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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경향신문

‘얼음 맛집’ 캠핑장 안 마시면 섭하지 제철 과일 칵테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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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캠핑장에 도착하면 일단 3㎏짜리 돌얼음 한 봉지를 사 와야 한다. 수분 공급에서 안전한 식재료 관리까지 모두 얼음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촤르르르르. 여름날에 캠핑을 떠나면 이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바로 물을 시원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워터저그에 막 사 온 얼음을 붓는 소리다. 투명하고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시원한 냉기를 뿜어내며 저그로 와장창 떨어지는 소리가 얼마나 청량하고 반가운지, 캠핑 초반에는 얼음을 부을 때마다 카메라로 영상을 찍기도 했다. 더위가 싹 가시는 기분이 드는 소리다.


캠핑장마다 매점의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갖추고 있는 물건은 비슷하다. 인기 라면 여러 종류, 부탄가스와 이소가스, 술과 과자, 휴지 등의 생필품. 여기에 규모가 좀 큰 곳이라면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용품이나 폭죽, 비눗방울 장난감 등이 있기도 하고, 한 끼에 먹기 좋도록 진공 포장한 육류를 판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의외로 거의 항상 있는 것이 바로 얼음이다. 아이스크림은 없어도 얼음 냉동고는 어디나 하나쯤 있다. 여름이면 캠핑장에 도착해서 착착 세팅하는 중에 누군가가 달려가서 일단 이 얼음부터 3㎏짜리로 하나 사 와야 한다. 워터저그를 열어서 얼음을 붓고 물을 가득 채우면 땡볕 아래 텐트를 치고 의자며 테이블을 설치하는 중에 틈틈이 냉수를 마시며 더위를 가시고 탈수를 물리치는 것이다.


솔직히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가족이라면 일년 내내 얼음이 필수품이지만, 여름 캠퍼라면 누구나 얼음을 소중히 여긴다. 수분 공급에서 안전한 식재료 관리까지 모두 얼음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밑 준비를 해와도 날것의 식재료를 조리하기 전까지 외부에 보관해야 하다 보니 반드시 아이스쿨러와 아이스팩을 준비해야 한다. 새벽배송 택배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아이스팩 하나도 귀하게 여겨서 꽁꽁 얼려두었다가 아이스쿨러에 깔고, 와서 마실 물과 음료도 냉동해 아이스팩 대용으로 쓴다.


아이스쿨러 안에서의 교통정리도 중요하다. 천천히 해동시킬 냉동 해산물 등은 아이스팩과 함께 제일 아래에 깔고, 얼음에 직접 닿으면 상하기 쉬운 채소는 위쪽으로 모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아이스쿨러의 자리 배치다. 아무리 커다란 아이스쿨러를 미리 식혀서 아이스팩을 빵빵하게 채워 두었다 하더라도 한여름의 땡볕이 내리쬐는 곳에 내버려 두면 보랭 기능을 전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서늘한 그늘에 두어야 온 가족을 식중독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재활용 아이스팩을 사용하더라도 캠핑장 매점의 얼음은 꼭 사야 한다. 돌멩이처럼 울퉁불퉁한 모양에 깨끗하고 투명하게 반대편이 비쳐 보이는 돌얼음은 집에서 직접 얼린 얼음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기 때문이다.


보통 집에서 얼음을 얼리면 빠르게 얼면서 물속의 미네랄이나 기포가 빠져나가지 못해 얼룩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예쁘고 깨끗한 얼음이 필요한 칵테일용 얼음 용기는 냉동실에 넣는 것인데도 보온 기능이 붙은 것처럼 두껍고 온도가 잘 통하지 않는 재질로 되어 있다. 공장제 얼음이 투명한 것도 이렇게 천천히 얼리기 때문인데, 예쁘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장점은 천천히 녹는다는 것이다. 얼음이 녹는 속도는 얼음을 얼린 속도에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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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 쉬운 과일과 술, 얼음을 넣어 뚝딱 만드는 ‘제철 과일 캠핑 칵테일’.

캠핑용 휴대용 제빙기도 흔히 판매하지만 전혀 추천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상 이상으로 짧은 시간에 몇 리터의 얼음이 쏟아져 나온다고 하면 일견 간편해 보이지만, 이렇게 신속하게 얼린 얼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려고 하면 순식간에 녹아서 멀건 커피국이 되어버린다. 후덥지근한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캠핑에서는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흔히 그러듯이 집에서만큼 시원하게 보관하기 힘든 맥주에 얼음을 넣어서 마시기도 하는데, 여기에 휴대용 제빙기 얼음을 넣으면 맛이고 향이고 전부 흐릿해져 버린 미지근한 맥주가 된다. 안 그래도 맥주에 얼음을 넣는다는 점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 분노를 일으키기 딱 좋다. 그래서 천천히 얼린 공장제 얼음을 캠핑장 매점이라는 가장 인접한 곳에서 구입해 워터저그나 아이스쿨러에 넣어두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렇게 미지근하고 묽어져 버린 음료를 ‘극혐’하는 사람이라면 얼음을 음료에 넣을 때 녹을 것을 걱정해 조금씩 아껴서 사용하기 마련인데, 묽은 음료를 싫어한다면 오히려 얼음을 와장창 넣어야 한다. 그래야 온도가 빨리 떨어져서 얼음이 녹지 않기 때문이다. 쨍하게 차가운 음료를 오랫동안 마시고 싶다면 초반에 얼음을 잔뜩 넣어서 온도를 확 낮추고 홀짝이는 것이 정답이다. 여기에 하루가 지나도 얼음이 남아 있다는 보랭컵을 사용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물자가 한정적인 캠핑장에서, 이렇게 더운 날씨에 유일하게 집보다 흥청망청 쓸 수 있는 것이 얼음이라는 점은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얼음을 얼리고 기다리는 시간과 수고를 시판 돌얼음으로 대체하면 마음도 풍족해진다. 게다가 잘 녹지도 않아! 바로 이 점이 술은 잘 못 마셔도 맛있는 술 한 잔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취미를 선사해준다. 캠핑 칵테일이다.


살짝 선선해진 바람이 에어컨 바람보다 안도감을 주는 여름날 저녁이면 차가운 칵테일 한 잔이 여유를 더욱 즐기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함께 캠핑을 떠나는 배우자가 칵테일 학교를 다녀온 다음이었다. 원래 평소 하던 요리도 더 신나게 만들게 되고, 집에서 하던 취미도 더 재미있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캠핑의 특징이다. 캠핑장에서는 튼튼하고 예쁜 얼음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우리의 캠핑짐에는 칵테일 용품이 추가되었다. 힘들게 도구까지 싸 들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원래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 캠핑의 본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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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공급부터 식재료 관리까지

여름 캠퍼라면 얼음은 ‘필수템’


캠핑장서 파는 울퉁불퉁한 얼음

깨끗하고 투명한데 천천히 녹아

집에서 얼린 것과는 차원이 달라


달콤한 제철 과일로 만든 칵테일에

캠핑장 얼음 곁들이면 무더위 ‘싹’


그리고 캠핑에서 만드는 칵테일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와인도 머그잔에 따라서 마시는 판에 온더록스 글라스며 하이볼 글라스도 캠핑용 머그잔으로 대신하면 충분하다. 원래 분위기가 맛을 배가시키기 마련이니까. 럼처럼 즐겨 사용하기 좋은 술과 토닉 워터 등을 챙기고, 저렴한 칵테일 셰이커는 하나 정도 캠핑용으로 마련하는 것이 좋다. 거름망 역할을 하는 스트레이너는 셰이커에 수반되는 경우가 있으니 더 필요한 것은 머들러 정도? 하지만 이것도 긴 수저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캠핑장에서 칵테일을 만든다는 사실 자체니까.


하이볼 정도라면 언제든지 간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셰이커와 캠핑장에 가져온 제철 과일로 언제든지 신선하고 색다르게 만들 수 있는 칵테일 레시피가 있다. 매번 달라지는 구성이라 ‘제철 과일 캠핑 칵테일’ 정도로 통칭할 수 있을 것이다. 만들기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칵테일을 마실 잔에 얼음을 잔뜩 넣어서 시원하게 식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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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을 식혔다면 아무 그릇에나 캠핑에 가져와서 남은 과일을 넣고 으깬다. 질긴 껍질이나 씨앗은 제거하고, 분량은 딸기를 기준으로 1잔당 1.5개가 적당하지만 입맛에 따라 가감하면 된다. 그리고 셰이커에 얼음과 과일, 과일에 어울리는 시럽 4분의 1온스, 설탕 2작은술, 럼 1온스를 넣는다. 시럽이 없다면 설탕량을 입맛에 따라 늘리고, 럼도 주량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를 위해 만들 때는 2분의 1온스에서 4분의 3온스 사이를 넣는 편이다.


가볍게 셰이킹을 하고, 잔에 담은 얼음은 녹아서 고인 물만 따라낸 다음 셰이커의 내용물을 걸러서 붓는다. 이때 남은 으깬 과일 건더기는 건져서 넣어도 상관없다. 씹히면서 과일의 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어울리는 조합은 산딸기와 딸기 시럽, 석류와 그레나딘 시럽, 체리와 프랑보와즈 시럽 등이다. 럼 대신 보드카, 데킬라 등 다양한 리큐어를 시험해보아도 좋다. 오렌지 향의 리큐어 트리플 섹은 수박과 어울린다. 얼음이 풍족한 캠핑장에서 무르익은 제철 과일의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순간이다.

정연주 푸드 에디터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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