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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마스크 쓰라고만 할 건가요

시민에게 맡긴 미세먼지 대책

‘외출 자제’ 문자…‘2부제’ 통보

정부, 여론 들끓으면 찔끔 대책

선진국 극복사례 얼마든지 있어

저감장치 의무화 등 의지에 달려

언제까지 마스크 쓰라고만 할 건가요

잿빛 하늘과 거리를 빠르게 채워가는 흑백의 보건용 마스크…. 입동(立冬)인 7일에도 한국의 늦가을은 너나 없이 전날부터 한반도에 내리 깔린 고농도 미세먼지에 짓눌렸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휴대폰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챙기고, 마스크가 없거나 오래됐으면 다시 약국에 들르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미세먼지가 심하니 마스크 쓰고 외출하세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도, 문자 인사에서도 빠짐없이 “안녕하세요”를 대치하는 안부 인사가 됐다.


7일 오후엔 8일 전국에 비가 내려 하루 미세먼지 고통이 가실 것이란 뉴스가 이어졌다.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까. 시민들은 바로 “그 비 그치면?”이라고 되묻는다.


다들 ‘콜록콜록’하다 답답해 가슴을 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해 목소리를 돋운다. “언제까지 미세먼지를 각자가 버티고 해결할 문제로 방치할 거냐.”


시민들은 각자도생하고, 정부는 실외활동을 자제하라는 경고만 반복하고, 마스크 업체와 공기청정기 업체의 주가는 치솟는 나라엔 우울한 ‘미세먼지 사이클’이 드리워져 있다.


헌법 35조가 규정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는 미세먼지 앞에선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6일과 7일 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자 정부와 지자체들은 미세먼지 주의보를 발령하고,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화력발전소 출력을 80%로 제한했고, 공공기관 차량 2부제가 시행됐으며 사상 처음으로 노후 경유차의 서울 시내 진입도 금지됐다. 문제는 즉자적 처방만 되풀이되고 그날뿐이라는 점이다. 고농도 미세먼지 현상이 나타난 날 정부·지자체·언론 모두 미세먼지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호들갑을 떨다가도 농도가 평상시 수준으로 낮아지면 다시 나 몰라라 한다는 점이다. 그 속도로 한국 사회의 경각심도 높아졌다 사라지곤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민들 중에는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쳐 고농도 현상이 발생할 때만 심각하고, 평상시에는 미세먼지가 없다는 식의 오해도 많이 퍼져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우려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대기질이 꾸준히 좋아지고, 특히 미세먼지 농도는 2010년대 초반까지 빠르게 개선됐다는 통계를 내놓는다. 그러나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미세먼지와 대기오염물질 농도는 크게 높은 수준이다. 선진국들도 과거 한국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국가와 시민들이 함께 몸부림치며 극복해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난 여름과 가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은 ‘파란 하늘을 찾아-미세먼지 해외견문록’ 기획을 통해 미국·독일·프랑스·일본·싱가포르의 대기오염과 국가적인 극복 노력을 취재했다. 한국 기준으로 치면 1년 내내 극히 양호한 대기질이 유지되는 이들 나라에선 더 꼼꼼하고, 철저한 대기오염물질 저감정책이 실시되고 있었다.

미세먼지 모니터링 기반시설부터 확충해야

독일처럼 상시적으로 배출기준 미달 경유차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고, 도심 내 차량 속도를 시속 30㎞로 낮추고, 오염물질 저감장치 부착을 의무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처럼 오염물질을 내뿜는 설비를 배출량이 적은 새 모델로 교체하는 사업자에게 연간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 한국의 수도권에서 불가능할 이유도 없다. 서울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시가 3년째 대중교통 할인 정책을 실시하는 것도 정책 의지와 “더 늦출 수 없다”는 경각심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극히 청정한 대기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미리 가본 선진국들은 연중 대기질 개선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우선 미세먼지 고농도 시절에 여론이 끓어오를 때마다 찔끔찔끔 단절적 대책을 내놓는 식으로는 시민들의 일상에 선진국 수준의 청정한 대기와 푸른 하늘을 되찾아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선진국들에 비하면 극히 부족한 대기오염 모니터링 기반시설부터 대대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두 가지가 백지 위에 다시 세워지면, 선진국들처럼 경유차·화력발전소·비산먼지·생물성 연소·다량배출산업체 등 미세먼지 배출 현장이 선명하게 보일 터다.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오는 연무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 싱가포르처럼 중국발 미세먼지를 압박하고 함께 해법을 만들어내는 일도 더 서둘러야 한다. “언제까지 미세먼지가 내가 책임질 문제로 남을까.” 시민들은 아프고 버겁고 화나 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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