미 리프킨과 반다나 시바였다.
2014년 인터뷰에서 리프킨은 기후변화로 지구 물순환이 바뀌고 생태계 교란으로 나아가기에, 인간 문명은 빈번한 재앙을 맞을 것이라 경고했다. 반다나 시바 역시 2017년 인터뷰에서 지구 생물의 3분의 1이 사라진 오늘, 인간은 지구의 몸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권력에 상관없이 평등한 고통을 경험하는 지독한 시간을 겪을 수 있음을 알렸다. 리프킨은 코로나19를 가리켜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된 모든 생물이 대대적인 이주를 하고 있는 증거라고 했다. 바이러스 또한 동물의 몸을 타고 인간에게 왔다는 설명이다. 반다나 시바 역시 지난 30년 동안 300여개의 전염병이 숲에서 나왔다는, 거부할 수 없는 과학적 진실을 지적했다. 생태계 파괴가 부른 인간 문명의 위기다. 바로 개발과 이윤으로 치닫는 경제 질서가 초래한 위기며, 이 질서를 뒷받침하는 화석연료 문명의 부작용인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는 경제를 폭풍처럼 뒤흔들어 놓았다. 새로운 경제 질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부상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럽과 중국의 중앙정부를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에서 구체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은 그린뉴딜을 우리의 정책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여겼다. 리프킨과 인터뷰를 한 또 다른 이유였고, 그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 인프라 건설 방안인 3차 산업혁명을 역설했다.
그 속에서 위기 대응에 취약한 세계화 경제 구조가 지역 중심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역 중심 세계화(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다. 식량위기까지 가늠해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한 농업경제학자 원톄쥔 역시 지역화 중심 경제를 제시했다. 리프킨과는 차별되는, 자본과 노동, 자원이 대륙 안에서 통합되는 지역 중심 세계화로 북미, 유럽,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축이 되는 삼각형 경제 구도로의 전환이다. 그리고 여기에 반다나 시바는 지속 가능한 정치 개념으로 지구민주주의를 제시한다. 모든 생명이 살아갈 권리를 확보하고 공동체 스스로 결정하는 생태 중심 정치체제이다.
‘뉴 노멀’의 시대엔 답이 없다지만
불평등이 정상이 된 사회를 바꾸고
모두의 건강을 위한 보건을 하려면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문제를 중심으로 외부에서 밀려드는 압력을 함께 보고자 했다. 장하준 교수는 같은 압박 속에서도 복지가 잘된 나라의 고통 총량이 다르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수많은 묵은 의제들이 정책 테이블에 올려진 지금이 신자유주의가 문화가 되어버려 모두의 사고가 자본 중심으로 자리 잡힌, 불평등이 노멀(정상)이 된 사회를 치료할 기회임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는 이 사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선명히 드러내주었음을 알렸다. 바로 사회가 돌아가도록 최전선에서 저임금으로 노동하는 이들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모든 사람이 기본권을 누리며 굶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 태어난 계급이나 성별·지역에 상관없이 노력으로 올라가는 부분을 최대한 보장하는 제도를 세우는 것이다.
위기 대응 속에서 논쟁으로 부상한 개인의 자유와 공공 안전 사이의 균형, 그리고 물리적 위협으로 작동하는 혐오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찾았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말했다. “모두가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의 기본을 보장받는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다. 두려움이 줄면 혐오도 줄어든다.” 우리는 취약할 때, 그 탓을 타인에게 돌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자는 요구는 공공보건 전문가인 케이트 피켓 역시 강조한 부분이다. 그는 우리가 시행해야 할 공공보건 정책의 핵심은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것임을 알렸다. 지금 바이러스에 대해 밝혀진 단 하나의 진실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취약하다는 점,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앓는 질환들이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치사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병원은 오직 치료를 하는 곳일 뿐이라는 점을 인지시켰다. 공공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코로나19로 모든 의제가 수렴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존재하는 또 다른 대재앙을 부를 위험요소로 시선을 확장하고자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 소장인 닉 보스트롬 교수를 찾았다. 그는 핵무기, 기후변화 그리고 이윤추구로 가속화하는 과학 연구 속에 대재앙을 부를 실체적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을 제시했다. 그러하기에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지구적 조절 능력을 키우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 노멀’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무엇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팽배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광야에서 버선발로 달려와 우리를 구원할 초인도, 벼락같이 내리꽂히는 번영의 새 질서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과연 오늘 인류가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 모든 사건들로부터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에 대한 답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에게 들었다. 기획 초기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인간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해왔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해석해온 그이기에 10여개의 문항을 담아 연락했다. 그는 5월부터 모든 언론 인터뷰를 중지하고 연구에 들어간다고 밝히며, 보낸 질문과 관련된 짧은 답을 보내왔다. 3월24일 코로나19 속에서 작성한 글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조언처럼
기본소득·온라인 시스템 전환 등
실험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경제 구조가 변화한다는 것
어쩌면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이미 우리 안에 도래해 있다
“코비드19(코로나19) 위기는 우리 시대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모든 순간을 낚아채 정의하듯 결정적으로 만들고 있어요. 역사는 가속도가 붙어 질주합니다.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비드19 이후의 세상은 어떠할 것인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해졌습니다. 확실성은 이제 바닥을 쳤어요. 선택의 자유는 최고치에 다달았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완전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것들이 갑자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십억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실험을 강요받고 있으며, 날것의 제안들이 권력의 회랑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근무하는 대학교에서는 몇 개의 온라인 과정을 개설하는 안건에 대해 수년간 토론해 왔는데요. 하지만 많은 문제점과 반대가 있어 대학에서는 이를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열흘 전 이스라엘 정부는 모든 대학교 캠퍼스를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단 일주일 안에 우리 대학교는 모든 과목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어제 저는 세 과목을 온라인으로 수업했어요. 꽤 잘 운영되었습니다. 이 위기가 지나가도 저는 우리 대학이 보름 전 상태로 돌아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로,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정치인 대부분은 이를 이상주의자의 순진함이라고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소규모로 실험해보자는 제안조차 물리쳤습니다. 지금은 심지어 강경한 보수주의 정부인 미국마저 모든 미국 시민에게 위기 기간 동안 기본소득을 지급합니다. 실험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곧 배울 겁니다. 바로 온 세상의 사회·경제 구조가 영구히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요.
저는 이 실험들 가운데 무엇이 성공할 것이며, 정확히 어떤 영향력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대신, 저는 우리가 역사적인 웜홀(wormhole·우주 공간에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하는 가상의 개념으로, 시공간의 다른 지점을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구멍을 뜻한다)에 들어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정상적인 법칙들은 중단됐어요. 몇 주 만에 불가능이 평범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편으로 이는 우리가 반드시 더욱 조심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폭군들이 민주주의 안에서 권력에 다다르고, 그리하여 디스토피아가 도래해 우리를 짓누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꿈을 갖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이는 한참 전에 해야 했던 개혁들을 감행할 수 있는 시간이며, 불의한 구조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올해 말이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살 겁니다. 저는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답변을 받고 3년 전 타계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이 떠올랐다. 2014년 인터뷰에서 그는 그람시의 말을 인용하며, “왕은 죽었고, 새 왕은 오지 않았다”며 빠른 세상 흐름 속에서 불안에 휩싸인 우리가 사는 시간을 ‘인터레그넘(interregnum), 궐위의 시간’이라고 했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궐위의 시간을 맞이했다. 그 시간들 가운데는 역사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던 파괴의 순간, 혹은 변혁의 순간이 있었다. 어떤 시간 속에서 역사는 진전했고, 어떤 시간 속에서 역사는 퇴행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맞은 아직 쓰이지 않은 이 시간도 숱하게 흘려보낸 과거의 ‘궐위의 시간들’ 위에 있는 것일 수 있다. 반복하여 놓쳐버린 새로 쓰여질 역사가 될 기회이다.
나는 역사를 밀고 가는 주인공은 무수한 개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수많은 개인이 선택한 집합 속에 내일 우리가 살아갈 밑그림이 펼쳐지고 있다고 여긴다. 내일은 오늘의 생각과 선택 속에 이미 와 있다. 그러니 우리의 미래는 여기 우리의 치열함 속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행운을!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이미 우리 안에 도래해 있다.
<시리즈 끝>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